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잘못이 아니라고 말해줘!

by 곱게자란아빠

우리 회사는 개발팀과 검증팀이 나뉘어 있다.

나는 개발팀 소속이고, 내가 만든 기능들을 검증하는 팀의 대장이 바로 ‘이 프로’다.


요즘 다른 회사들은 개발과 검증을 한 팀에서 한다지만, 우리 회사는 여전히 각자의 영역을 지킨다.

개발팀이 기능을 구현하면, 검증팀은 그것을 확인하고 수정 요청을 한다.

과제마다 정해진 일정을 맞추려면 그들의 ‘OK’ 도장이 필요하다.

상품화 여부를 최종 판단하는 것도 그들의 몫이니, 입김은 막강하다.


평소 이 프로는 늘 웃는 얼굴로 인사하는 친절한 사람이다.

하지만 상품이 출시된 후 시장에서 고객의 불만이 접수되면 그의 목소리는 돌변한다.


“혹시 그 이슈, 알고 있나요?”

“아직 분석 중입니다.”

"원인이 뭔가요?"

“아직 분석 중입니다.”

“우리 문제인가요, 아닌가요?”


분석할 시간도 주지 않은 채 원하는 답을 재촉하는 그의 목소리에는 짜증이 묻어 있었다.


결국 본론은 이것이었다.

“근데 이 문제, 우리가 검증해서 찾아낼 수 있는 문제인가요?”


책임에서 벗어나고 싶은 듯한 질문이었다.

그가 듣고 싶은 말을 해주어야만 이 영양가 없는 통화가 끝날 것을 나는 알고 있다.


“이번 이슈는 복합적인 조건이 맞아야 가끔 발생하는 거라, 검증 단계에서 잡기는 어려울 것 같네요.”


그러자 그의 목소리는 금세 다시 친절해졌다.

“아, 그렇죠? 그래서 검출이 안 된 거구나.”


안도하는 그의 말에 나는 불쾌했다.

문제가 있으면 함께 책임지고 해결해야지,

내 대답으로만 짐을 덜어내려는 태도는 편치 않았다.


한 번은 그의 팀원이 조심스럽게 말했다.

“개발팀과 통화하실 때마다 너무 민망해요.

책임을 회피하려는 질문을 계속하시잖아요. 아마 임원 보고 자리가 두려우신 것 같아요.”

‘나만 그렇게 느끼는 게 아니구나’ 하고 웃어넘겼다.


그러던 어느 날, 이 프로가 술 한잔하자고 연락을 해왔다.

“그동안 너무 미안했습니다. 저도 제 문제를 잘 알아요.

그런 상황이 오면 불안감이 너무 커져요.

그 불안을 줄이는 방법이… ‘당신 잘못 아니에요’라는 말을 듣는 거였어요.”


뜬금없는 그의 고백.

나 역시 늘 비슷한 불안을 안고 일한다.

‘혹시 내 실수 때문에 프로젝트가 망가지진 않을까?’

이런 두려움은 누구에게나 찾아오는 손님 같은 것일 테다.


하지만 곧 다른 생각도 스쳤다.

불안은 불안이고, 책임은 책임이다.

불안하다고 해서 책임에서 자유로워질 수는 없다.

우리는 책임질 것을 책임지라고 월급을 받는 직장인이니까.


결국 나는 “책임 질 일이 많아서 힘드시겠어요. 기운 내요”라고 달래줬다.

차마 하고 싶은 말은 꺼내지 못했다.

그는 나보다 더 스트레스에 취약해 보였고, 다른 방식으로라도 불안을 이겨내길 바랐다.


누군가는 문제가 생겼을 때 “고치면 되지”라고 쿨하게 넘기는 반면,

또 누군가는 그 문제를 자기와 동일시하며 괴로워한다.

어느 쪽이 옳다고 말할 수는 없다.


때로는 불편한 마음을 눌러두고 “기운 내자”는 말 한마디를 건네는 것.

팍팍한 직장 생활 속에서 우리가 배워야 할 건 상대에 대한 이해가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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