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슬기로운 취미생활
사람 욕심은 끝이 없나 보다.
맞벌이 부부였던 부모님은 방과 후에 나를 혼자 집에 두는 것이 미안했는지, 어렸을 때부터 바이올린, 서예 등 이것저것 참 많이 시켜주셨다. 남동생 역시 학교 갈 나이가 되자 부모님께서 남자아이라 바둑을 배우는 게 좋겠다며 바둑학원에 보냈다. 동생보다 배운 게 많은데도 불구하고, 동생만 바둑을 배우는 것이 부러웠다. 나중에 동생이 바둑대회에 나가서 상을 받을 때는 축하해줬지만, 마음 한편에는 질투심도 있었다.
어느 날 친구가 새로 생긴 바둑학원에서 이벤트 수업을 한다며 같이 가보고 했다. 갑자기 바둑인가 싶었지만, 그 친구와 한창 이것저것 많이 하던 참이었다. 놀러 가는 마음으로 편하게 갔다.
룰은 쉬웠다. 바둑돌이 갈 수 있는 길을 활로라고 하는데 상대편 돌의 활로를 막으면 그 돌을 따는 것이었다. 딸 수 있는 돌이 없으면 돌의 활로를 줄여서 약하게 만들어서 딸 수 있었다. 선생님이 몇 가지 쉬운 맵을 만들어서 그 안에서 친구와 게임을 했는데, 이게 묘하게 경쟁심을 자극했다. 친구한테 번번이 졌다. 가볍게 몇 판을 했는데, 이길 수 있을 것 같다가도 마지막에 계산을 해보면 친구 땅이 더 넓었다. 수업을 마칠 때 나도 한번 배워보고 싶었다.
바둑은 배울수록 깊이가 있었다. 바둑 안에 인생이 있었다. 몇천 년 전부터 귀족들의 놀이문화였다는데, 이유를 알 것 같았다. 바둑은 권력과 전략의 보고였다. 부딪히면서 배우는 병법서였다. 게임을 한판을 복기하면 인생 법칙들이 와르르 쏟아져 나왔다. 바둑을 처음 배울 때는 눈앞의 돌을 따는 데 급급했지만, 바둑을 배우면서 기다림의 타이밍을 배웠다. 모든 공격은 필연적으로 데미지를 가져왔다. 내 손해를 줄이면서도 상대방이 완전해지기 전에 공격해야 하는 타이밍을 읽어야 했다. 고수들처럼 공격하지 않고 이기는 바둑을 두고 싶었다.
바둑은 둘이서 표현하는 예술이라고 했던가? 모든 수는 선택이었다. 판을 너무 크게 키우거나 마음이 앞서서 수비도 하고 공격도 동시에 하다 보면 일이 꼬이기 일쑤였다. 때론, 답이 뭔지 잘 모를 때에도 판단이 필요했다. 어설프게 손실을 최소화하는 방향으로, 모든 돌을 살리려고 하다가 게임이 뒤집히는 경우가 허다했다. 때로는 과감하게 버려야 했다. 효율성의 미학이었다.
열심히 복기하고 진 이유를 분석해도, 다음번 게임은 또 달랐다. 같은 게임은 없었다. 절대적인 전략은 없었다. 매번 상황을 읽고 그 상황 속에서 내가 생각하는 최선을 찾는 게임이었다. 그 감각을 게임을 통해서 몸으로 배워야만 했다. 바둑 문제집을 풀고, 복기하는 것만으로는 바둑이 느는 데는 한계가 있었다.
그런데 실전을 방해하는 요인이 있었으니 바로 감정적 충격이었다. 문제해결 능력이나 처세술 정도를 배울 것으로 생각했던 바둑이 가장 적나라하게 드러냈던 것은 나의 정신력이었다. 바둑은 집을 넓게 짓는 게임이었다. 빈 땅에서 서로 집을 짓다 보면 만나는 순간은 반드시 생기게 마련이지만, 예상하지 못한 순간에 공격이 들어올 때마다 나는 흔들렸다. 툭툭 찔러대는 한 수에 정신이 팔려서 내 페이스를 놓치거나 방향을 잃기 십상이었다. 최선의 방어는 공격이었지만, 다른 사람들이 공격해오면 나도 모르게 무서워서 피했다. 바둑을 배우기 전에는 평면의 바둑판에서 바둑돌만 움직이는 현실이 얼마나 와닿을까 싶었지만, 게임을 시작하면 멘탈이 털렸다. 지면 너무 속상해서 눈물이 나올 때도 있었다. 다시 평정심을 회복하기 전까지는 바둑을 두기 꺼려졌다.
몇 년간 바둑을 꾸준히 배웠지만, 실력이 생각처럼 늘지 않았다. 나보다 늦게 시작한 회원들이 나를 앞서나가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오기가 생겼다. 나도 잘하고 싶어서 더 매달렸지만, 결과는 마음 같지 않았다.
어느 날, 퇴근 후에 1시간 꼬박 걸려 도착한 학원에서 바둑을 두다가 예전처럼 바둑이 재미있지 않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내 욕심으로 나를 피곤하게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만두고 싶었다. 바둑을 배운 지 3년 만이었다.
얼마 전 아빠와 박정환과 커제의 바둑대국을 시청했다. 아빠는 그렇게 그만둘 걸 그때 왜 그렇게 시간 낭비를 했냐며 핀잔을 주고는 어른이 되어서 바둑을 배우는 게 쉽지 않다고 덧붙이신다. 아빠도 못내 섭섭했던 내 마음을 아셨나 보다.
바둑 실력만 보면 바둑은 실패한 취미다. 바둑에서 질 때마다 실패를 경험했고, 늘지 않는 실력에 상처받기도 했다. 하지만 사람은 잘할 때보다 못할 때 더 많이 배우는 것 같다. 바둑을 배우는 과정에서 나에 대해 새롭게 이해했고, 결과와 상관없이 노력했던 과정에서 얻은 것도 있다. 무엇보다 잘하지 않더라도 나에게 너그러워지는 것을 연습했다. 실패처럼 보이던 경험이었지만, 그 나름대로 의미가 있었다.
주말 가족과 바둑경기를 관람하며 같이 좋은 시간을 보낼 수 있는 것만으로도 바둑을 배운 보람은 충분한 것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