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달팽이에게 필요한 사람인가

by 곱게자란아빠

회식 자리였다.

후배 한 명이 맥주잔을 내려놓더니 계산기를 두드리듯 말했다.

“선배가 우리 개발팀에서 나이 세 번째로 많아요.”

나는 웃어넘겼다.

“에이, 설마.”

하지만 그 애는 진지했다.

“김○○ 부장님, 송○○ 선배, 그리고 그다음이 선배죠?”

분위기를 깨면 안 될 것 같아 농담처럼 받아쳤다.

“동안이라 티가 안 나지?” 후배들이 웃어줬다.

하지만 속은 씁쓸했다. 나, 언제 이렇게 나이가 들어버린 걸까.


요즘 들어 회사에서 내가 점점 ‘구형 모델’이 되는 느낌을 받는다.

나보다 어린 동료가 먼저 진급하고,

상사도 예전처럼 나를 찾지 않을 때면 내가 조금씩 쓸모가 없어지는 건가 싶다.



집에서는 다른 풍경이 펼쳐진다.

어린 아들 덕분에 사슴벌레, 구피, 달팽이까지 키워봤다.

문제는 아이들이 금방 흥미를 잃는다는 거다. 결국 똥 치우고 밥 주는 건 내 몫이었다.

특히 달팽이는 손이 많이 간다. 하루만 챙기지 않아도 집이 금방 엉망이 된다.

그럴 때면 미안한 마음에 깨끗이 씻은 상추를 넣어주고, 분무기로 물을 뿌린다.

그러면 껍데기 안에서 천천히 고개를 내민다.

몸을 길게 늘여 기지개를 켜고, 내가 준 상추를 열심히 먹는다.

그 모습을 보고 있자면 괜히 마음이 놓인다.

집에서 ‘아빠, 아빠’ 소리가 줄어든 요즘, 달팽이만큼은 여전히 나를 찾는다.

내가 부지런히 움직여야만, 이 작은 생명체가 살아갈 수 있다.


사람은 자기가 필요하다고 느낄 때 살아갈 힘이 생긴다고 하던가.

요즘 들어 그 말이 이해된다.

회사에서도, 집에서도 예전만큼 주목받지 못한다고 느낄 때,

나를 온전히 필요로 하는 달팽이의 작은 몸짓을 보다 보면 묘하게 힐링이 된다.

(불멍 같은 용어로 달멍도 있지 않을까...)

달팽이든 뭐든 누군가에게 쓸모 있는 존재라는 사실이,

이 무력감을 뚫고 나아갈 멋쩍은 웃음으로 포장한 용기를 준다.


곧 앞자리가 바뀌겠지만 아직은 40대다.

그런데 벌써 세상 다 산 사람처럼 굴다니, 자책을 한다.

아마 내 주변이 워낙 젊어서 더 그렇게 느끼는 걸 거다.


괜찮다.

이 작은 존재를 돌보는 것처럼,

누군가에게 여전히 그럴 것이다.

나를 필요로 하는 곳이 있다는 믿음.

그 믿음을 다독이며, 나는 다시 기지개를 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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