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주

딱 세 잔은 괜찮아

by 곱게자란아빠

코로나가 바꿔버린 것들이 꽤 많다.
예상치 못한 상황에 적응하며 자연스럽게 생겨난 변화들.
그중 가장 치명적인 변화를 꼽으라면,
내가 술의 ‘맛’을 알아버렸다는 사실이다.

벌써 6년 전 일이 되어버린 코로나 시기.
대책 없이 늘어나는 확진자 수를 줄이는 유일한 방법은 그냥 집에 있는 것뿐이었고,
학교도 회사도, 수업도 회의도
모두 거실 안으로 들어와 버렸다.

하루의 동선은 현관을 넘지 않았고
사람을 만나는 일은 화면 속 얼굴로 대체됐다.
그러다 보니 사람과의 만남이 유난히 아쉬웠고,
친구들과 고기 굽는 소리를 들으며
술잔을 부딪치던 그 평범한 모임들이
괜히 더 간절해졌다.

나는 원래 술을 즐기는 사람은 아니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못 한다’는 순간,
더 하고 싶어졌다.
못 마신다고 하니 괜히 아쉬워졌고,
그때부터 자연스럽게
집 식탁 위에 술잔이
자리를 잡기 시작했다.

예전엔 퇴근 후 맥주 한 캔으로
스트레스를 털어내고
“이러다 배 나오겠다” 한마디 덧붙이면 끝이었다.
그런데 언젠가부터
술은 더 이상 곁다리가 아니었다.

건강검진 문진표를 작성할 때면 나는 늘 여유가 있었다.
“당신은 술을 얼마나 마십니까?”
‘매일’, ‘주 3~4회’ 같은 선택지를 보며 대체 누가
이렇게 마시는지 혀를 차기도 했다.
저 정도면 중독 아니냐며 속으로 걱정 어린 훈수를 두면서, 나는 아주 당당하게 ‘2주에 1번’ 칸에 체크표를 남겨왔다.

그랬던 나였기에
요즘의 내가 조금 걱정되긴 했다.
그런데 더 놀라운 건
술의 양이 아니라,
술을 마시는 방식이었다.

나는 소주를 딱 세 잔만 마신다.
대신 그 세 잔은
입을 대는 순간 흘러넘칠 만큼 가득 따른다.
‘세 잔’이라는 규칙은 지키되,
그 안에서는 최대한을 허락하는 방식.
그걸 깨닫는 순간 살짝 서늘해졌다.

이건 정확히
어릴 적 아버지가 하던 반주 스타일과
똑같았기 때문이다.

엄마가 요리를 준비하던 날이면
아버지는 늘 느릿하게 소주병을 가져오셨다.
엄마는 잔소리를 시작했고,
아버지는 같은 말로 받아냈다.

“세 잔은 괜찮아. 딱 세 잔만.”

말은 그렇게 하시면서도
한 잔, 한 잔
넘칠 듯 가득 채워 따르셨다.
엄마는 답답한 표정으로 바라봤고,
나는 속으로 생각했다.
'저게 그렇게 맛있을까?'
'엄마가 이렇게 싫어하시는데
왜 굳이 저렇게까지 마실까.'

그런데 지금,
내가 그걸 그대로 하고 있다.

다른 점이 있다면
아내는 예전의 엄마처럼
잔소리를 하지 않는다는 것.
그래서인지 그때 엄마가 암묵적으로 허락했던
“세 잔만!”이라는 규칙을
이젠 내가 스스로에게 들이밀며
꽤 성실히 지키고 있다.

그리고 어느 날 문득
나는 깨달았다.
'술이... 생각보다 달다.'

아마 그 시절의 아버지도 이 달큰한 맛을 아셨겠지.
고단한 하루를 털어내기엔 일반적인 용량의 세 잔으로는 부족해서, 그렇게 잔이 넘치도록 채우셨던 거겠지.

나이가 들고
그때의 아버지 나이에 조금씩 가까워질수록,
아버지를 ‘재평가’하게 되는 순간들이 늘어난다.
완고해 보였던 뒷모습 속에 숨겨진 작은 즐거움과 위로를 이제야 조금은 알 것 같다.

오늘도 나는 아버지를 추억한다는 아주 그럴듯한 핑계를 대며 식탁 앞에 앉는다.
그리고 나만의 엄격한 규칙을 확인한다.

딱 세 잔.
늘 그렇듯,
조금 넘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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