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감을 사 오던 마음

그랬구나.

by 곱게자란아빠

설 명절을 앞둔 청과시장은 늘 그렇듯 조금 들떠 있다.

정갈하게 줄을 맞춘 배와 사과,

유난히 반짝이는 딸기들이 고운 보자기에 싸여 누군가의 손에 들려 나간다.

사람들은 저마다 가장 좋은 것을 고르느라 분주하다.


그 틈에서 나는 습관처럼 구석에 놓인 검은 비닐봉지를 찾는다.

"단감 챙기자."

그다지 눈에 띄지 않는 자리,

명절 선물 세트들 사이에서 보면

약간은 '실속형 코너' 같은 곳에 주황색 단감들이 있다.


아내와 나는 단감을 하나씩 들어 살펴본다.

너무 무르지 않은지, 상처는 없는지, 괜히 몇 번 더 돌려 본다.

남들은 크고 화려한 과일을 고를 때

우리 장바구니에는 늘 이 소박한 단감이 들어간다.


어릴 적, 우리 집에서의 과일은

'많이 먹는 것'이 아니라 '조금씩 나누는 것'이었다.

무더운 여름 수박 한 통을 사 오면 온 가족이 둘러앉아 얇게 잘라먹었고,

배는 명절 때나 맛볼 수 있는 귀한 과일이었다.

겨울이면 귤 한 박스를 오래 두고 먹다가,

맨 아래에서 물러진 귤을 발견하면 괜히 아까워 속상해하곤 했다.


그 무렵 엄마가 웃으며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너 나중에 돈 벌면, 엄마 단감 좀 실컷 사주라."

농담처럼 들었지만 이상하게 그 말이 오래 남았다.

단감이 얼마나 맛있는 지보다,

그 말을 하던 엄마의 표정이 더 또렷했다.


시간이 흐르고 나는 어른이 되었고,

마트에는 계절과 상관없이 온갖 과일이 가득해졌다.

마음만 먹으면 무엇이든 살 수 있는 때가 되었지만,

막상 가격표를 보면

마음을 한 번 더 먹어야 할 때도 많다는 걸 함께 알게 됐다.


그래도 단감을 보면 여전히 엄마가 먼저 떠올랐다.

그래서 시장에 갈 때마다

자연스럽게 단감을 한 봉지씩 사게 되었다.

단감을 건네면 엄마는 늘 반가운 얼굴로 받아 들었다.

그 모습이 좋아서, 나는 또 다음번에도 단감을 샀다.


어느 날 아이가 물었다.

"아빠는 왜 매번 단감을 사요?"


"할머니가 옛날에 부탁하셨거든.

아빠가 어른이 되면 단감을 사다 달라고."


"단감보다 딸기가 더 맛있는데..."


그 말에 나는 웃으며 아이에게 말했다.

"그래? 그럼 너 나중에 어른 되면 아빠한테 딸기 사 줘. 아주 비싼 걸로."


그렇게 단감과 딸기를 함께 들고 엄마 집을 찾았다.


"오는 길에 시장 들렀어요."

익숙한 검은 봉지를 내밀었는데,

엄마의 손은 뜻밖에도 딸기 쪽으로 먼저 갔다.


"요즘 딸기 비싸다던데... 맛있겠다."

엄마는 딸기를 하나 집어 들고는 천천히 한입 베어 물었다.

그리고 환하게 웃으셨다.


'단감... 은?'

생각해 보면 엄마가 좋아했던 건

꼭 단감이라는 과일이 아니었을지도 모르겠다.

그 시절에는 쉽게 살 수 없었던 것,

그래서 한 번쯤 마음껏 먹어 보고 싶었던 것.

그런 마음에 조금 더 가까웠던 걸까?


세월이 흐르는 동안 단감은 흔해졌고,

대신 다른 과일들이 그 자리를 채웠다.

그런데도 나는 오래 전의 말을 그대로 붙잡고,

엄마의 시간도 그 자리에 머물러 있을 거라 생각했던 것 같다.


돌아오는 길에 괜히 장바구니를 다시 들여다보았다.

익숙한 것만 고르는 사이에,

엄마의 지금을 잘 보지 못한 건 아니었을까 싶어서.


사람의 입맛도, 마음도, 그렇게 가만히 있지는 않는다는 걸

조금 늦게 알아챈 것 같아 괜히 멋쩍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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