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견 차이?
불행의 씨를 뿌리고자 한다면 마음만 먹으면 마음껏 뿌릴 수 있다. 반대로 행복의 씨를 뿌리고자 한다면 마음만 먹으면 그렇게 할 수 있다. 여기서 웃긴 점은 행복의 씨보다 불행의 씨를 뿌리는 게 쉽다는 것이다. 나의 경험에서 삐져나온 결론이다. 그만큼 행복의 씨는 불행의 씨보다 더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
남편과 나는 10개월 안에 만남과 결혼을 이루었다. 장거리를 하다가 결혼을 했으니 실제로 만난 시간을 따지면 정말 얼마 되지 않아서 결혼을 한 거다. 흔히 보는 로맨스 영화에서와 같은 뜨거움은 없었지만 따뜻함으로 결혼까지 이어졌다. 결혼을 하고 2년간은 싸울 일을 억지로 만들지 않는 한 싸울 일이 없을 정도로 편안한 시간을 보냈다.
서로를 위해서 딱 맞는 우리도 삐걱거리기 시작했다. 아이가 태어난 이후부터 말이다. 영화나 드라마를 보면 아이가 태어나면 싸움이 잦은 집도 행복한 일상이 펼쳐지고 웃음이 스며드는 장면을 자주 볼 수 있다. 반대의 장면도 존재했겠지만 워낙 행복한 모습을 많이 봐서 내 생각대로 각색된 장면만 나의 머리에 각인되었다.
아이가 태어나고 한 달 후 남편은 3개월간의 장기 일본 출장을 갔다. 가장 힘든 시기에 나 혼자 아이를 돌볼 자신이 없어서 큰언니 집에서 남편이 돌아올 때까지 머물기를 결정했다. 지금 생각해도 그렇게 하지 않았더라면 혼자서 그 기간을 버티지 못했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매일 남편과 연락을 했지만 수면 패턴이 잡히지 않은 아이를 돌보는 일은 오로지 나의 몫이었다. 당연히 나의 아이를 돌보는 일이라서 행복했지만 마음 한편에는 어쩔 수 없는 상황이지만 남편에 대한 서운함이 쌓여갔다.
그 기간에 나의 모든 마음은 아들에게 쏠려있었다. 아이가 태어나도 내가 일 순위, 남편이 이 순위, 아들이 삼순 위로 순위를 매겨놓았었는데 상황은 그 반대가 되었다. 아이가 남편과 나보다 일 순위가 되었다. 내 몸이 힘들어도 아이, 남편이 힘들어해도 아이.
3개월간의 출장을 끝내고 온 신랑이 반가워야 하는데 어색함이 앞섰다. 남편도 잠깐 본 아들이 낯설기는 마찬가지였다. 서로가 서로를 낯설어하는 시간이었다. 아들은 아빠가 아니라 낯선 존재가 자기를 안으려고 인식해서 소스라치게 놀랐고, 남편은 가족을 위해서 어쩔 수 없이 떨어져 있었는데 아내와 아이 사이에 다가갈 수 없는 벽이 생긴 것 같다며 힘들어했다.
집에 돌아왔지만 수면 패턴이 잡히지 않은 아들이 밤마다 깨는 것은 빈번했다. 정신적, 육체적 피곤함이 쌓이니 서로에게 한없이 다정했던 우리 부부도 서로 날을 세우는 날이 많아졌다. 그래도 다행인 점은 날은 세웠지만 서로를 비방하지는 않았다. 아무리 힘들어도 대화를 시도했다.
이렇듯 우리 부부는 육아를 하면서 의견 차이로 다투었다. 늘 합의점을 찾고 노력했지만 인간인지라 자꾸 실수를 되풀이해서 말다툼을 잊을 만하면 하게되었다. 아이 앞에서 목소리를 높여 싸우지는 않아도 아이가 엄마 아빠가 의견 차이로 이야기를 나누면 냉랭한 분위기를 인지했다.
최근에 우리 부부를 괴롭힌 점은 아이를 보는 시각이었다. 나는 아이를 과잉보호를 하지 않은 편이지만 아이의 의견을 잘 들어주는 편이고, 아이가 장난을 치거나 실수해도 좋게 좋게 넘어간다. 그에 반해 남편은 아이가 6살이 되었으니 실수를 한다면 고쳐나가야 한다고 생각을 했다. 남편의 의견에 동의하지만 남편은 아이가 울음을 터뜨릴 때까지 훈육을 하는 경우가 많았다.
남편의 방법이 마음에 들지 않았던 터라 남편의 훈육 방법에 대해서 내가 개입하는 순간들이 늘었고, 개입은 더 깊은 감정의 골을 서로에게 만들어냈다. 회사일로 피곤한 남편, 육아와 일로 피곤한 나. 아무리 상황을 긍정으로 보려고 해도 서로에게 그럴 마음이 들지 않아서 의견 불일치의 원인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것을 꺼려했다. 평소처럼 행동하면서 일상을 이어나갔지만 작은 변화도 잘 알아차리는 아들이 뭔가 이상함을 눈치챘다.
우리 부부도 아이의 행동과 표정에서 평소보다 불편해하는 기색을 느낀 터라 다시 깊은 대화를 이어나갔다. 아이가 실패하는 경험을 통해서 성장하는 것을 바란다는 남편, 아이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눈높이를 맞췄으면 하는 나. 우리는 서로에게 가장 바라는 부분을 이야기하고 노력하기로 했다. 역시 마음속에 꿍한 것보다는 대화를 하는 편이 마음이 편하다. 그동안 마음이 불편했을 아들에게 한마디 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쫑아, 엄마 아빠가 그동안 서로 꿍해 있어서. 쫑 마음도 불편했어?"
"응."
"불편하게 했다면 미안해. 그런데 엄마, 아빠는 서로 의견이 다르면 싸우기도 해. 쫑도 친구들이랑 그렇잖아. 가끔은 빨리 사과를 해야 하는데 엄마, 아빠 마음속에 '사과하지 마라 괴물'이 있어서 조금 늦어지기도 해. 엄마랑 아빠 이제는 화해했어."
싸우지 않고 웃고만 지낼 수 있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고 본다. 그래도 현실을 좀 더 이상적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로를 비방하지 않으면 문제에 대한 해결책을 찾아나가는 대화를 시도하는 것이다. 이번에도 한 고비를 넘기고 우리 세 사람이 좀 더 끈끈해진 느낌이 든다.
말다툼을 해도 시간이 지나면 스르륵 풀리는 부모님을 보고 자란 나. 가끔 그런 생각을 한다. 시간이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를 인정하며 대화로 문제를 해결하는 모습을 보았다면 나 역시 문제가 생길 때 대화로 이끄는 것이 좀 더 편하지 않았을까. 이미 지나간 과거를 돌이켜봐도 아무 소용없겠지만 우리 부부가 대화를 통해서 문제 해결을 보여 준다면 우리 아들이 문제가 생겼을 때 좀 더 편하게 해결할 수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은 하게된다.
늘 마음속에 그런 생각이 있다. 내가 지금 하는 행동이 먼 훗날 우리 아들이 결혼을 하면 생길 아이들의 행동에도 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사실. 그래서 가끔은 나의 한 걸음이 조심스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