10년이 지난 여행이기에 석굴암 근처에서 혼자 털썩 주저앉아 경치를 구경했던 기억이 희미하다. 그냥 그때도 안동에서 강물을 보고 느꼈던 감정을 비슷하게 느낀 듯하다. 그 당시 나의 감정을 하나하나 적어 놓았으면 좋으련만……. 지나고 나니 후회로 남는다.
경주에서 하룻밤 머물다 만난 길거리에서 어묵을 팔던 아주머니, 여자 혼자 여행하는 일이 대단하지만 자기 딸이 혼자 그러고 다니면 다리를 부러뜨렸을 거란 말을 추가로 덧붙이셨다. 여전히 멀쩡히 붙어있는 나의 다리를 만지며, 부모님께 말하지 않고 여행하기를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도 아주머니는 걱정된다며 어묵 값을 계산하고 가는 내게 안전한 길로 다니고, 사람 많은 곳으로 다니라고 신신당부하셨다. 내가 내민 어묵 값에는 아주머니의 날 위한 우려도 계산되어 있었다.
‘다리, 다리, 다리’를 중얼거리며 여행 동안 숙소로 삼은 찜질방으로 갔다. 요령도 없이 싸버린 4박 5일간의 무거운 배낭을 짊어지고 다녀서인지, 내 몸에서 쉰내인지 땀 냄새인지 이름 모를 악취가 풍겼다. 보는 이 없다고 어제와 같은 바지를 입고 다녔더니 냄새가 더 한 듯싶었다. 내 옆에서 옷을 벗던 아이가 얼굴을 찡그리고, 코를 막는 것을 보고 사람이 없는 옆 칸으로 슬며시 옮겨갔다. 이틀간의 여행에서 얻은 거라고는 나를 쳐다보는 사람들은 스쳐 지나가는 존재라는 사실이었다. 하루만 지나도 기억하지 못할 사람들을 위해서 나를 추스를 필요가 없었다.
찜질방에서 잠을 자기 시작한 이후로 잠들기 전까지 수많은 생각이 떠올랐다. 몸이 피곤해서 금방 잠들 줄 알았는데, 기어코 정신은 피곤한 몸을 이겨먹었다. 나는 계속 속으로 말을 씹어야만 했다.
‘아, 미쳤다고 이런 개고생을 하고 있지? 잠자리 바뀌면 잠도 못 자는데. 나도 참 미쳤다. 미쳤어. 무슨 부귀영화를 누린다고 이 짓을 하고 있는 거지. 내일이라도 다시 돌아갈까? 언니가 당장이라도 힘들면 오라고 하는데, 그냥 내일 다시 서울 올라갈까?’
애써 오지 않는 잠을 청하며, 나는 기어코 찾아오는 아침을 맞이했다. 집으로 돌아갈까 고민하던 마음을 나의 알량한 자존심이 다시 부여잡았다. 대신 하루 종일 걸어 다닐 날 위해 기차역 근처에서 뼈해장국을 한 그릇 사 먹었다. 아침 일찍부터 배낭을 짊어지고, 허겁지겁 해장국을 먹는 나를 향한 주인아주머니의 안쓰러운 시선이 느껴졌다. 기차 시간 때문에 빨리 먹은 것뿐인데 말이다.
나는 기차를 타고 남쪽으로 향했다. 가는 도중에 광주에 사는 친구에게 연락이 왔다. 자기 집에 와서 하룻밤 자고 밥을 먹고 가라는 것이었다. 나는 기다린 듯 얼른 그러겠노라고 답하고 전화를 끊었다. 낯선 여행지에서 곧 익숙함에 들어선다는 생각이 드니 기운이 솟았다. 어쩌면 여행은 모르는 곳에서 아는 곳으로 향하면서 느끼는 그리움 때문에 시작하는지도 모른다. 머릿속에서 혼자만의 개똥철학을 만들면서 기차를 갈아타기 위해 창원역에서 내렸다. 전 날에 내린 비로 창원역은 안개가 가득 끼어 있었다. 친구 전화 탓인지 모든 풍경들이 아름답게 보이기 시작했다. 서울에 있었다면 공해다 뭐다 잔소리를 분명했을 것이다.
친구 전화 한 통으로 내 마음이 노곤 노곤해졌다. 따뜻한 곳에 있다가 한기가 가득한 곳에 들어서면 내 몸을 뒤덮고 있는 솜털들이 일제히 싸울 태세로 일어선다. 여행을 시작하기 전 내 상태가 이랬다. 누군가 날카로움을 던졌다면 나는 일일이 반응했을 것이다. 여행이 만들어준 혼자만의 시간은 삐죽삐죽한 나를 어루만져 주었다. 여행은 내 안에서 뿐만 아니라 나를 둘러싼 낯선 이들을 향한 내 마음도 서툴 지만 부드럽게 건드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