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처가 남긴 중독
코로나가 전 세계를 뒤흔들던 시기였다.
경제가 곤두박질치자 시장에는 유동성이라는 이름의 돈이 풀렸고, 그 돈은 어디론가 부지런히 흘러 들어가 주식과 부동산을 미친 듯이 밀어 올렸다.
나는 주식 계좌 앞자리가 사라지는 걸 보며
"어쩌나, 어쩌나" 발만 동동 구르고 있었는데,
정작 발 빠른 사람들은 그때 자산을 사들이고 있었다.
'갭투자'가 뭔지도 몰랐고 '영끌'이 남의 집 이야기인 줄만 알았던, 지금 생각하면 꽤 순진한 시절이었다.
우리 부부는 몇 년 안에 이사를 할 계획이 있었다.
아이들이 커가니 소위 '학군지'라는 곳에서 교육을 시켜야 한다는, 대한민국 부모라면 누구나 한 번쯤 품어보는 고민이 우리 집 식탁 위에도 올라왔다.
"지금 사는 집 정리하면, 그 동네 국평 정도는 갈 수 있겠지?"
아이들을 위해서라면 이 정도 불편함은 감수할 수 있다고, 우리는 제법 낙관적으로 생각했다.
그런데 세상이 단체로 약속이라도 한 걸까.
어느 날부터 아파트 가격이 하루에 천만 원씩 뛰기 시작했다.
"여보, 저 동네 아파트가 왜 자꾸 오르지?"
아내의 말을 처음엔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하지만 상황은 금세 비현실적으로 변했다.
그즈음 정보를 얻고자 가입한 부동산 카페에는 아침마다 누군가가 친절하게 아파트 실거래가를 올려줬는데, 자고 일어나면 5천만 원이 오르고, 다음 날엔 7천만 원이 더 붙어 있었다.
아파트 가격이 무슨 주식 단타 종목처럼 움직였다.
미쳤다, 정말.
"우리 집은 그대로인데 왜 저기만 오르지?"
"여기가 더 살기 좋은 것 같은데... 길 하나 건너인데 왜 저기만?"
"이러다 우리 집 팔아도 저 동네 전세도 못 들어가는 거 아냐?"
당황은 곧 공포로 바뀌었다.
발등에 불이 떨어진 우리는 급하게 우리 집을 '급매'로 내놓았고, 이사 가고 싶은 동네 부동산에 매매 희망 의사를 뿌리고 다녔다.
하지만 그 동네 매물들은
우리가 다가갈수록 더 멀리 달아났다.
집주인들은 매물을 거둬들이거나,
어제보다 1억을 더 부르며 기세를 올렸다.
그렇게 우여곡절 끝에
우리는 역사에 남을 만한 거래를 해냈다.
기존 집은 가장 쌀 때 팔고,
새 집은 가장 꼭대기에서 잡는
'기적의 타이밍'을 실현한 것이다.
1급지가 오르면 2급지로 불길이 번진다든지,
국평이 오르면 대형 평수가 따라간다든지 하는
부동산의 기초 상식은 알지도 못한 채,
나는 그 모든 불리한 타이밍에 정확히 걸려들었다.
싸게 팔아버린 우리 집은 그 후로 꽤 많이 올랐고,
최고가에 잡은 새 집은
꼭대기 층의 희박한 공기처럼
매일의 삶을 답답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웃기게도
내가 집을 사고 얼마 지나지 않아
거짓말처럼 집값이 잡히기 시작했다.
끝도 없이 오를 것 같던 그래프는
마치 내가 계약서에 도장을 찍기만을 기다렸다는 듯
얌전하게 고개를 숙였다.
요즘도 부동산 카페는
아침마다 실거래가를 정리해 올려준다.
집값에 유난히 예민한 사람들이 모여 있지만,
그만큼 최신 정보도 빠르다.
한때는 '얼마나 올랐나'를 보며 초조해했는데,
요즘은 '얼마나 떨어졌나'를 보며
또 다른 종류의 초조함을 느낀다.
하지만 이 '사소한 중독'이 꼭 나쁜 것만은 아니다.
이제는 금리의 흐름이 어떻고,
정부의 주택 기조가 무엇인지,
미국 연준 의장의 한마디에
왜 우리 동네 집값이 흔들리는지도
예전보다는 조금 알 것 같다.
수업료를 아주 비싸게 지불하고 얻은 뜻밖의 지식이다.
지금 당장 집을 사고팔 계획은 없다.
하지만 습관처럼 앱을 열고 시세를 확인한다.
이 행동은 단순히 숫자를 들여다보는 일을 넘어,
무지했던 과거에 대한 반성이자
다시는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겠다는
일종의 수련에 가깝다.
부동산 시세 보기는 그렇게
나를 조금 더 예민하게,
그리고 조금 더 단단하게 만드는
씁쓸하고도 유익한 중독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