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휴식학개론
나는 호기심이 많은 편이다. 평소에도 부지런하게 무언가를 하고, 여행을 가서도 이곳저곳 찾아다닌다. 일상생활에서도 여러 방면에 관심이 많다. 덕분에 다양한 취미를 갖게 된 것 같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나의 이런 성향은 미덕으로 여겨질 때가 많다. 가만히 있는 것보다는 열정적으로 움직이면 높은 생산성으로 이어지고, 일을 빠르게 해내면 높은 효율성으로 이어진다.
나의 성향을 좋아했다. 피곤할 때도 있지만 게으른 것보다는 낫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본격적으로 쉬면서 생각이 바뀌었다. 모든 것이 그렇듯, 성격에도 양면이 있기 마련이었다.
휴직을 하고 하루 1시간 운동 외에는 정해진 일과가 없었다. 처음의 여유로움은 하루 이틀뿐, 얼마 지나지 않아 갑자기 늘어난 빈 시간이 어색했다. 멀티태스킹은 집중력의 부재를 의미했다. 골고루 잘하는 것은 한 가지를 끈기 있게 하지 못하는 것이기도 했다. 따분함을 견딜 수 없었다. 하다못해 냉장고를 채우든, 맛있는 음식을 먹든, 운동을 하든, 책을 읽든 뭐라도 해야 할 것 같았다. 가만히 있는 것이 벌칙 같았다.
쉬는 것은 심심한 것을 넘어서 심리적으로도 불편했다. 나는 스스로 삶을 즐길 줄 아는 사람이라고 여기고 그러한 사실에 자부심이 있었다. 사람들에게 내 경험을 자랑하는 것은 삶의 낙이었다. 휴직하고 이렇게 시간이 많은데 아무것도 하지 않고 쉬는 것은 쿨하지 않았다. 나답지 못한 행동이었다. 얻기 힘든 귀한 여유시간을 아무것도 하지 않고 흘려보내는 것이 아쉬웠다.
그동안 내게 휴식은 활동의 전환일 때가 많았다. 지금 하는 일이 힘들면 다른 일을 하면서 풀었다. 회사 일이 힘들면 여행이나 취미생활로 기분을 전환했다. 스트레스를 받으면 쇼핑으로 풀었다. 앉아있는 것이 힘들면 운동했다. 버스나 지하철 안에서는 핸드폰으로 동영상을 보거나 기사를 읽으면서 무료함을 달랬다. 사람들을 만나지 않고 집에서 쉴 때는 TV를 봤다. 하다못해 체력이 떨어지면 보양식을 먹거나 마사지를 받거나 체력을 끌어올리기 위해 무언가를 했다. 어떻게든 삶을 채웠다.
쉬는 법을 몰랐다. 생각해보니, 쉬는 법을 배운 적이 없었다. 잘하는 법에 집중했지, 하지 않는 법을 연습한 적이 없었다.
휴식에 관한 책을 읽고, 일상생활의 자극을 점진적으로 줄여나갔다. 잠을 충분히 자고, 만나는 사람을 줄이고, 스마트폰을 내려놓았다. 불현듯 용수철처럼 움직이고 싶은 충동이 튀어 올라왔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그 횟수가 점점 줄었다.
몸과 생각을 바라보는 시간이 늘어나면서 의도치 않게 몸과 마음을 혹사했던 습관들이 보였다. 눈은 성실하게 매 순간 눈앞의 광경을 입력했다. 쉴 때 보던 거부할 수 없는 막장 드라마, 자극적인 댓글의 단어, 쇼핑몰의 신상은 매일같이 나에게 반복적으로 주입되고 있었다. 청각은 길거리나 미디어의 날카로운 말투, 비난하는 말, 욕설을, 미각은 쉴 새 없이 먹어대는 설탕 덩어리 간식을 각인시켰다. 후각, 촉각도 마찬가지였다. 자극받는 동안 나는 제대로 쉬는 것이 아니었다. 나는 쉰다고 생각했지만 오감은 매번 새로운 정보를 처리했다. 자극들은 쌓이고 쌓여서 내 생각의 밑천이 되었다. 자극적인 입력물은 마음속에 스트레스로 쌓여있다가 나도 깨닫지 못하는 순간에 무심코 튀어나왔다. 쉰다고 생각하면서도 무심코 무언가를 주입하고 있을 때가 많았다.
휴식을 알게 될수록 물리적으로 쉬는 것보다 보는 것, 듣는 것, 먹는 것, 숨 쉬는 것, 몸에 닿는 것을 먼저 고려하게 되었다. 고요하기 위해서는 오감 역시 고요해야 했다. 평화롭기 위해서는 평화로운 자극이 필요했다.
3주 정도 흐르면서 새로운 삶의 패턴이 익숙해졌다. 활동량은 적었지만, 감각이 섬세해지면서 일상생활이 농밀하게 느껴졌다. 아침에 시계가 아닌 아침 햇살을 받으며 눈을 뜨고, 하루하루의 바람과 날씨가 변하는 것을 몸으로 느끼고, 노을이 지는 것을 바라보고….
그동안 신경쓰지 않았던 일상적인 것들이 눈에 들어왔다. 삶은 단조로웠지만, 오히려 풍성했다. 채우려는 마음을 내려놓자, 마음속 깊은 곳부터 새롭게 채워지는 느낌이었다. 일상이 하루하루 별일 없이 평화로웠지만, 지루할 것으로 생각했던 그 자리에 고요한 기쁨이 있었다.
쉬는 방법을 하나씩 찾아갔다. 본격적인 비워내기가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