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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좋은아침 Sep 27. 2021

콩닥콩닥 육아

 변해라. 얍!

“일요일 어디 갈까? 산? 바다? 박물관? 과학관?”     


 일요일을 색다른 곳에서 보내기 위해 머릿속에 떠오르는 대로 단어를 오물거렸다. 엄마의 여러 선택지를 듣고 난 후, 쫑은 5살 때 소풍으로 갔던 민속마을에 가서 인절미를 먹고 싶다고 했다.     


“엄마, 민속마을에서 먹었던 인절미 진짜 맛있었어. 친구들이랑 먹었는데 진짜, 진짜 맛있었어. 나는 거기보다 맛있는 인절미 못 먹어봤잖아.”     


평소에 떡 애호가가 아닌 쫑은 진짜라는 말을 여러 번 반복하며 인절미를 먹으러 가자며 꼬드겼다. 남편은 등산을 가고 싶어 했지만 전날에 무리하게 운동한 나로서는 설렁설렁 걸어 다닐 수 있는 아들의 선택지에 손을 들었다.     


평소에 남편 차를 타면 쫑이랑 뒤에 타는데 오랜만에 앞에 타고 싶어서 쫑은 뒷좌석, 나는 앞좌석에 앉았다. 그때부터 쫑이 울먹거리며 징징거리기 시작했다.  

    

“엄마, 뒤에 타. 앞에 타면 나 빼고 이야기할 거잖아. 뒤에 있으면 이야기 잘 안들 린단 말이야.”

    

“쫑아, 엄마가 오늘은 갈 때는 앞에, 올 때는 뒤에 탈게. 엄마랑 아빠만 이야기하는 게 아니고 쫑이랑도 이야기 큰소리로 할 거야.”     


차가 출발했는데도 불구하고 쫑은 찡찡거리며 계속 자기랑은 얘기를   거라든지, 아빠가 무슨 이야기를 하면 엄마가 자신에게 다시 이야기를 해야한다고 같은 말들을 반복했다. 쫑의 징징거림을 나는  참아내는 편이지만 남편에게는 넘어야  산처럼 어려운 임무다. 운전하는 남편 얼굴을 보니 이미 화를 내기 직전이다. 남편은 평소에는 조용하고, 아이랑  놀아주는 편이지만, 쫑이 말도  되는 걸로 계속 짜증을 내거나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뭔가를 말하면  참지 못한다. 그래서 가끔  사이의 문제에 내가 끼어 중재를 해야 한다.     


차 안의 공기가 무거워지자 그냥 내가 처음부터 뒷좌석에 앉아야 했었는데라는 후회가 밀려왔다. 쫑이 엄마인 나를 좋아하는 것은 알겠지만 스스로가 아니라 나에게 너무 많은 것을 바라면 아이가 독립적으로 잘 자랄 수 있을까라는 걱정이 앞선다.     


육아 선배들에게 나의 두려움을 내비치면 시간이 지나면 아이는 잘 성장하고 너무 걱정 말라는 조언을 해준다. 그 말들을 들으면 위안이 되지만 당장 내 눈앞에 처한 현실을 헤쳐나가야 하는 나로서는 먼 결과를 선뜻 온몸으로 받아들이기 어렵다. 결국에는 쫑과 작은 전투를 통해서 내 나름의 깨달음을 얻고 나서야 뼈와 살이 되는 조언도 내 것으로 느껴진다.      


아무리 경험이 중요하다지만 오만가지 감정을 일으키는 육아에 있어서는 가끔 경험이라는 과정이 아니라 결과에 재빨리 다다르고 싶은 충동이 강하다. 나만 이런 감정을 느끼는 게 아니었으면 한다. 나와 비슷한 생각이 가진 사람이 있다는 사실만으로 마음의 위안을 얻는 나이기에 말이다.      


남편은 끓어오르는 분노를 삭이고, 나는 쫑과 인내심이 가득 찬 대화를 나누며 무사히 목적지에 도착했다. 좁은 공간에서 탁 트인 공간으로 나오니 한결 기분이 나아진다. 삶도, 육아도 배경 전환을 해야 한 층 더 등장인물의 감정을 좋은 쪽으로 변화시킬 수 있다. 같은 일상이 반복될 때 서 있는 공간을 바꾸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우리의 감정에 작은 영향을 줄 수 있다.     


차에서 내리자마자 남편은 쫑의 징징거림 때문에 집으로 돌아갈 뻔했다고 했다. 나는 남편에게 잘 참아냈다는 칭찬과 함께 차 안에서의 일은 ‘탁’ 털어 잊어버리고, 즐겁게 돌아다니자 했다. 세탁기에서 뭉쳐서 나온 구겨진 빨랫감을 탁 털면 쫙 펴지듯, 감정도 그러면 얼마나 좋을까? 아니면 순간이동처럼 나쁜 감정에서 좋은 감정으로 뿅.     


살면서, 육아하면서 가장 뼈저리게 느낀 점은 검은 감정에 휩싸인 순간을 질질 끌면, 상콤한 감정도 늦게 만날뿐더러 좋은 장소에 가도, 좋은 사람과 있어도 검은 감정의 흔적이 곳곳에 묻어있다는 점이다.      


감정에 있어서 만큼은 ‘탁’, ‘뿅’이 나에게 가장 절실하다. 신선한 공기를 마시고, 한 발짝씩 걸음을 떼니 남편의 얼굴에도 ‘탁’, ‘뿅’이 스쳐 지나간다. 나의 기분도 ‘탁’,‘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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