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에 숨통을 트는 '별것 아닌 일'

by 곱게자란아빠

오랜 단골 미용실. 이제 원장님과는 머리뿐 아니라 삶을 나누는 사이가 되었다.

굳이 말하지 않아도 서로의 처지가 짐작되는, 그런 편안한 관계. 오늘은 특별히 대화가 길었다.


“월세를 자꾸 올려달래요. 그래서 이번에 근처로 옮기려 해요.

솔직히 걱정되죠. 지금보다 좁고 위치도 덜 좋으니까. 단골손님들이 불편해할까 봐…”


아파트 상가에서 10년을 버텼는데, 결국 월세 때문에 자리를 비워야 한다는 이야기.

손님들과 쌓은 기억을 두고 떠나야 하는 아쉬움.

그러나 한편으로는 훨씬 저렴한 월세 덕분에 이제는 조금 덜 치열하게 살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

원장님의 목소리에는 상실과 설렘이 뒤섞여 있었다.


“이제 애들도 좀 봐야죠. 아침부터 밤까지 일만 하니까 얼굴 보기가 힘들어요.

애들도 이제 고등학생인데 엄마가 좀 봐줘야 할 것 같기도 하고요.

손님이 줄어들 수 있다는 건 알지만, 괜찮아요. 일만 하다 인생 다 보내긴 싫거든요.”


그 말이 거울 속 나를 찔렀다.

오래 일하다 보니 몸에 일이 배었다. 쉬는 날에도 일을 해야 할 것 같고, 가만히 있으면 불안해진다.

미용실 단골인 정신과 의사 선생님이 들려줬다는 말이 내 얘기 같았다.

“요즘은 정신과에서도 우울증 약보다 불안이나 분노 조절 약을 더 많이 처방한대요.

가만히 있으면 불안해서 일하고, 일만 하다 보니 행복하지 않고, 그러다 화가 난다고.”

듣는 순간, 뜨끔했다.


잠시 후 원장님은 한 재수생 손님 이야기를 꺼냈다.

학원과 집만 오가며 늘 같은 일상을 보내니 재미도 없고 스트레스가 심했단다.

그래서 그 아이는 스스로에게 ‘하루에 한 가지씩 새로운 것을 경험하기’라는 숙제를 내줬다고.

공유 자전거를 타고 집에 돌아오기, 전동 킥보드를 타보기, 미용실에 와서 머리 자르기...

이런 작은 시도들로 답답한 일상에 숨통을 틔웠다고 했다.


“별거 아닌데도 그런 걸 찾아서 하는 게 얼마나 기특한지 몰라요.

저도 못 해본 건데… 요즘 애들이 저희보다 나아요.”


그 말을 듣고 생각했다.

나도 이제 나를 위한 ‘별것 아닌 일’을 해볼 때가 된 것 같다.

평소에 걷지 않던 길을 산책하고, 잊고 있던 음악을 다시 들어보고,

햇살 좋은 오후에 벤치에 앉아 멍하니 있어 보는 것.

작은 행동이 주는 새로운 감정을 느껴보는 것부터 시작해도 좋겠다.


그러고 보니, 오늘 미용실에서 나눈 이 대화도 내겐 ‘별것 아닌’ 새로운 경험이었다.

깔끔하게 정리된 머리만큼, 한동안 엉켜 있던 생각의 실타래가 조금은 풀어진 기분이었다.

삶의 속도를 늦추고, 주변을 돌아보고, 나를 위해 새로운 숨을 불어넣는 것.

어쩌면 그게 나이 들어가는 우리가 배워야 할 가장 중요한 자세가 아닐까.


하루를 채우고 있는 ‘별것 아닌’ 일은 무엇인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