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개발팀은 남자가 많다.
체감상 성비가 8대 2 정도이며
업무 특성상 같은 학교,
같은 과 선후배 출신들이 유독 많다.
학교에서 보고, 회사에서 또 보고, 회식 자리에서 다시 본다.
게다가 누군가를 만날 시간적 여유도 없다 보니
연애는 자연스럽게 회사 안에서 시작된다.
사내 연애는 장단이 분명하다.
상대방을 다각도로 볼 수 있다는 점은 장점이고,
모든 게 너무 쉽게 노출된다는 점은 단점이다.
그리고 가장 큰 문제는
혹시라도 헤어졌을 때의 어색함이다.
그래서 사내 연애는 늘 비밀로 시작한다.
아주 조심스럽게,
들키지 않을 자신 있는 얼굴로.
하지만 사랑이라는 감정은
숨긴다고 해서 사라지는 종류가 아니다.
출퇴근 시간을 일부러 살짝 어긋나게 맞춘다거나,
우연을 가장해 휴가 날짜를 겹치게 한다거나,
회의실에서 스치듯 마주치는 눈빛만 봐도
'아, 있구나' 싶어진다.
정작 당사자들만 모른다.
"제가 말이죠..."
이 과장은 늘 이렇게 이야기를 시작한다.
이 한마디가 나오면 사람들은 젓가락을 내려놓는다.
"팀 막내 여사원이랑 독일 출장을 같이 간 적이 있어요."
"누구요?"
"개발 1팀 김 과장 와이프. 그땐 우리 팀 후배였거든요.
근데 차로 이동할 때마다 전화가 오는 거예요.
알잖아요.. 독일과 시차가 8시간이라
보통 그 시간이면 한국은 새벽이거든요."
"근데 전화 올 때마다 이러는 거예요.
'아빠가 낚시를 가셨대요.'
'아빠가 걱정이 많으셔서요.'
'아빠가...'"
"차 안에 둘이 있는데,
젊은 남자 목소리가
수화기 너머로 들리는데 아빠라니."
여기저기서 흥미로운 반응이 들려왔다.
적극적인 반응에 신이 난 이 과장이 말을 이어갔다.
"전 확신했죠. 분명 회사사람이다.
어느 날 책상 위에 놓인
전화기에 번호가 뜨길래 슬쩍 뒷 번호 확인하고
임직원 조회를 바로 했죠"
"그래서요?"
"김 과장이더라고요."
그 이야기를 듣고 누군가 말했다.
"그러고 보니
신입이랑 결혼한다고 우리가 질타했던 기억나네."
이 과장은 웃으면서 말했다.
"청첩장 주러 왔을 때
제가 그랬죠.
아빠는 무슨, 오빠겠지."
"나도 하나 있어."
정 부장은 항상 한 박자 늦게 끼어든다.
대신 들어오면 이야기가 단단하다.
"지금 퇴사한 지훈 씨 알지?"
"거기도 사내 커플이었잖아요."
"주말마다 나랑 등산했어.
끝나고 돼지국밥 먹고 헤어지는 게 루틴이었지."
"그런데 그날 지훈씨 차로 이동을 하면서
내가 말을 많이 해서인지,
차 앞유리에 습기가 차기 시작했어.
근데 습기가 차니깐 안 보이던 뭔가가 유리창에 나타난 거야.."
"네? 그게 뭐였는데요..?"
"조그마한 발바닥이 두 개 나타났어..
매우 작은 여자발이었지.
조수석에서 다리를 쭉 뻗고 있었나 봐."
"그때 지훈 씨 당황한 표정을 봤어야 하는데. 하하"
"이야.. 탐정이네 탐정.."
이렇게 사람들은 저마다 발견한
사내연애썰을 재미있게 풀었다.
우리 팀에 신입사원이 들어왔다.
나보다 네 살 어렸다.
말수도 적고, 처음엔 재미없는 친구처럼 보였다.
파트장은 회의가 끝나자마자 나를 불러,
그의 사수를 해달라고 부탁을 했다.
'내 일도 벅찬데'라는 생각이 먼저 들었지만
그래도 대학을 갓 졸업한 남자 후배라니
조금은 신경이 쓰였다.
생각보다 이 친구 귀여운 구석이 있었다.
야구를 좋아했고,
여행 이야기를 할 때는 눈이 반짝였다.
어느 날은 어렵게 구했다며
야구장 표 두 장을 내밀며
주말에 같이 가자고 했다.
라이온즈 파크에 회사 사람들이 많이 올 것 같다는 생각이
잠깐 스쳤다.
그래도 후배랑 야구를 보는 건데
괜찮겠지 싶었다.
그날 이후로
퇴근 후에 가끔 시간을 같이 쓰게 됐다.
어느 날은 회사 앞에서
영화를 보자고 했다.
영화는 사람들 눈에 띄기 쉬운데,
라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그래서 무심한 척 주변을 둘러봤다.
저 아저씨들은 다들 바빠 보였고
영화관과는 거리가 멀어 보였다.
'괜찮겠지...'
그렇게 우리는
극장 안으로 들어갔다.
어느 순간부터
그 애는 내 이름 뒤에 붙던
'대리님'을 붙이지 않았다.
'이게 사귀는 건가'
사람들 입에 오르내리는 건 정말 싫은데..
특히나 저 눈치 빠른 이 과장한테 걸리는 건 더더욱 안된다.
그래서 규칙을 정했다.
사무실에서는 다른 동료 대하듯 목례만 할 것.
사내 메신저로 1대 1 대화는 하지 말 것.
전화번호는 별명으로 저장할 것.
출퇴근은 절대 같이 하지 말 것.
이 과장과 정 부장의 이야기를
너무 많이 들어왔다.
들키지 않을 자신이 있었다.
3년이 지났다.
아무에게도 들키지 않았다.
그 사이 우리는 결혼 날짜를 정했고,
웨딩 사진도 이미 찍어 두었다.
그리고 1년이 더 흘렀다.
이제 결혼이 석 달 앞으로 다가왔다.
더는 미룰 수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팀 회식 날,
오늘은 말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오늘 회식 분위기는 평소보다 더 좋았다.
술잔은 계속 돌았고
사람들은 각자 자기 이야기에 바빴다.
말을 꺼낼 타이밍을
몇 번이나 놓쳤다.
괜히 젓가락만 만지작거렸다.
결국 숨을 한번 고르고 입을 열었다.
"저... 저기..."
윤 과장은 회사에서 조용한 여사원이다.
차분하고 책임감 있게 일을 잘한다.
여행을 좋아해 1년에 몇 번씩 해외를 다닌다.
개인 이야기를 잘하지 않는 편이고
요즘은 사적인 것을 물어보는 분위기가 아닌지라
다들 궁금한 게 조금씩 쌓여 있었다.
그런 윤 과장이 지금 말을 하고 있다.
"제가 결혼을 하게 되었습니다."
순간 축하가 쏟아졌다.
"와, 드디어 결혼하시는군요."
"축하드립니다."
그때 이 과장이 술잔을 들고 말했다.
"민혁 선임이랑이죠?"
윤 과장의 얼굴이 굳었다.
"네… 어떻게 아셨어요?"
이 과장은 웃었다.
"야구장에서 봤어요."
"지난번에 극장 앞에서도요."
사람들의 목격담이 이어졌다.
누구나 하나쯤은 기억을 가지고 있는 얼굴이었다.
완전 범죄를 꿈꾸기엔
4년이라는 시간이 너무 길었던 모양이다.
파트장까지 말했다.
"그래도 정말 잘 숨겼어요."
윤 과장은 고개를 숙였다.
"네... 감사합니다."
사내 연애는 결국 들킨다.
다만 언제 들키느냐의 문제일 뿐이다.
그리고 이상하게도
결혼 이야기가 나오면
사람들은 늘 이렇게 말한다.
"알고는 있었어요."
마치 처음부터
비밀이 아니었다는 듯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