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의 흔적 3

by 좋은아침

엄마가 갓난아기를 재우면 어느덧 쏟아지는 잠은 아기의 뽀얀 눈꺼풀을 닫아버린다. 아기는 더 이상 주변의 소리에 반응하지 않을 정도로 깊은 잠에 빠져든다. 나 역시 엄마가 아기를 보살피듯 내 마음을 보니, 주변의 소음이 들리지도 들린다 한들 따갑게 느껴지지 않는다.

어묵 파는 아주머니의 잔소리 섞인 말은 비수가 아니라 나를 위한 애정으로 들렸다. 지구가 태양 주위를 돌 듯, 어느덧 태양인 나를 중심으로 지구가 도는 것을 지켜보는 배짱도 부려본다. 지금 이 순간만큼은 지동설을 천동설로 주장해도 왈가불가하지 않고, 웃어넘길 수 있다.

기차여행 성수기가 아니어서 인지 기차 플랫폼은 한산했다. 모자를 눌러쓴 할아버지 한 분을 비롯해 두 세분이 몇 분 후면 도착할 기차를 기다리고 있었다. 젊은 사람은 나 하나인 듯했다. 갑자기 낯선 기운을 풍기는 할아버지가 나에게 다가왔다.


“혼자, 여행하시나 봐요?”


“네.”


“여학생이 혼자 다니기가 쉽지 않을 텐데. 대단해요. 나도 여행하는 거 엄청 좋아해서 해외를 많이 다녔어요. 이탈리아, 파리, 일본…….”


“아, 그러세요. 대단하시네요.”


“어딜 여행하시는 거예요?”


“이곳저곳이요.”


이야기를 하는 도중 기차가 도착했다. 할아버지는 갑자기 두 엄지를 지켜 들고, ‘have a nice trip.’을 한 마디 남기시고 기차에 오르셨다. 이상한 할아버지란 생각이 들었지만 무슨 용기에서 인지 기차에 먼저 올라탄 할아버지를 찾아 나섰다. 할아버지는 한적한 열차 칸 창문 쪽에 자리를 잡고 서서히 움직이는 창밖을 바라보고 계셨다. 이번에는 내가 낯섦을 풍기며 할아버지에게 다가갔다.


“할아버지, 혼자 여행하려니 심심해서요. 가시는 곳까지 할아버지 여행 이야기를 들을 수 있을까요?”


“아 그래요? 얼른 앉아요. 아참 먼저 전 신부예요.”


처음에는 신부를 신분으로 알아 들어서 내가 의아한 표정을 짓자, 할아버지는 목을 감싸고 있는 옷을 내려 사제복을 보여 주셨다. 신분증까지 꺼내 그 지역 교구 소속인 신부님이라는 것을 확인시켜주셨다. 혼자 여행하는 내가 안심할 수 있도록 나를 위한 작지만 따스한 배려였다.


신부님과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여행을 하는 내내 나를 따라다니던 불안감이 느껴지지 않았다. 신부님은 60세가 넘으신 나이에도 불구하고 아이 같으셨다. 본인의 여행기를 이야기하면서 들뜬 목소리를 잠재우시지 않았다. 나의 이야기를 들을 때는 물개 박수를 치시면 들어주셨다. 나의 뇌에서 감정을 자극하는 신경이 계속해서 신부님과 이야기를 이어나가라고 신호를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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