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학하자마자 코로나?
학교가 개학을 하고 도서관을 문을 연 첫날. 점심시간에 너무 많은 학생들이 몰려서 지난주 금요일부터 가장 붐비는 시간에 요일별로 학년별 이용하는 시간을 제한했다. 월요일-1학년, 화요일-2학년, 수요일-3학년, 목요일-4학년, 금요일-5~6학년. 지난 글에도 언급했지만 고학년들이 도서관을 이용하지 않아서 아쉽다는 생각을 했더랬다.
금요일 당연하게 5~6학년들이 찾아오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 오더라도 열 손가락으로 셀 수 있을 정도의 아이들이 올 거라고 생각했다. 나의 굳건한 예상이 빗나갔다. 많은 수의 5~6학년 학생들이 도서관을 찾아왔다. 저학년 학생들과 달리 시끄럽게 떠드는 것도 없이 각자의 자리에 앉아서 조용히 책을 보는 모습들이 눈에 띄었다. 책에 관심이 없어서 도서관을 이용하지 않았던 게 아니었다.
좀 더 소란스럽지 않고, 자신들처럼 어른스러운(?) 분위기를 원했던 게 아니었나 추측을 해보았다. 나의 어린 시절을 떠올려보았다. 초등학교 저학년 때는 뭔가 내가 한없이 어린 기억이었다. 하지만 5학년이 되면서부터 선생님들께서 ‘너희들은 더 이상 어린아이가 아니야.’라는 말을 학년이 올라가면서 들어서 인지 고학년은 중학생, 고등학생 같은 존재로 느껴졌다. 지금 생각하면 애어른 같은 생각을 많이 했던 것 같다.
나 역시 고학년이 되었을 때는 저학년생들이 유치해 보이고, 그렇게 애로 보였었다. 어린아이들과 있다가는 내가 애가 되어버릴까 봐 같은 학교에 다니던 여동생이랑 가끔은 따로 걸어서 학교에 가기도 했다. 내가 겪은 감정들이 지금 아이들이 겪는 감정과 똑같지는 않아도 비슷하지는 않을까. 어린 내가 원했던 것은 비슷한 생각을 가진 무리들과 같은 공간에 있기를 원했었다.
코로나로 인해서 학년별 이용시간을 나누었지만 오히려 아이들에게는 더 나은 선택이 아니었나라는 생각이 든다. 도서관에서의 일은 더 늘었지만 말이다. 뭐, 아이들이 좋다면야 일이 더 늘어나는 것쯤이야. (아닌가? 며칠 지나면 생각이 달라지려나?‘)
새로운 발견을 신기해하며 퇴근을 하고 주말을 보내고 있었다. 주말에 도서관 담당 선생님께 전화가 걸려왔다. 받기도 전인데 코로나 때문에 전화를 거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선생님, 안녕하세요. 주말에 전화드려서 죄송해요. 지난주 목요일, 금요일에 확진자 학생이 도서관을 이용해서요. 사서 선생님들은 밀접촉자는 아니지만 코로나 검사를 받아보시는 게 좋을 것 같아서 연락드렸어요.”
“네. 알겠습니다. 받고 연락드릴게요.”
두 번째 코로나 검사. 사서 도우미로 일하면서 몇 달 전에도 코로나 검사를 받았었다. 다행히 밀접촉자는 아니지만 아이들이 있을 때 물을 마시기 위해서 내가 마스크를 내린 적이 있었는지 생각을 떠올려 봤다. 가물가물한 기억에 괜스레 목도 아프고, 열이 나는 느낌이 들었다.
목이야 비염 때문에 자주 아픈 건데 ‘코로나면 어떡하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함께 일하는 언니도 연락을 받은 터라 함께 검사를 받으러 갔다. 선별 진료소에는 이미 많은 학생들이 와 있었다. 다행히 출발 전에 전자 문진표를 작성해서 오랜 기다림 없이 바로 검사를 받았다.
처음 검사를 받았을 때의 코와 목의 불변함을 몸이 기억했나 보다. 자꾸 몸이 움찔거렸다. 이곳저곳에서 아이들의 울음소리가 들렸다. 짠하기도 하면서 내가 겁먹으면 안 되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5번이라고 쓰인 부스에 들어가니 소독약이 뿌려져서 인지 희뿌연 해서 기침이 나왔다. 마스크를 내리고 나의 오른쪽 코에 면봉을 넣었지만 실패! 나도 긴장했던 터라 나의 오른쪽 코안이 살짝 휘어져 있다는 사실을 언급을 하지 못한 것이다. 고통은 고통대로 느끼고 다시 왼쪽 코에 깊숙이 넣으셨다. ‘으윽’ 신음이 절로 나왔다. 그리고 목 안쪽으로 면봉을 깊게 푹! 그나마 코보다 목은 할만했다.‘잘하셨어요.’라는 칭찬과 함께 밖으로 나왔다.
여전히 코와 목이 칼칼했다. 몇 번 헛기침을 마스크에 해대며 집으로 돌아왔다. 집으로 오자마자 샤워를 하고 빨래를 돌렸다. 검사 결과가 나올 때 까지는 집에서 마스크를 쓰고 있는 게 좋을 것 같아서 마스크를 착용했다. 답답해서 벗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지만 평소에 코로나 관련 교육을 잘 받아서 인지 아들이 절대 벗으면 안 된다고 했다.
아들이 가장 무서운 감시자 일 줄이야.
“엄마, 나 오늘은 아빠랑 잘게. 엄마는 소파에서 자.”
나의 껌딱지가 소파에서 자라고 하니 서운하면서도 내심 오랜만에 혼자 잘 수 있다고 생각하니 실실 웃음이 터져 나왔다. 소파에 푹신한 이불 하나를 깔고 누워있으니 호텔침구가 부럽지 않았다. 혼자만의 시간을 즐기고 있는데 어둠 속에서 아들이 훌쩍이며 걸어 나왔다.
“엄마, 무서워. 엄마가 내 옆에 있으면 좋겠어.”
“그럼 옆에서 붙어서 자도 돼?”
“그건 안돼. 내가 내 침대 끝에서 잘 테니. 엄마는 엄마 침대 끝에서 자. 아빠는 소파에서 자고.”
코를 골 준비를 하고 있던 남편을 흔들어 깨웠다. 남편과 자리 바통터치를 하고 침대에 누웠다.
“엄마, 엄마가 코로나 걸리면 나는 엄마랑 떨어져 있어야 해?”
“응, 근데 엄마 안 걸렸을 거야. 너무 걱정 안 해도 돼.”
“걸리면 안 돼.”
검사 결과가 나오기 전인데 아들이 혹시나 하는 마음이 거대한 불안감으로 변했나 보다. 불안한 아들을 생각하니 괜찮았던 나의 마음이 뒤숭숭했다. 괜찮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혹시나 괜찮지 않으면 어떡하지라는 생각이 밀려왔다.
뒤숭숭한 잠에 빠져서 일어난 월요일. 결과가 9시에서 10시 사이에 나오기 때문에 아들도 유치원에 보내지 않고 함께 집에 있기로 했다. 아들은 일어나자마자 결과가 나왔는지 물어봤다. 웃긴 거는 결과가 나오기를 기다리면서 거리두기를 해야 한다고 내 곁으로 오지 않았다. 아침밥도 떨어져 먹는 게 좋을 것 같다고 이야기를 했다. 어제 엄마 없다고 운 아이가 맞는지 의심스러웠다. 넌 누구니?
“띠링”“코로나 검사 음성.”
음성이라고 알려주니 아들이 달려온다. 자동적인 거리두기 해제. 음성이라는 단어가 내 생에 올해만큼 안심을 준 적이 있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