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범해도 내 삶이다.

반찬과 엄마의 사랑은 비례

by 좋은아침

명절을 기다리고, 명절이 지나가고, 명절 전의 일상이 다시 시작되었다. 명절 기간 내내 평소와는 다른 생활리듬을 유지하다 보니 오늘 아침이 되어서야 몸과 마음이 한결 편해졌다.


지난주 토요일에 친정에 갔다. 늘 시댁에서 차례를 지내고 친정으로 가는 코스였지만, 명절 기간도 짧고 모이는 인원을 최대한 줄이고자 이번에는 남동생, 우리 식구( 신랑, 아들, 나), 친정부모님 이렇게 만났다. 올케는 입덧이 심해서 이번에는 내려오지 못하고, 본인 친정집에서 쉬기로 했다. 올케에게 먼저 전화해서 내려오지 말라고 해준 친정엄마의 배려가 빛을 발한 순간이었다.


명절만 되면 유독 이혼 기사도 많다. 조금만 더 서로를 배려하고 겉치레를 줄인다면 불화보다는 즐거움이 많은 명절이 되지 않을까 싶다. 차례를 지내고, 제사를 지내는 것에 대해서 반감은 없지만 잘 먹지 않아서 버려지는 음식과 한쪽으로 치우친 노동의 참여가 아쉽기는 하다.

명절 연휴가 시작도 되기 전에 친정에 갔기에 엄마가 음식을 따로 장만하지 못하셨다. 있는 반찬에 닭볶음탕을 더해서 식사가 차려졌지만 엄마표 잡채, 전, 오징어회 등을 구경하지 못해서 속으로 아쉬움을 삭혔다.

친정에 가기 전 언니가 친정집 화장실 청소를 꼭 해놓으라고 당부를 했다. 집 지은 지 20년이 넘어가고, 화장실은 창문은 있지만 환풍기가 없어서 조금만 습해도 곰팡이가 잘 생기는 구조다. 집안일보다는 농사일이 더 노련하고, 집안 청소를 하기에는 바쁘신 엄마이기에 화장실은 어질러 있다. 늘 친정에 가장 먼저 도착하는 딸이 화장실 청소를 하는 게 암묵적인 룰이 되었고, 혹시나 까먹을까 봐 상기를 시켜주는 친절한 자매들이있다.


오랜만에 락스로 화장실을 청소해야 했기에 kf94 마스크를 쓰고, 집안의 모든 창문과 문은 열어둔채 청소를 시작했다. 줄눈 사이사이에 낀 곰팡이를 제거하기 위해서 물에 희석한 락스 물을 곳곳에 뿌렸다. 한 시간 안에 끝날 줄 알았던 청소는 두 시간이 훌쩍 지나서야 끝났다. 청소를 하면서 오랫동안 사용해서 색이 바랜 세숫대야와 빨래판을 버리고 싶었지만, 버리기만 하면 다시 주워오는 친정아빠의 알뜰함을 알기에 수세미로 박박 문질러서 광을 내놓았다.


이것저것 광을 내다보니 가장 중요한 변기가 문제였다. 친정부모님을 위해서 비데를 사드렸지만 쓰지 않으신 지 오래고, 곳곳에 먼지가 쌓여있어서 남동생과 상의해서 비데를 떼어버리고 변기커버를 따로 사왔다. 오랫동안 방치된 먼지와 곰팡이가 나를 경악하게 했지만 그래도 꾹 참고 청소를 이어나갔다.

청소를 다 하고 나니 엄마 입, 아빠 입, 아들 입, 남동생 입, 남편 입, 심지어 내 입에서도 감탄이 저절로 튀어나왔다. 화장실 청소 하나 한 걸로 ‘천지개벽’이라는 단어를 쓰기에 거창하지만 그래도 락스 물로 재탄생한 화장실은 눈에 띄게 깨끗해 보였다. 이 상태가 며칠은 갈지 모르겠지만 그래도 내가 머무는 동안, 명절 기간 동안 쓸 사람들을 생각하니 최근에 한 일중 가장 뿌듯하게 느껴졌다.


친정집에 오면 하지 말아야 하면서도 친정 부모님께 잔소리를 자꾸하게 된다. 오 남매에게 이것저것 싸주기 위해서 손 큰 친정엄마는 다른 사람들은 엄두도 내지 않은 반찬과 김치를 늘 담그신다. 이번에 가보니 파김치, 무김치, 열무김치, 배추김치를 오 남매가 가져갈 수 있도록 가득 만들어놓으셨다. 게장을 좋아하는 조카들을 위해서 간장 게장과 양념 게장도 한 가득해놓으셨다. 음식으로 사랑의 크기를 잰다면 엄마의 사랑은 상상초월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나도 나이가 들었는지 예전만큼 엄마가 해주시는 반찬과 김치를 받는 게 마음이 아프고 꺼려진다. 그만큼 만들려면 더 부지런히 몸을 움직여야 하는 엄마를 알기에 엄마가 주시는 것들이 마음 편하게 목구멍으로 들어가지 않는다. 그래서 요즘은 ‘엄마, 너무 많이 만들지 마요. 엄마, 알아서 만들어 먹을게요. 엄마, 좀 더 쉬세요. 엄마, 일 좀 그만하세요.’라는 말들이 자꾸만 내 마음과 친정집을 채운다.

안다. 나이 들면 못하시니 할 수 있을 때 해주고 싶은 마음을. 그래도 나는 엄마가 해주시는 맛난 음식보다 엄마가 건강하게 나이 드시는 게 좋다. 우리가 아니라 엄마와 아빠를 위해서 살아주시면 더 좋으련만 엄마와 아빠의 삶에는 우리가 99라는 생각이 자꾸 든다.

엄마 덕분에 반찬은 넉넉해졌지만, 가벼워도 좋으니 덜 해주시면 좋겠다. 다음 주에 고구마를 캐러 친정집에 가야 하는데 가기 전부터 잔소리해야겠다.


“엄마, 먹는 거는 다 알아서 준비해서 갈 테니. 아무것도 하지 마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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