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글몽글한 순간
아이들과 있으면 가슴이 몽글몽글해지는 순간이 있다. 뽀얀 순두부를 손으로 콕콕 찌를 때 느껴지는 딱 그런 느낌이다. 한 번은 아는 동생의 아이와 함께 산책을 갔다. 우리 집 쫑은 운동화를 신고 동생의 아이는 크록스를 신고 있었다. 구멍이 송송 뚫린 슬리퍼를 신고 돌아다니려고 하니 아이 신발 안으로 흙이 자꾸 들어갔다.
“엄마, 내 신발에 땅 들어갔어.”
“땅?”
“이것 봐 봐. 땅땅땅.”
“아. 이럴 때는 흙이 들어갔어요라고 말해야지.”
몽글몽글한 순간이다. 처음에 나 역시 땅이라고 말하는 아이를 보고 무슨 말인지 몰랐다. 아이가 손가락으로 바닥을 가리키고서야 나도 동생도 아이 말의 의미를 알아차렸다. 의미를 알아듣고나니 입가에 미소가 저절로 피어올랐다.
“아, 이쁘다. 신발에 땅이 들어갔다니. 너무 예쁜 표현이다.”
“그러게요. 언니. 아이들이랑 있으면 제가 알고 있던 단어도 그 단어가 아닌 느낌이에요.”
동생과 나는 “땅”이라는 단어로 시작해서 아이들을 키우면서 들었던 재미있는 말들을 주고받았다. 흙보다 땅을 먼저 배운 아이의 세상에서 아이는 개별적인 흙이 아니라 자신의 발밑으로 펼쳐진 모든 것을 땅이라는 하나의 개념으로 바라보았다.
우리는 개개인으로 사는 게 익숙하고 개개인으로 살고 싶어 하기도 한다. 따지고 보면 같은 공기, 같은 땅, 같은 물. 가장 기초적인 것을 우리는 함께 공유하지만 서로가 너무도 다르다고 여긴다. 아이가 신발 안에 들어간 흙도 땅, 발아래 펼쳐져 있는 것도 땅으로 여기듯 우리도 관계가 단순하면 얼마나 좋을까라는 생각을 해본다.
동생과 헤어진 후 퇴근한 남편에게 말을 걸었다.
“자기야, 내 신발에 땅 들어갔어.”
“뭐? 땅 사달라고?”
신발 안에 땅이 들어간다는 상상을 할 수 없었던 남편은 내가 잘못 말한 줄 알고 땅을 사달라는 말로 들었다. 뭐, 땅이야 사주면 좋겠지만... 낮에 있었던 일을 이야기하니 그제야 남편도 말이 이쁘다고 동조해준다.
같은 단어도 예쁘다는 생각을 못하는데 이상하게 아이들의 입에서 나오면 그렇게 예쁠 수가 없다. 그동안은 아이가 말하는 예쁜 말을 그 순간만을 듣고 흘려보냈는데, 요즘은 듣기만 하면 기록을 해둔다. 아이가 커서 과거의 자신이 한 예쁜 말을 본다면 어떤 기분이 들까 상상해 본다. 아마도 내가 느꼈던 것처럼 아이도 몽글몽글한 시간을 즐길 듯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