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자리의 무게를 지는 사람
회사에는 늘 주인이 없는 일이 생긴다.
누군가 떠나거나 새로운 일이 생기거나,
아무도 손대지 않은 일이 슬그머니 고개를 들 때.
그 일은 잠시 공중에 떠 있다가,
결국엔 누군가의 책상 위로 내려앉는다.
신기하게도 그 책상은 늘 같은 사람의 것이다.
불평 대신 한숨을 택하고,
거절 대신 ‘어쩌겠어요’를 입에 올리는 사람.
작년 이맘때, 동료 김 부장이 나를 불렀다.
커피 한 잔을 앞에 두고 말했다.
“좋은 기회가 생겨서 지원했는데, 합격했어요.
다음 주부터 1년간 파견으로 나가게 됐어요.”
전혀 내색하지 않았던 사람이었다.
하지만 물밑에서는 분주했을 것이다.
그의 성향을 보면, 지금 하는 일보다 훨씬 잘 어울리는 자리였다.
웃으며 축하했다. 진심이었다.
하지만 그 진심 뒤편에서는 그의 빈자리를 어떻게 메울지 계산하고 있었다.
그날 밤, 그룹장에게서 연락이 왔다.
“김 부장님 이야기 들었죠? 업무 어떻게 하죠?”
질문이었지만, 답은 정해져 있었다.
부장 한 명의 빈자리를 메울 사람은 없다.
그룹장은 ‘제가 메워보겠습니다’라는 말을 기다리고 있었다.
긴 침묵 끝에 결국 내가 먼저 백기를 들었다.
“어쩌겠어요. 공백 안 생기게 제가 막아야죠.”
“1년만 고생해 주세요. 너무 힘들면 꼭 말해요.”
그 말이 얼마나 공허한 약속인지, 이미 알고 있었다.
그렇게 1년이 흘렀다.
나는 어느새 1.5인분의 일을 해내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룹장이 다시 찾아왔다.
“김 부장님 파견 건 말인데요, 1년 연장 요청이 왔어요. 어떻게 하죠?”
‘어떻게 하죠.’
그 말은 참 섭섭하게 들렸다.
인사팀 요청을 거절할 수 있냐고 묻자, 그는 고개를 저었다.
결국 그 질문은 ‘이번에도 당신이 좀 막아달라’는 말의 다른 표현이었다.
지난 1년간 내가 감당해 온 무게에 대한 언급은 없었다.
그 공백은 이제 자연스럽게 내 일이 되어 있었다.
“연장하려면 인력 보충이 필요합니다.”
이번에는 그냥 넘길 수 없겠다 싶어, 조금 단호하게 말했다.
그룹장은 잠시 말을 잃더니,
“김 프로랑 직접 얘기해 볼게요.”라며 자리를 피했다.
나 같아도 돌아오고 싶지 않겠다고 생각하면서도,
“잘 해결해 주세요.”
돌아서는 뒷모습에 부탁을 남겼다.
이틀 뒤, 늦은 밤 김 부장에게 전화가 왔다.
“죄송해요. 1년 더 연장하게 됐어요. 진짜 미안해요.”
“그룹장님이 전화하셨죠?”
“네… 이 부장님을 좀 설득해 달라고 하시더라고요.”
김 부장은 “인력 충원이 필요하지 않겠냐”라고 말했지만,
그룹장은 “이 부장을 설득해라.” 한마디로 답했다고 했다.
나와의 친분을 이용해, 거절을 어렵게 만들라는 뜻이었다.
전화를 끊고, 김 부장이 남기고 간 문서를 덮었다.
가방을 챙기며 생각했다.
이번엔 부당함을 말해야 할까,
아니면 또다시 내 몸으로 이 공백을 틀어막아야 할까.
결국 회사는 책임감 있는 사람의 침묵 위에 세워져 있다.
떠나는 사람도, 회피하는 사람도,
그 사이를 묵묵히 메우는 사람도 따로 있다.
그 침묵이 쌓여 조직은 굴러가고,
누군가는 조금씩 닳아간다.
늦은 밤, 사무실을 나서며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누구나 한 번쯤은 빈자리를 메우는 사람이 된다.
문제는, 그 자리를 언제까지 지켜야 하느냐다.
그건 아마, 각자 나름의 방식으로
조용히 대답해야 하는 질문일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