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지금 Mar 17. 2021

직장인의 직업 탐색기

직업에 대한 실질적인 고민

 학교를 졸업하고 회사에 취직할 때만 해도 어느 회사에 취직할지는 고민했지만, 회사에 취직할지 말지는 딱히 고민해보지 않았다. 취업은 되면 좋은 것이었다. 직장을 구한 후에야 살면서 진로에 대해 깊이 생각해 본 적이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일에 대한 가치관이 서기 전까지는 직장인이 아닌 다른 삶이 있다는 것을 발견할 때마다 흔들렸다.


  회사를 다니면서 내가 가장 힘들었던 것은 규칙적인 생활이었다. 일주일 5일 아침마다 꼬박꼬박 출근하는 것이 힘들었다. 정규직의 특성상 때론 일이 없거나, 전날 야근한 후에도 자리를 지켜야 했는데 그런 상황이 너무 답답했다. 일이 긴박하거나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상황에서 일이 몰아치거나 야근하는 것은 괜찮았다. 집중하는 재미가 있었다. 하지만 몰아친 후에도 마음 편히 쉴 수 없는 상황은 견디기 어려웠다. 자유로운 환경에서 일하고 싶었다.


  그러던 차에 취미 강사를 시작하면서 프리랜서를 현실적으로 바라보게 되었다. 일주일 스케줄을 자유롭게 조절할 수 있었지만, 정해진 스케줄은 반드시 지켜야 했다. 직장인처럼 급한 사정이 생겼을 때 휴가를 쓰기 어려웠다. 게다가 일정한 수요를 유지하려면 나만의 독보적인 콘텐츠가 필요했다. 대체되지 않기 위해서 일하지 않는 시간에도 꾸준히 연구해야 했다. 직장인과는 다른 방식으로 자율성에 제약이 있었다. 하지만 가르치는 직업의 뿌듯함과 만족감은 말할 수 없이 컸다.


  유럽여행에 한창 빠져있을 때는 유럽에 살아보고 싶었다. 많이 벌지 않아도 예쁜 도시를 배경 삼아 느린 템포로 유럽에서 살면 행복할 것 같았다. 유럽에서 취직하고 싶었지만, 언어의 제약으로 유럽에서 직장을 구하기 쉽지 않았다. 해외에서 한인 숙소를 운영하는 것을 잠시 생각했지만, 그러기엔 가사에 관심도 재능도 없었다. 집안일도 제대로 안 하는 내가 매일같이 집을 관리할 자신이 없었다. 살고 싶은 장소를 위해 좋아하지 않는 일을 할 수는 없었다. 일 욕심이 있다는 사실을 그때 깨달았다.


  돈 욕심이 없는 편이라고 생각했지만, 주위에서 누가 투자에 성공했다든가, 연봉이 1억을 넘는다든가 하는 얘기를 들으면 내가 도태된 느낌이 들었다. 일정이 자유로운 영업직을 생각하던 차에, 지인을 따라 무작정 다단계 영업에 도전했다. 나에게 직업 안정성이나 평판은 그리 중요한 요소가 아니었다. 대학교 때 아르바이트로 호객행위는 해봤지만, 영업은 달랐다. 나의 이익을 위해 다른 사람을 설득하는 것 같아서 내키지 않았다. 스스로 확신이 없는 상태에서 상대방을 설득하는 것이 어려웠다. 영업은 아무나 하는 게 아니라는 것을 깨닫는 것으로 나의 영업사원 도전기는 마무리되었다. 보수가 높으면 좋겠지만, 직업을 고르는데 우선순위는 아니었다.


  회사를 쉬는 동안 일이 나에게 주는 의미가 한층 명확해졌다. 별일 없는 평온한 일상이 이어지면서 회사에 다니지 않고도 잘 살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소일거리로 할 수 있는 일들은 주변에 생각보다 많았고, 생활비를 충당하기엔 충분했다. 필요한 만큼 일하고 개인적인 삶을 즐길까 생각했지만, 소일거리야말로 돈을 벌기 위해 하는 일이었다. 돈 벌기 위해서 무작정 일하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발목을 잡았다. 자아실현 욕구가 강한 편이었다. 생각보다 일에 거는 기대가 컸다. 회사 일이 늘 마음에 드는 건 아니었지만 일상에서 하기 어려운 일들을 경험했다. 기업 단위로만 할 수 있는 일이 있었다. 이따금 보람을 느끼기도 했다. 회사생활을 하면서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고 일상과 다른 환경에 노출되는 것이 좋았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직업은 일차적으로 돈을 버는 수단이었지만, 하루 중에 가장 많은 시간을 쏟는 일이기도 했다. 직업에 따라 내 꼴이 바뀌었다. 직업에 따라 사는 모습이 천차만별이었다. 말투도, 옷차림도, 성격도, 만나는 사람도, 습관도, 가치관도 직업에 따라 변했다. 삶의 방향과 직업의 방향이 맞지 않을 때 엄청난 괴리감이 찾아왔다. 내가 스스로 직업에서 추구하는 것을 정의할 수 있을 때까지 나는 부단히 부딪히고 흔들렸다. 무작정 좋아 보이는 것들 사이에서 나만의 우선순위를 찾기까지 혼란의 연속이었다. 다양한 경험과 고민 후에, 일의 의미가 분명해졌다. 


  나는 10년 후에는 어떤 일을 하고 있을까? 지금처럼 여유를 가지고 성장하는 삶을 살았으면 좋겠다. 10년 후에는 내가 가진 것을 나누면서 살고 싶다. 어떤 일을 하더라도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는 일을 하고 있기를 바라본다.

작가의 이전글 배워서 남 주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