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로나민골드

먹은 날과 안 먹은 날의 그거..

by 곱게자란아빠

“으. 피곤해... 아로나민 한 통만 줘.”
약국 문을 열자마자 그렇게 말했다.

“요즘 이게 많이 나가. 이거 한 번 먹어봐라.”
친구인 홍 약사가 권한 비타민.
그러고 보니 옆자리 동료 책상 위에서도 본 것 같다.

“이건 진짜 좋은 거 맞냐? 저번에 네가 추천한 건 아무 느낌도 없던데. 비타민은 피곤함이 좀 사라지는 맛이 있어야 되는데?”

홍 약사는 어이없다는 듯 고개를 젓는다.
“비타민은 성분 보고 꾸준히 먹는 거지. 밥처럼.
한 알 먹었다고 바로 번쩍하는 건 없어.”

“그래? 그럼, 아로나민골드로 줘.”




아주 오래전, 내가 고등학생이던 시절.
엄마는 노란 철제통에 든 영양제를 아침마다 내 책상 위에 올려두셨다.
그땐 ‘영양제’라는 말 자체가 낯설었다.
비타민 C니 D니 구분해서 달리 먹는 건 당연히 상상도 못 하던 일이고, 비타민은 그저 겨울에 귤로 보충하는 영양소일 뿐이었다.
게다가 감기에도 약 안 먹고 버티는 게 당연하던 남자 고등학생에게 영양제라니...
어울리지 않는다는 생각뿐이었다.

“학교 다니느라 힘들지? 꼭 먹어.”
엄마는 늘 그 말씀과 함께 챙겨주셨다.
효과가 있는 건지 없는 건지, 어떤 성분인지, 왜 먹어야 하는지 아무것도 모르면서, 엄마의 손길 하나로 나는 그 노란 통을 몇 년이고 비웠다.

대학을 가고, 대학원을 지나, 취업을 하고, 결혼을 하고..

언제부터인가 누군가가 나에게 영양제를 챙겨주는 일은 사라졌다.

그리고 중년이 되면서,
몸이 예전처럼 회복되지 않는다는 걸 깨달았다.
이때부터 친구가 운영하는 약국은 정기적으로 들러야 하는 장소가 되었고, 눈에 보이는 좋아 보이는 것들을 스스로 챙겨 먹기 시작했다.

그때 문득 떠오른 이름.
엄마가 건네던 그 노란 철제통, 아로나민골드.
내가 번 돈으로 처음 한 통을 샀다.

알약 한 알에서 풍기는 특유의 향,
입에 넣으면 어딘가 익숙한 맛,
먹고 나면 잠깐 기운이 도는 듯한,
설명하기 어려운 느낌.

그걸 삼키고 있으면
고등학생 시절의 내가 잠깐 떠오른다.
아무것도 몰랐지만,
누군가가 나를 믿고 챙겨주던 시절의 나.

시간이 지나고 누군가가 나를 챙겨주는 일은 자연스럽게 끝났다.
이제는 내가 나를 챙겨야 하는 나이가 됐다.
아로나민골드를 삼키며 문득 생각한다.
이 알약은 그냥 비타민이 아니라,
한 시절의 온기라는 걸.
오늘도 아침은
그 기억과 함께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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