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른하늘에 날벼락, 강제 휴식 명령

4. 휴식학개론

by 지금

살다 보면 예상치 못하게 삶의 전환점을 맞이할 때가 있다. 중요하다고 생각했지만 조용히 넘어가는 사건도 있고, 천천히 전개되다가 크게 한방 터지는 일들도 있다. 나의 경우엔 류머티즘 진단이 그랬다.


왼쪽 손가락이 욱신거리면서 부어올랐다. 평소에도 식탁이나 침대 모서리에 부딪혀서 멍이 자주 들었던 탓에 예사롭지 않게 넘어갔다. 2주를 넘어가면서 회사 근처 정형외과를 예약했지만, 야근이나 약속을 핑계로 진료를 몇 달을 미뤘다. 병원에서 X-ray를 찍었는데 뼈가 이상하다고 했다. 진단서를 써줄 테니 대학병원을 가는 게 좋겠다고 했다. 별일 없을 거라고 생각하면서도 걱정이 되었다.


대학병원 예약은 쉽지 않았다. 근무시간이 짧아서 평일에 병원을 가려면 휴가를 써야 했고, 진료 예약도 병원에 따라 수주, 혹은 수개월 이후에나 잡을 수 있었다. 근처에 물어물어 수부외과가 있는 세미 병원을 예약했다. 또다시 X-ray를 찍고 MRI도 찍었다. 치료비가 순식간에 100만 원을 넘었다. 답답했지만, 아픈 사람은 따를 수밖에 없었다. MRI 검사 결과를 보더니, 두 번째 손가락 말고도 손가락에 염증이 많다며 류머티즘 같다고 했다. 대학병원에 가라고 했다.


안절부절못하며 택시를 타고 집으로 오는 길에 류머티즘을 찾아봤다. 류머티즘은 자가면역질환으로 몸의 면역시스템이 자신을 공격해서 몸의 염증이 뼈를 녹인다고 했다. 초기에는 손발 관절부터, 나중에는 척추관절까지 망가져서 사망에 이를 수 있다고 했다. 정확한 원인이나 완치가 없다고 했다. 생각할수록 내 일 같지가 않았다. 꿈만 같았다. 이렇게 죽는 건가 싶었다. 마지막으로 성당을 간 지 10년이 넘었지만, 급한 상황이 되자 간절히 기도했다.


병원에 가서 피검사와 X-ray 촬영을 반복했다. 결과만 좋으면 아무래도 좋았다. 역시나 류머티즘이었다. 덤덤한 말투로 의사 선생님이 먹는 음식, 스트레스, 수면습관, 운동까지 모든 게 원인일 수 있다고 했다. 나의 경우는 이미 질병이 진행되어 관절에 변형이 온 상태라고 했다. 집에 와서 엉엉 울었다.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하나 싶었다.


약물치료를 시작했다. 1차 치료제를 처방받았다. 약 복용과 함께 미친 듯이 피곤했다. 10시간을 잤는데도 졸려서 일상생활이 어려웠다. 회사에서는 업무에 집중하기 어려웠다. 온종일 기운이 없고 머리가 멍한 기분이었다. 조금만 먹어도 더부룩했고 소화가 잘되지 않았다. 주량이 1/10로 줄었다. 술을 조금만 마셔도 토하는 일이 반복되었다. 몸이 죽어가는 느낌이었다.


병원에서는 류머티즘의 증상으로 피곤할 수 있다고 했다. 답답한 마음에 다른 대학병원에서 다른 처방으로 치료했지만, 몸 상태는 좋아지지 않았다.


퇴근 후에 집에 오면 잠만 자는데도 다음 날 아침 출근이 힘들었다. 하루 8시간 근무할 체력이 없었다. 답을 찾지 못하면 이렇게 서서히 죽어갈 것 같았다. 불안하고 무서웠다.


살 방법을 찾기 위해 회사를 그만두려고 했다. 퇴사하려고 마음먹은 나에게 팀장님이 휴직을 권하시며 조언을 해주셨다.

“병을 극복하려고 하지 말고, 잘 관리하는 방법을 찾아봐.”


어떻게든 류머티즘과 끝장을 보려고 굳게 마음먹었던 차에, 팀장님의 조언이 발상의 전환이 되었다. 류머티즘도 나의 조건 중 하나였다. 나이가 들면서 인생에 여러 가지 고려사항이 붙는데, 류머티즘은 그중 까다로운 조건이었다. 내키진 않지만, 남은 인생을 같이 살아갈 동반자였다. 같이 지내려면 생활에 변화가 필요했다. 그렇게 쉬는 법을 찾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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