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자리야 어디 있니?
유치원 셔틀버스가 도착하면 늘 곤충 채집통과 잠자리채를 들고 있는 언니가 있다. 두 개의 준비물이 손에 없는 날이면 하원 후 집에 들렀다가 다시 나오신다. 쫑(아들)이 같은 유치원에 다니는 친구가 잠자리채로 뭔가를 잡는 걸 본 이후로 잠자리채를 사달라고 조르기 시작했다.
장난을 치다가 잠자리채를 부러뜨린 이후로 사주지 않고 있었는데, 매일 같이 뭔가를 잡는 친구를 보니 안 사고 못 배기는 모양이다. 비싸지도 않은 물건이라서 마음만 먹으면 사줄 수 있지만 필요하다고 덜컥 사주는 것이 교육상 좋을 거라고 생각되지 않아서 며칠 더 지켜보았다. 지난주에 장비를 갖추고 곤충을 잡으러 다니는 친구가 함께 가자고 했다면 하원 하자마자 그 친구의 사냥(?)에 동행을 했다.
잠자리채를 가지고 공중에서 휙휙 휘젓는 친구를 쫑이 부러운 눈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쫑의 눈빛이 애절한지 함께 있던 언니는 아이를 불러 세워 쫑도 할 수 있게 빌려주라고 했다. 하나 사주라는 말도 같이 딸려왔다.
친구의 잠자리채를 잡더니 쫑은 팔랑팔랑 날아다니는 나비, 쓰레기 위에 앉아 있는 파리를 잡으려 들었다. 나비는 날개가 다치면 못날까 봐, 파리는 좀 비위생적이니 안 잡는 게 좋을 거라고 나는 잔소리를 하며 따라다녔다.
“엄마, 난 그러면 뭘 잡아? 잡을게 하나도 없잖아.”
“아직 잠자리가 나오지 않아서 잡을 게 없으니, 날씨가 서늘해지면 그때 같이 잡자.”
결국 빌린 잠자리채로 단 한 마리도 잡지 못하고 집으로 돌아왔다. 다음날 언니한테 물어보니 언니 역시 아무것도 잡지 않고 한 시간 정도 더 돌다가 집으로 갔다고 했다. 우리는 빈손이어서 불행했지만 잡히지 않은 존재들에게 있어서는 행운이었을 것이다.
친구 잠자리채의 그립감이 손에 남아 있어서인지 그날 이후로 쫑은 잠자리채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지나가는 길이 벌이 윙윙 대도 ‘아, 잠자리채만 있으면 잡을 텐데.’ 매미가 맴맴 거려도 ‘아, 잠자리채만 있으면 잡을 텐데.’ 풀숲에 메뚜기만 뛰어도 ‘아, 잠자리채만 있으면 잡을 텐데.’
며칠간 잠자리채 이야기를 듣다 보니 부엌에서 쓰는 채반이 나에게 잠자리채처럼 보였다. 쫑보다는 나의 환상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토요일 오전에 쫑을 데리고 다**에 갔다. 당연히 잠자리채와 채집통이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직원분이 물건이 없다는 답변을 해주셨다. 사지 않으면 크게 실망할 아들을 알기에 사무 및 문구용품을 파는 곳으로 갔다. 다행스럽게도 상점 문을 열자마자 잠자리채가 있었다.
동그란 모양과 타원형 모양. 핑크색, 파란색, 주황색. 핑크를 고를 거라고 생각했던 나의 예상과는 달리 아들은 주황색 잠자리채를 골랐다. 곤충을 잡지도 않았는데 아들은 이미 백만 마리는 잡은 얼굴을 하고 있었다. 역시 여행지에 도착한 것보다 가기 전이 더 셀레고 즐거운 것처럼 잡기도 전이 기대감에 더 즐거울지도 모르겠다.
잠자리채는 가격도 2600원으로 저렴했다. 채집통은 9400원이었다. 전에 샀던 것은 튼튼하지 못해서 금방 부서졌는데 이번 통은 보기에도 튼튼해서 쫑이 채집을 그만둘 때까지 쓰지 않을까 싶다.
계산을 끝내고 차에 타기도 전에 쫑은 채집통과 잠자리채는 자기가 들고 타겠다고 고집을 부렸다. 그렇게 좋냐고 물어보니 너무 좋다고 한다. 문득 어떤 물건이 내 손안에 들었을 때 나는 좋다는 감정을 느낄까가 떠올랐다. 돈? 물욕이 없으니 돈은 아닐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돈을 싫어하는 것은 아니다. 아마도 진하게 내린 커피 한 잔이 내 손안에 들려있을 때 행복한 감정을 크게 느끼지 않을까 싶다. 아이스도 아니 뜨거운 커피에서 모락모락 올라오는 김과 향을 맡고 있노라면 그냥 그 순간만큼은 다른 것들이 생각나지 않을 정도로 뜨거울 정도로 좋다.
아마 아들이 느끼는 감정이 내가 느끼는 감정과 엇비슷하지 않을까.
장비를 갖췄으니 이제는 실전에 투입을 해야 한다. 윗집에 살고 있는 같은 유치원을 보내는 친한 동생이 아이들과 함께 동행하기로 했다. 윗집 아이들은 곤충을 애정 하다 못해 사랑한다. 집에서 키우는 곤충들도 다양하다. 역시나 만나자마자 오늘은 무엇을 잡을지에 대해서 열의가 대단하다.
잠자리채 세 개, 채집통 세 개. 준비는 완벽하다.
비가 온 뒤여서 일까. 잠자리가 한 마리도 없다. 매미가 시끄럽게 울어대기는 하지만 인기척을 느끼면 거짓말처럼 울음을 멈추었다. 매미가 보여도 채로는 닿을 수 없는 곳에 붙어있었다. 아이들은 어느덧 가망 없는 나무는 거들떠보지 않고 잠자리채로 풀숲을 휘젓기 시작했다. 뭐라도 튀어나올 거라고 기대했지만 풀숲에 앉아있던 모기만 아이들에게 달려들어서 근처 초등학교 운동장으로 방향을 틀었다.
학교 화단 쪽에서 한 참을 시간을 보내니 윗집 아이들이 방아깨비와 노린재를 잡았다. 가까스로 쫑이 실잠자리를 잡았지만 내가 통에다가 넣다가 그만 놓쳐버렸다. 미안하다고 사과는 했지만 자신만 빈 통이어서 속상한 지 쫑은 ‘내 통만 아무것도 없어.’를 중얼거리기 시작했다.
안타깝고 미안함 마음이 커서 본격적으로 뭔가라도 잡기 위해서 나역시 풀밭을 휘젓고 다녔지만 통에 집어넣을만한 것이 나오지 않았다. 다행히도 쫑 친구가 조그만 메뚜기를 잡아서 쫑 통에 넣어주었다. 자신이 잡지 않았어도 친구가 잡아준 메뚜기가 통 안에서 통통 튀는 것을 지켜보는 쫑. 즐거워 보여서 다행이다.
각자의 통에 방아깨비 한 마리, 노린재 한 마리, 메뚜기 한 마리밖에 못 넣었지만 아이들이 느낀 충족감은 ‘그것 밖에’에 아니라 ‘그것이나’였다. 가끔 우리는 아이들이 느끼는 작은 행복을 우리의 눈으로 재단하고, 아이들이 즐거워하는 점을 놓치거나 그 즐거움을 낮게 평가하기도 한다. 우리는 왜 이리도 우리 삶 속에서 경계하고자 하는 자세로 아이들을 대하는 걸까. 그래도 아이들이 있어서 놓치고 있던 삶의 깨달음이 다시금 머릿속에서 울릴 때 감사함은 이루 말할 수 없다. 오늘도 고맙다. 아들아. 아이들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