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빔밥 사랑
피자&햄버거? 피자! 치킨&피자? 치킨! 비빔밥&치킨? 비빔밥! 내가 좋아하는 음식으로 토너먼트 대결을 펼치면 언제나 승리는 비빔밥이다. 각종 인공조미료를 맛본 나의 몸이지만 맛있는 게 먹고 싶으면 언제나 비빔밥을 찾는다.
요즘 들어 비빔밥을 찾는 횟수가 늘어나고 있다. 입맛이 없을 때, 맛있는 게 당길 때, 그냥 뭔가 먹고 싶을 때. 비빔밥을 먹고자 하는 이유와 때를 생각나는 대로 붙이면 줄줄이 꿴 사탕처럼 주렁주렁 달린다.
이런 나의 비빔밥 사랑을 남편은 ‘비빔밥 예찬’이라고 멋들어지게 표현해준다. 그와 동시에 기름을 듬뿍 머금은 돈가스라든지, 겉이 바삭바삭하게 탄 군만두라든지, 소스에 퐁당 들어간 부먹과 찍먹의 논란의 대상인 탕수육을 식탁에서 보기를 원한다고 무언의 압박을 가한다.
남편의 주장인즉 건강도 중요하지만 장과 혈관에도 기름을 넣어줘야 신진대사가 매끄럽게 돌아간다는 것이다. 음식에 관해서 내 입맛만 강요할 수 없기에 주말에는 원 없이 남편이 원하는 음식을 해주거나 남편이 만들어 먹는다.
다시 비빔밥으로 돌아가 보자
나의 비빔밥에는 그때마다 올라가는 고명이 다르다. 그래도 적절한 가격선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것들이 올라가는 편이다. 나의 흰밥 위에 자주 올라가는 손님 중 한 분은 바로 노오란 머리와 늘씬늘씬 몸을 뽐내는 콩나물이다. 외국산 콩, 유전자 변형 콩이 아닌 국산콩으로 길러낸 콩나물만 환영받는다. 맛의 차이는 잘 모르겠지만 유통거리가 적은 만큼 영양가가 올라갈 것 같은 믿음에서 국산콩을 선택한다.
두 번째 손님은 방풍나물이다. 쌉싸름하고 달콤한 맛을 지닌 방풍나물. 효능으로 따지자면 중금속을 해독해 주며, 호흡기 질환에 좋다고한다. 방풍나물이 가진 효능보다는 쌉싸름한 맛이 좋아서 비빔밥에 넣는다. 물에 데쳐서 그냥 넣지는 않고, 쌈장, 마늘, 들기름, 통깨로 미리 조물조물 무쳐서 준비해 놓는다. 비빔밥의 손님이 아니라 주인으로 손색이 없는 멋진 반찬이다. 지금도 엊그제 무쳐놓은 방풍나물이 냉장고에 있다.
세 번째 손님은 우엉이다. 우엉은 특유의 흙내가 있어서 먹기를 꺼렸는데, 어느 순간부터 우리 집에 늘 있는 반찬이 되었다. 우엉은 그 쓰임이 다양하다. 김밥에 넣어도 좋고, 주먹밥에 넣어도 좋고, 볶음밥에 넣어도 좋고, 그냥 밥이랑 먹어도 좋다. 여기서 생 우엉이 아닌 간장, 올리고당, 설탕, 들기름으로 만든 우엉조림이다. 간장으로 20분간 조린 우엉은 단짠이 강하기에 비빔밥에 너무 많이 넣었을 때는 손님이 주인이 되어버리니 양 조절이 필수라 할 수 있다.
세 번째 손님에서 끝이 나면 좋겠지만 비빔밥에 기어코 비집고 들어오는 네 번째 손님이 있다. 그건 바로 당근이다. 토끼도 아닌 나는 어렸을 때부터 당근을 좋아했다. 찜닭을 해도 닭이 아닌 당근을 먼저 집고, 소갈비가 되었든, 돼지갈비가 되었든 당근이 들어있으면 당근을 먼저 찾는다. 집에서 가끔 특별식으로 갈비를 하면 고기보다 당근이 많을 때가 있다. 고기 파인 남편은 고기를, 당근 파인 나는 당근을 먹는다. 비빔밥에 들어가는 당근은 채칼로 얇게 채를 썬다. 썬 당근을 기름을 살짝 두른 프라이팬에 넣고 달달달 볶는다. 오래 볶으면 이맛도 저 맛도 아니기에 당근이 기름과 본격적으로 놀만 할 때쯤 가스불을 끈다.
이제 비빔밥 준비가 끝났을까? 답은 노노노노다.
멋진 용을 그리고 눈동자를 그리지 않는다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바로 계란 프라이를 준비해야 한다. 넓적한 프라이팬에서 탄생한 것이 아니라 동그란 홈이 파여있는 4구 프라이팬에서 만든 것이어야만 한다. 동그랗지 않고 흰자가 옆으로 기울어져 있거나 원이 되다 만 계란 프라이에서는 팥이 가득한 붕어빵을 한 입 베어 물었는데 팥이 들어있지 않을 때 느끼는 허망감과 견줄만하다.
손님으로 초대받은 콩나물, 방풍나물, 우엉, 당근, 계란 프라이님들이 드디어 마련되었다. 와야 할 손님들이 왔으니 양푼이 위에 소복이 눈처럼 쌓인 흰밥 위에서 축제가 벌어진다. 요 손님들. 각자의 개성을 한껏 뽐내고 들어왔지만 양푼이 안에서 만큼은 미친 든 섞이며 노는 것을 좋아한다. 이런, 손님들을 섞을 생각만 했지.
양푼이 파티의 열기를 한층 더 끌어올릴 비장의 카드를 놓칠뻔했다. 뜨거움을 더 뜨겁게 해주는 고추장님이다. 고추장과 섞인 흰밥과 손님들은 땀을 뻘뻘 흘리는 꼴이 된다. 땀만 흘리면 파티는 파티가 아니다. 은은함이 살아 있어야 파티가 더 즐겁고 오랫동안 기억된다.
마지막 특별 초대 손님 등장합니다. 참기름! 숟가락으로 계량을 할 필요도 없이 양푼이 위에서 벌게진 님들을 향해서 두세 바퀴 원을 그리면 파티는 절정에 다다른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음식을 설명하려다가 어느덧 비빔밥은 축제의 장이 되어버렸다. 내 입에 뭔가가 들어간다는 것만큼 특별한 경험이 있을까? 눈으로 보는 것, 피부로 느끼는 것, 냄새로 느끼는 것, 소리로 듣는 것. 다양한 감각들이 존재하지만 닫힌 입을 열고 혀로 느끼며 식도를 타고 내장으로 들어가는 농도 짙은 만남은 어디에도 없을 것이다.
그러기에 내 입에 들어가는 것들에 애정을 느끼고, 만들고, 먹다 보면 나도 모르게 먹는 행위인지, 내 입에 들어가는 것들을 찬양하는 건지 헷갈리는 순간들이 있다.
찬양이든 애정이든 비빔밥을 먹음으로써 큰 행복을 느낀다면 그거면 되지 않을까? 요 며칠 썩썩 비벼먹었으니 하루 건너뛰고 내일도 비빔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