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근과 업무 사이에 남겨둔 한마디
"가기 싫다, 가기 싫다."
아침 눈뜨면서부터 내 입에서는 늘 같은 주문이 새어 나온다.
중얼중얼거리며 억지로 차에 올라탄다.
그럼에도 운전대를 잡은 손은
습관처럼 회사를 향한다.
'오늘은 제발,
일에 끌려다니지 말고 주도적으로 해보자.'
사무실에 도착하기 전까지
나는 꽤 그럴듯한 전략가다.
오늘 처리해야 할 일들의 순서를 매긴다.
어제 마무리 못한 리뷰를 끝내고, 문서를 정리하고,
오후에는 미뤄둔 기획안도 조금 손보고.
머릿속 시뮬레이션은 언제나 완벽하다.
문제는 늘 그다음이다.
자리에 앉아 사내망에 접속하고
밤사이 쌓인 메일과
읽지 않은 메신저의 빨간 숫자를 보는 순간,
내가 세워둔 계획은
마치 처음부터 없었던 것처럼 무너진다.
[긴급] OOO, [필독] XXX.
마음을 압박하는 단어를 제목에 떡 하니 붙여
날아온 메일들,
답이 늦어지면 괜히 마음이 불편해지는 메시지들.
화면 가득 '남의 일'이 밀려온다.
바로 직전까지 생각했던
'나의 할 일'은
언제나 그렇게 뒤로 밀린다.
퇴근 시간이 가까워질 즈음에야
문득 이런 생각이 든다.
'아, 오늘 내가 하려고 했던 건 이게 아니었는데...
내일도 역시 험난하겠구나.'
신입사원 시절,
한 부장님은 늘 우리보다 30분 먼저 출근해 계셨다.
그때는 자율 출퇴근제 같은 건 없던 시절이라
모두가 8시에 출근해 업무를 시작했다.
부장님은 7시 30분부터 8시까지
아무 말 없이 성경책을 읽었다.
모니터는 꺼져 있었고,
전화기도 내려놓은 상태였다.
독실한 신자이기도 했지만,
사실은 업무를 시작하기 전
마음을 다스리는 시간이라고
선배들이 귀띔해 줬다.
그땐 그 말이 잘 이해되지 않았다.
일은 손과 머리로 하는 거지,
마음으로 하는 게 아니라고 생각했으니까.
분주한 사무실 한가운데서
혼자만 고요한 모습이
조금 유별나 보이기도 했다.
내 옆자리 사수는 또 달랐다.
출근하자마자 책상부터 정리했다.
어제 쓰다 만 메모를 버리고,
펜을 가지런히 맞추고,
물티슈로 책상을 닦으면서
책상 위를 비웠다.
책상이 정리되기 전까지는
메일을 열지 않았다.
"일이 복잡해질수록
눈에 보이는 것부터 정리해야 돼."
그때는 그 말도
괜히 여유 부리는 소리처럼 들렸다.
메일 하나라도 더 보고
빨리 일을 시작하는 게 낫지 않나 싶었다.
시간이 흘러
나도 그 시절 선배들만큼
연차가 쌓였다.
부장님의 성경책도,
사수의 책상 정리도,
이제는 그때 그 행동들이 이해가 간다.
그건 독실함이나
깔끔함의 문제가 아니었다.
업무라는 거대한 파도에 휩쓸리기 전,
잠깐이라도
내 중심을 붙잡기 위한 의식이랄까.
그리고 지금의 나에게도
그런 의식 같은 습관이 하나 생겼다.
회사 메신저에 로그인을 하면
읽지 않은 메시지가 수십 개 쌓여 있다.
하지만 나는
그걸 바로 열지 않는다.
가장 먼저
아주 친한 동료와의 채팅방을 찾아
딱 한 마디를 적는다.
"안녕."
이 인사를 시작한 지도
벌써 십여 년쯤 된 것 같다.
업무적인 대화도 아니고,
딱히 할 말이 있어서도 아니다.
그저
일이라는 파도 속으로 들어가기 전,
사람에게 먼저 말을 걸고 싶은 마음이다.
수십 개의 메시지보다
한 사람의 이름을 먼저 부르는 일.
차가운 화면보다
온기가 있는 대화를 먼저 여는 일.
"어, 왔어? 안녕."
그 짧은 답장을 받고 나서야
나는 숨을 한 번 고르고
업무 메시지들을 하나씩 연다.
나에게 '안녕'은
오늘도 회사가 시작된다는 신호이자,
오늘 하루도 어떻게든
잘 버텨보자는 작은 약속이다.
성과 중독, 업무 중독 같은 말들 사이에서
나는 이 사소한
안녕 중독에 기대어
오늘도 업무를 시작한다.
오늘도 무사히,
안녕하기를 바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