콩닥콩닥 육아

쫑과의 저녁 산책

by 좋은아침

수요일에 아들의 친구와 놀기로 했다. 4시 넘어서 만나기에 저녁이라도 먹여 보낼 생각에 볶음밥, 탕수육, 떡, 과자를 준비했다. 간식을 먹고 놀다가 저녁까지 먹고 가는 게 나의 계획이었다. 당연히 그렇게 흘러갈 줄 알았다.

‘엄마, 이거 내 물건이야. 내 물건 만지려면 물어봐야 해.’ ‘야, 그거 내 거야. 물어보고 써야 해.’ ‘반짝이 물감은 아껴 써야 해.’ 등등 쫑(아들 애칭)은 평소 해 하지 않은 말들을 줄줄이 늘어놓았다. 자신의 이야기를 듣지 않으면 징징거리며 나에게 달려왔다.


징징거리는 쫑에게 이야기하랴, 서운함을 느낄 친구를 달래느냐 정신이 없었다. 그 와중에 볶음밥과 탕수육을 준비하느라 친구 엄마가 아이들을 신경 써야만 했다. 밥을 다 차려놓고 먹으려 했지만 아이들은 배가 고프지 않은지 놀고 계속 싶어 했다. 밥 먹고 놀라고 해도 듣는 둥 마는 둥이었다. 결국 아들 친구가 울어서 함께 먹지 못하고 집에 돌아갔다. 저녁을 함께 먹지 못해서 아쉬웠는데 그나마 볶음밥과 탕수육을 싸서 보낸 게 위안이 되었다.


생각보다 친구가 일찍 가서 인지 쫑은 밥을 먹으면서 심심한 티를 팍팍 내었다. 쫑에게 산책을 하자고 제안을 했더니 좋아라 하면 킥보드를 타고 마트에 가서 자신이 좋아하는 우엉을 사고 싶다고 했다. 집 앞 마트가 아니라 걸어서 15분 거리의 마트에 가고 싶다고 했다. 모든 일과를 마치고 집에 들어오면 잘 나가지 않는 나로서는 조금 귀찮게 느껴졌지만, 자주 있는 일도 아니어서 밥을 다 먹으면 가겠다고 했다.


조건을 거니 그렇게 잔소리할 때는 밥을 안 먹더니 후다닥 해치워서 먹었다. 이럴 때는 내 뱃속으로 낳은 아들이지만 너무 얄밉다. 식사를 먼저 끝낸 나는 싱크대에 가득 쌓인 설거지를 시작했다. 설거지를 하면 꼭 티셔츠 앞쪽이 축축하게 젓는 터라 앞치마를 둘렀지만 소용이 없었다. 설거지를 끝낸 후 앞치마를 벗으니 오줌을 싼 것 마냥 둥그런 물자국이 생겼다. 요즘 말장난과 장난이 는 쫑이 이것을 놓치지 않고 ‘엄마는 오줌 쌌대요.’를 외쳐댔다.


여러 번 들었던 전적이 있는지라 눈 하나 깜짝 않고 나갈 준비를 했다. 육아하면서 느낀 건데 아이의 장난에 극적으로 반응하면 그 장난이 오랫동안 지속된다는 것이다. 적당히 모른 척해야 내 마음도 적당하게 유지된다. 다들 아는 비법일지도 모르겠다.


정말 오랜만에 쫑과 저녁산책을 시작했다. 늘 빠른 속도로 걷는 게 버릇이 터라 나도 모르게 킥보드를 탄 쫑보다 빠르게 앞으로 나아갔다.

“엄마, 같이 가. 난 엄마랑 나란히 옆에서 가고 싶단 말이야.”


뒤에서 쫑이 울 듯 말듯한 표정으로 나를 불러 세웠다. 마음은 그렇지 않은데 가끔 나도 모르게 몸이 습관적으로 움직인다. 적장의 머리를 치러 가는 것도 아니겄만 함께 가도 자꾸 혼자만 가는 경우가 있다. 오늘은 아들이 엄마의 브레이크 역할을 톡톡히 한다. 15분 거리에 있는 마트에 가려면 대형 교회를 지나고, 공사장을 지나고, 주택가를 지나, 논 옆을 지나야 한다.

“엄마, 엄마, 이 식물이 뭐예요? 엄마 이거 깨예요? 엄마, 이거 파예요? 엄마 여기 논에는 개구리가 있을까요? 엄마, 저 이 길 아빠랑 왔었어요. 엄마 여기 메뚜기가 있을 것 같아요.”


쫑이 신났다. 쫑은 기분이 좋으면 늘 나에게 ‘요’를 붙여서 말을 한다. 걷다가 자신의 눈에 들어오는 게 있으면 일일이 물어보고나 가리킨다. 나 역시 익숙하지 않은 시간의 산책이어서 인지 기분이 말랑말랑 해지는 느낌이다.


“엄마, 저녁노을이에요. 너무 예뻐요.”


마트 입구에 들어서기 전 붉어지는 하늘을 보고 쫑은 너무 예쁘다며 좋아한다. 생각해보니 집에 들어가면 나오지를 않아서 저녁노을을 본 적이 많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24시간 안에는 농도가 다른 새벽도 있고, 농도가 다른 저녁과 밤이 있는데 쫑에게 그런 것들을 느끼고 보여주지 못했구나.

오랜만의 저녁 산책이 이리도 좋은데 그동안 왜 이리 안 했을까라는 후회가 밀려왔다. 난 안다. 후회가 밀려왔다면 내일은 해야 된다는 것을 쫑에게 다른 빛깔과 이야기가 담길 시간을 보여주고 싶다는 강한 욕구가 솟구친다.


이른 새벽에 환한 빛이 가득 해지는 시간을 보여주고 싶다. 모든 것이 고요해지는 어둠의 시간도 보여주고 싶다. 새롭게 보여주는 것들과 시간 속에서 쫑이 자신만의 이야기를 만들어갔으면 좋겠다.

아이는 위대한 스승이라는 말이 맞나 보다. 오늘 가벼운 산책에서 이런저런 생각을 끌어냈으니 말이다. 쫑! 기대해라. 새벽 5시의 하늘을 이번 주에 꼭 보여줄게! 그런데 쫑이 일어나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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