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좋은아침 Sep 29. 2021

평범해도 내 삶이다.

마음 빗질

얼마 전 머리를 자르러 미용실에 갔다. 묶으면 어정쩡한 길이로 삐쳐 나오는 꽁지머리가 싫어서 간당간당하게 묶을 수 있을 정도로 머리를 자르러 간 거다. 집에서 머리를 감고 말리는 시간을 제외하고는 머리를 풀지 않아서 당연히 미용실에 갈 때도 질끈 머리를 뒤로 묶고 갔다.     


“안녕하세요. 머리 어떻게 해드릴까요?


“머리를 묶을 수 있을 만큼만 남기고 짧게 잘라주세요.”


“머리를 꼭 묶어야 하는 일을 하세요? 그렇지 않으면 머릿결도 좋으신 편인데, 풀고 다니는 거는 어떠세요?”


“그건 아니지만 그냥 묶는 게 편해서요.”    

 

사춘기를 지날 무렵에는 외모에 관심이 많아서 늘 머리도 스트레이트 펌을 하고, 학창 시절에 한참 유행인 파우더를 얼굴에 바르기도했다. 그러다가 고등학교 때는 예쁜 것을 동경했지만 그러기 위해서는 부모님의 돈에 기대야 하기에 편하다는 핑계로 꾸미는 것에 관심을 두지 않았었다.     


그리고 대학교에 가서는 장학금을 타야 한다는 핑계로 후드티와 청바지만 입고 캠퍼스를 누볐다. 장학금을 타면서 멋지게 꾸미고 다니는 동기들을 보면 대단하다는 생각과 함께 얼른 경제적으로 독립을 하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했다.


이런저런 핑계로 외적인 모습을 꾸미는 일은 나에게 귀찮은 일, 가장 나중에 해야 하는 과제로 자리 잡았다. 특히 미용실에 가는 일은 정말 큰 맘을 먹지 않으면 해낼 수 없는 일이 되어버렸다. 미용실에서 앉아 있는 시간이 그토록 지루하고 가끔은 나에게 내려진  형벌처럼 느껴졌다. 그래도 사회생활을 해야 하니 나의 거부하는 몸과 마음을 질질 끌고 미용실에 다니곤 했다.     


결혼을 하고, 육아를 하다 보니 미용실은 더 나에게 멀어졌다. 웃긴점은 미용실에 가지 않아도 집에서 나름 헤어팩은 열심히 한다는 사실이다. 윤기 나는 나의 머리카락을 보면 기분이 좋아지기 때문이다. 나의 이런 면이 있는걸 보면  외모 가꾸기에 관심이 조금은 있는 게 아닐까?


나에게 미용실은 어깨선을 살짝 넘어버린 머리를 자르러 가는 곳이 되어버렸다. 자르기 전 분무기로 뿌연 물안개를 만들며 나의 머리를 촉촉이 적신 후 미용사분은 빗질을 하기 시작했다.

    

“어머, 손님. 머릿결이 엄청 좋네요. 상한 곳이 거의 없어요.”


“제가 머리카락 미인인가 봐요.”    

 

머리카락 미인이라는 말이 웃겼던지 미용사분은 이런저런 대화를 이어나갔다. 나의 뒷머리를 빗는 중 미용사분의 손길이 멈추었다.  

   

“손님, 평소에 뒷머리는 잘 빗지 않으시나 봐요?”


“그런 것 같네요. 보이는 쪽만 빗다 보니 뒷머리는 잘 안 빗은 것 같아요.”


“뒷머리도 잘 빗어주세요. 잘 빗어줘야. 뒷머리도 곧게 뻗어 자라요. 계속 빗지 않으면 고불고불해서 펌을 해도 잘 들지 않고, 나이 들면 더 심해져서 원하는 머리가 잘 안 나와요.”


“앞으로는 그렇게 해야겠네요.”     


가뿐하게 머리를 자르고, 계산을 하고, 딸랑거리는 문을 밀고 미용실을 나왔다. 머리를 자르고 드라이로 예쁘게 뒷머리도 펴서인지 손가락을 빠져나가는 머리카락이 부드럽다. 문득 뒷머리가 마음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 마음에는 매끈한 부분도 있고, 우툴두툴한 곳도 있을 것이다. 매끈한 곳은 더 손이 가서 더 매만질 것이다. 거친 마음은 신경 쓰기에 불편해서 지나치고 있을지도 모른다. 머리 자르고 내 마음을 돌아봤다. 빗질을 하지 않아서 꼬불꼬불 자라는 나의 마음.     


아마도 가끔 찾아오는 불안감이 잘 손이 안 가는 그 마음일거다. 외면하기보다는 ‘그래도 괜찮아.’라는 응원이 나에게 가장 필요할 거란 생각이 든다. 그리고 그 말을 나에게 빗질을 하듯 천천히 해주었다.


"꼬불꼬불 내 마음아, 내가 계속 빗질 해줄테니, 조금만 더 기다려."



작가의 이전글 콩닥콩닥 육아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