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평가를 앞두고

by 곱게자란아빠

‘삑’ 소리와 함께 사원증을 찍고 게이트를 통과한다.
커피 한 잔을 들고 사무실로 향한다.
약속된 자리에 앉아, 지난밤 도착한 새로운 업무를 확인하는 것으로 하루가 시작된다.


누가 시킨 것도 아니다.
마치 홀린 듯, 수많은 사람들이 똑같은 아침을 반복한다.
보이지 않는 회사의 관리 시스템은
불쾌하지 않을 정도의 선을 지키면서도 우리를 단단히 구속한다.
그 선을 늘 팽팽하게 유지하는 것이 바로 이 회사가 자랑하는 ‘관리의 묘미’다.


본인 평가, 직원 간 평가, 상사 평가…
같이 일을 하는 사람들 간의 이러한 평가 제도는 서로가 서로를 의식하게 만든다.

자칫 누군가의 나태함으로 헐렁해질 수도 있는 선을 계속 붙들고 있으라는 눈에 보이지 않는 감시이다.

이름만 다를 뿐, 이러한 평가는 주는 사람도 받는 사람도 스트레스다.
다만 이 평가는 외부로 공개되지 않으니,
'옆자리에서 월급 루팡 하는 저 동료보다는 내 점수가 높겠지.'라는 자기 위안으로 넘길 수 있다.


이에 반해 외부로 낱낱이 공개되는 평가가 하나 있다.
부서와 회사의 건강도를 측정하는 평가.

당신은 지금의 회사에 만족하십니까?

부서장은 당신의 성장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습니까?

인사 평가는 공정하다고 생각하십니까?

우리 회사는 윤리적이며, 이에 자부심을 느낍니까?

질문 하나하나를 읽다 보면, 좋은 점수를 줄 수 없는 항목들뿐이다.
나에게 일을 시키는 사람에 대한 평가이자,
실적은 최고라면서 성과급 앞에서는 늘 위기를 말하는 회사에 대한 평가.
고운 말이 나올 리 없다.

수년째 이어지는 이 평가는
학창 시절 수학 성적처럼 모든 능력을 대표하는 잣대가 된다.
한 과목 점수로 우등생과 열등생을 나누던 그 시절처럼, 부서의 모든 것을 대표하는 숫자가 되어버린다.


결과 발표 후 2주 동안은,
이름 대신 점수로 불리는 끔찍한 시간을 견뎌야 한다.

“이번에 저 부서 40점이래.”
“그래, 그렇게 쥐어짜더니 결국 그럴 줄 알았다.”
“쉿… 쉿, 40점 지나간다.”

주변의 모든 대화가 이렇게 들리는 환청에 시달리기도 한다.


그러나 대개 낮은 점수의 원인은 부서장이 아니라 회사다.
갑과 을의 관계에서, 을이 갑을 평가할 수 있는 기회는 이 순간뿐이다.
익명의 보호 아래 쏟아낸 불만은 정당한 권리 행사지만,
그 결과는 선량한 시민 부서장을 무너뜨리고
결국 마피아에게 놀아나는 게임의 결말을 만든다.


그래서 다음 라운드에서는 을이 전략을 바꿨다.
선량한 시민을 지켜야 한다는 마음으로, 갑에게도 후한 점수를 주었다.
그 덕분에 부서장은 살아남았지만, 마피아는 ‘최고의 갑’이라는 훈장을 달았다.

관리의 회사는 이렇게 또 한 번 관리의 묘를 발휘했다.

시민들의 자발적 복종을 이끌어낸 것이다.


어느덧 올해도 마피아 게임의 계절이 돌아왔고,

메일함에는 평가를 시작하라는 안내장이 도착해 있다.

마음의 소리를 따라 정직한 패배를 선택해야 할지,

아니면 내 사람을 지키기 위해 기꺼이 다정한 거짓말쟁이가 되어야 할지.

그리고 나 역시 이번 게임에서 살아남을 수 있을지.

20년 넘게 이 게임에 참여했지만, 나는 아직도 이 게임의 정답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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