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전 초등학교 운동회에 대한 기억은 아직도 생생하다.
만국기가 펄럭이고, 큰 천막들이 운동장 주변에 줄지어 쳐져 있고,
그 천막에는 아침부터 준비한 김밥 도시락과 간식거리를 들고 가족들이 옹기종기 앉아 있었다.
시간이 지나 기억이 조금은 왜곡되었을지도 모르지만,
가장 선명하게 남은 건
운동장에 하얗게 그어져 있던 석회 라인이었다.
그 라인만 보면 두근거렸다.
여섯 명의 친구들과 나란히 라인에 섰다.
라인 끝에는 선생님이 스탬프와 도장을 들고 계셨다.
'탕' 소리와 함께 죽어라 뛰었지만,
선생님의 도장은 야속하게도 딱 세 명의 손등에만 허락되었다.
4등부터는 아무도 반겨주지 않는 결승선을
뻘쭘하게 지나쳐야 했다.
나는 늘 그 4등이었다.
손등에 찍힌 파란색 숫자.
그게 뭐라고 그렇게 갖고 싶었을까.
딱 한 번, 앞서가던 친구가 넘어지는 바람에
어부지리로 3등을 한 적이 있다.
그날 나는 손등에 찍힌 훈장이 지워질까 조심조심 다녔고,
공책 한 권이라는 전리품까지 챙겼다.
하지만 요행은 한 번 뿐이었다.
그 후로 내 손등은 늘 깨끗했다.
아이러니하게도
아무리 뛰어도 숨이 차지 않던 '오래 달리기'에서는
늘 1등이었다.
하지만 세상은 오래 달리는 아이에게는
도장을 찍어주지 않았다.
그렇게 나의 달리기는
'영원한 4등'이라는 패배감으로 기억된 채
조용히 봉인되었다.
그렇게 수십 년이 흘렀다.
전력으로 뛸 일은 없었다.
아들 유치원 체육대회에서
아빠들이 달리기를 해야 했다.
처음 보는 아빠 여섯 명이
또다시 같은 라인 위에 섰다.
저 끝에는 하얀 결승 테이프가 있었고,
어디선가 아빠를 바라보는 아이의 눈빛이 느껴졌다.
'탕'
신호와 동시에 옆의 아빠들이 우당탕 넘어졌다.
나는 손쉽게 1등을 했다.
아이들 운동회에서
오랜만에 뛰다 넘어졌다는
주변 동료들의 이야기를
그동안 웃어넘겼는데,
그게 다 사실이었다.
초등학교 때 그토록 원했던
1등의 희열을 나는 그제야 처음 경험했다.
우리 아이 담임 선생님은
큰 보물이라도 발견한 사람처럼 다가와
계주 대표로 나가달라고 부탁을 했다.
"선생님, 전 달리기를 잘 못하는데요..."
"아이고, 아버님. 무슨 그런 겸손을.
다 봤어요. 그렇게만 하시면 됩니다."
손에 땀이 났다.
앞선 주자들이 거의 차이 없이
나를 향해 달려오고 있었다.
옆 팀 대표 아빠의 걷어올린 종아리가
괜히 더 탄탄해 보였다.
바통이 내 손에 넘어온 뒤로는 기억이 없다.
목이 터져라 아빠를 응원하던 아이 말로는
내가 꽤 격차를 벌렸다고 했다.
무슨 일일까.
초등학교 때 그렇게 간절히 원했던
달리기에 대한 염원이
이제야 이루어진 걸까.
그렇게 나는
둘째 아들 운동회에서도
나를 알아본 그 선생님의 손에 이끌려
주목받는 달리기 대표 선수가 되었다.
"별일이 다 있네."
손자들로부터 이 영웅담을 전해 들은 어머니는
콧방귀를 뀌셨다.
어머니의 기억 속에서 나는 여전히 4등이었다.
몇 년 전부터
달리기 붐이 불었다.
그 선봉에는 김 부장이 있었다.
김 부장은 달리기 전도사처럼
틈만 나면 러닝화 링크를 보내며
할인한다며 한 켤레만 사보라고 꼬드겼다.
그의 적극적인 포교 활동 덕분에
나를 제외한 많은 동료들이 달리기를 시작했다.
늦은 저녁 회사 운동장을 함께 뛰고,
회사 근처 강변 공원을 줄지어 달리고,
단체로 마라톤 대회도 접수했다.
달리기를 열심히 하는 동료들에게는
공통적인 변화가 생겼다.
살이 빠졌다.
그게 컸다.
마흔이 넘어도
젖살이 안 빠진다며 웃어넘기던 볼살과
슬금슬금 나오는 뱃살이 눈에 띄게 달라지는 걸 보니
안 할 수가 없었다.
[써코니]
생전 처음 들어보는 브랜드의 러닝화를 하나 샀다.
가격이 꽤 높아 망설이자
김 부장이 말했다.
"골프나 낚시 같은 취미는 돈 많이 들어요."
"달리기는 좋은 러닝화 하나면 돼요."
"건강에도 좋고, 이 정도 소비는 투자예요. 투자!"
김 부장과 함께하는 달리기는
그렇게 시작됐다.
숨이 턱 막혀 그만두고 싶을 때도
옆에서 계속 뛰라고 밀어붙이는 사람이 있으니
쉽게 포기할 수 없었다.
5킬로, 6킬로, 10킬로.
뛰는 거리는 조금씩 늘어났다.
뛸 때는 늘 고통스러웠지만
뛰고 난 뒤의 상쾌함이
다음번에 또 달리게 만들었다.
젖살이 빠지는 게 눈에 보였다.
이 나이에 얼굴 살 빠지면
주름 들어 늙어 보인다는 걱정도 있었지만
그건 나중에 하기로 했다.
강변 공원에는
달리는 사람들이 눈에 띄게 많아졌다.
복장은 점점 화려해졌고,
그들이 신은 운동화는
더 이상 평범해 보이지 않았다.
[뉴발란스]
다음 달 10킬로 대회를 핑계 삼아
새 신발을 신고 기분 좋게 뛰자며
러닝화를 하나 더 샀다.
그러다 미국 출장을 갔다.
그곳에서도 많은 사람들이 열심히 달리고 있었다.
같이 뛰고 싶은데 신고 나온 건 일상용 운동화였다.
마침 눈에 들어온 호카 매장.
짧게 검색해 보니
한국보다 조금은 저렴해 보였다.
겸사겸사. 그리고 확실히 싸니까.
그렇게 스스로를 설득하며 [호카] 러닝화를 샀다.
김 부장은 아식스 러닝화는 인기가 많아 구하기 힘들다고 했다.
물량이 풀리자마자 순식간에 동이 난다는 말에
괜히 오기가 생겼다.
그렇게 [아식스] 러닝화도 생겼다.
신발장에는 알록달록한 러닝화들이 층층이 쌓여간다.
아내는 신발장을 볼 때마다 고개를 젓는다.
김 부장이 했던 말이 환청처럼 들린다.
'달리기는 돈 안 드는 취미라니까.'
나는 여전히 뛴다.
비좁은 신발장에서
그날의 러닝화를 골라 신으며
열심히 뛰고 있다.
그리고 여전히 살핀다.
'이 신발은 쿠션감이 어떨까?'
모르겠다.
내가 러닝에 중독된 건지,
쇼핑에 중독된 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