답답했던 건 임 프로였다

F리더와 T팀원 간의 관

by 곱게자란아빠

임 프로를 떠올리면 가장 먼저 '말이 없다'는 사실이 생각난다.

우리 팀에 온 지 1년이 되었지만 개인사를 공유하거나 일상을 소통하지 않는다.

팀원들과 많은 대화를 나누는 일도 거의 없다.

하지만 어느 팀에나 존재하는 '넘사벽'처럼, 개발팀에서는 그 차이가 확연히 드러나는 사람이다.

그의 프로그램은 리뷰할 때마다 감탄을 자아낸다.

생각지도 못한 간결한 접근법, 버그는 거의 찾아볼 수 없는 완벽함.

신규 기능을 개발했는데 버그가 하나도 없다는 게 오히려 이상할 정도다.


회사라는 곳은 일을 잘하면 일이 더 몰리는 법이다.

임 프로의 뛰어난 역량과 신뢰 덕분에, 새로운 업무나 급한 건이 생기면 자연스레 그를 찾게 되었다.

새로운 업무를 주기 위해 임 프로를 불렀다.

최근까지도 숨 가쁘게 많은 일을 처리해 온 걸 알기에,

나는 먼저 미안한 마음을 담아 ‘쿠셔닝’ 멘트를 던졌다.


“요즘 많이 바빴죠?”

“네.”

“지난번 업무 마무리는 다 된 건가요?”

“네.”

“컨셉이 조금씩 바뀌어서 계속 수정해야 할 것 같은데, 고생이 많아요.”

“네.”


내 말이 길어질수록 그의 대답은 짧아졌다.

대화라기보다 버튼을 누르면 튀어나오는 자동응답 같았다.

결국 나는 본론으로 들어갔다.


“이번에 새로운 기능이 이런 게 있는데요, 일정이 조금 빠듯하네요.”

"가이드는 발행이 되었고… 일정이…."

머뭇거리는 나의 말을 끊고 임 프로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네. 확인해 보겠습니다.”


편하지 않은, 숨 막히는 대화였다.

하지만 가장 믿음직한 일꾼에게 급한 업무를 맡겼다는 사실에 나는 나름 만족했다.

다음 날, 임 프로는 구현을 끝내고 적용까지 마쳐 놓았다.

별다른 말도 없었다.

보통은 “가이드가 부족해요”, “예외 처리가 안 돼 있어요”,

“내일까지는 무리예요” 같은 반응이 돌아오기 마련인데,

임 프로는 ‘네’ 몇 번으로 모든 걸 해낸 것이다.


나는 임 프로가 과도한 업무에 지쳤을 것이고,

팀 리더가 그 사실을 알아주지 못한 채 계속 일을 할당하는 것에 화가 났을 수도 있다고 짐작했다.

그의 속마음을 풀어주고 싶어 나는 구구절절하게 말을 이어갔던 것이다.

하지만 그의 짧은 '네'라는 응답만으로는 나의 진심이 전달되었는지 확인할 길이 없었고,

그 찜찜함은 계속 남아 있었다.



퇴근 후, 나는 와이프에게 이 불편한 감정을 털어놨다.

내 마음 씀씀이를 알아주는 사람이 있길 바랐던 것 같다.


“정말 답답했겠다.”

“그치? 대화가 서로 주고받는 게 있어야 하는데….”

“아니. 당신 말고. 임 프로님.”

나는 망치로 머리를 맞은 기분이었다.

와이프의 시선은 전혀 달랐다.


“빨리 새로운 일이나 설명해 주길 기다리고 있는데,

당신이 자꾸 쓸데없는 말을 하니까 얼마나 답답했겠어?”


“아니, 갑자기 새로운 업무를 주면 기분이 상할 수도 있잖아. 그간 일도 많았는데.”


“회사에서 일하는 게 당연하지, 왜 그걸 미안해해?

당신이 대표도 아닌데. 내가 제일 싫어하는 상사 스타일이 바로 그거야.

업무 줄 때는 그냥 명확하게 설명하고 기한만 말해주면 되는데, 쓸데없는 말 길게 하는 거.

나 같으면 ‘그래서 업무가 뭔데요?’라고 되묻고 싶다니까?”


나는 할 말을 잃었다. ‘왜 나만 일을 더 많이 하지?’라는 서운함이 들지 않냐고 물었더니,

그녀는 이렇게 답했다.

“내가 다른 일 때문에 바쁘면 못 한다고 말하면 되지.

내가 할 수 있는 업무면 당연히 하는 거고. 그게 회사잖아.”


그리고는 자리에서 일어나며 한마디 던졌다.

“임 프로님 진짜 답답했겠다. 으휴, F들…”


와이프는 전형적인 대문자 T였다. 나는 극단적인 F였다.

그리고 개발자 중에는 T가 많다. 임 프로 역시 왕(王) 대문자 T일 게 분명했다.

나의 입장에서 다른 사람도 같을 거라 생각했던 대화 방식은 사실 불필요한 장황함이었을지도 모른다.

검색을 해보니, 이미 많은 리더들이 같은 고민을 하고 있었다.

T 성향의 팀원에게는 감정 포장이 아니라 ‘논리와 성과 중심의 명확한 근거’가 핵심이라고 했다.

나는 주변을 둘러봤다.

김 프로는 F 같고, 오 프로는 무조건 T겠지. 윤 프로도 T네.

머릿속에 팀원들의 MBTI 알파벳이 하나씩 떠올랐다.


그리고 문득, 작은 실험을 하고 싶어졌다.

“오 프로, 이 기능 내일까지 해오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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