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저마다의 시차를 산다.
이 회사는 자율 출퇴근 제도가 있다.
말만 들으면 하루가 조금 자유로워질 것 같지만, 여기서 자율은 종종 '스스로 남아 야근하는 시간'으로 바뀌곤 한다.
나는 보통 아침 9시에서 10시 사이에 회사에 들어선다.
정시에 출근해야 하는 아내를 대신해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고 오면 그 시간이다.
하루 시작이 남들보다 조금 늦은 만큼, 퇴근 시간도 밤 10시를 넘기기 일쑤다.
가끔, 정말 드물게 일찍 퇴근해야 할 때가 있다. 가족 생일이나 꼭 챙겨야 하는 집안일이 있는 날.
오후 5시나 6시, 대부분이 집중해 있는 시간에 조용히 가방을 챙긴다.
“오늘 아이 생일이라 먼저 좀 가보겠습니다.”
내 시간인데도 괜스레 미안한 마음이 앞서고, 발걸음도 괜히 빨라진다.
그런데 사무실 밖으로 나오면 전혀 다른 풍경이 펼쳐진다.
셔틀버스 정류장으로 사람들이 줄지어 가고, 주차장에는 빠져나가려는 차량들이 긴 행렬을 이루고 있다.
그 모습을 보며 나는 종종 속으로 생각하곤 했다.
‘나는 몇 달에 한 번 이 시간에 나가는데...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이 시간에 퇴근한다고?’
‘어느 부서길래 이렇게 일이 없을까.’
‘오늘 이 많은 사람들이 전부 기념일이라도 있는 건가?’
늦게까지 일하던 나의 피곤함을 이 사람들과 비교하며 스스로를 위로했던 것 같다.
오늘, 몇십 년 만에 새벽 셔틀버스를 탈 일이 생겼다.
매서운 겨울바람에 잔뜩 몸을 웅크린 채 총총걸음으로 정류장에 도착했는데, 예상과 달리 꽤 긴 줄이 서 있었다.
내가 몰랐던 동네 사람들. 날마다 이 시간에 움직이고 있었던 회사 동료들이었다.
버스 안에서 꾸벅꾸벅 졸다 회사 앞에 도착했을 때, 시계는 아직 8시도 되지 않았다.
그런데 그 시간의 회사는 내가 알던 회사가 아니었다.
수십 대의 셔틀버스가 연이어 도착했고, 수백 명이 파도처럼 각자의 건물로 흘러 들어가고 있었다.
누군가는 벌써 자리에 앉아 하루를 시작한 듯 보였다.
그제야 깨달았다.
가끔 내가 ‘일찍 퇴근하는 사람들’이라고 생각했던 그들은, 사실 누구보다 먼저 하루를 시작했던 사람들이었구나.
남들이 이불속에서 뒤척일 시간에 이미 집을 나섰고, 그만큼 일찍 업무를 마친 채 집으로 향하던 길이었다.
그 순간, 자연스레 반대편의 시선이 떠올랐다.
본인들은 한창 일하고 있을 시간. 오전 10시가 다 되어 커피를 들고 나타나는 나는 그들에게 어떻게 보였을까.
어쩌면 ‘참 여유로운 사람’이라고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내가 그들을 향해 마음속으로 내렸던 성급한 판단처럼.
우리는 같은 공간에서 일하지만 서로 다른 시차를 산다.
나의 10시는 그들의 10시가 아니고,
그들의 5시는 나의 5시가 아니다.
그 사실을 모르고, 나는 그동안 내 시계만 들여다보며 다른 이들의 하루를 가늠했다.
자리에 앉아 모니터를 켜는 지금, 주변을 바라보는 마음이 조금 달라졌다.
조금 일찍 일어서는 동료의 뒷모습이 더 이상 ‘빠른 퇴근’으로 보이지 않는다.
그는 그저 나보다 먼저 하루를 열었을 뿐이니.
오늘 새벽, 붐비던 셔틀버스 안에서 얻은 작은 깨달음 한 가지.
누군가의 시간을 함부로 판단하지 말 자...
그건 각자에게 주어진, 저마다의 시차를 살아가는 방식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