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전 써 둔 글을 우연히 다시 읽게 되는 날이 있다.
대개는 그때의 내가 조금 낯설다.
이런 생각을 하고 살았나 싶기도 하고,
민망해져서 슬그머니 창을 닫아버리기도 한다.
얼마 전에도 그런 글 하나를 발견했다.
2019년에 블로그에 남겨 둔 짧은 기록이었다.
점심을 늘 함께하는 동료들이 있다.
회사 입사 시기는 조금씩 다르지만
어느덧 15년 넘게 얼굴을 보고 지내 왔다.
무엇보다 동갑이라 관심사도 비슷하고,
눈치 보지 않고
편하게 이야기할 수 있는 사람들로,
점심을 같이 먹기에는 꽤 괜찮은 조합이다.
그날도 식사를 마치고
회사 근처를 천천히 걷고 있었다.
그때 한 사람이 툭 던지듯 말했다.
"한 7년은 버틸 수 있으려나?"
별 뜻 없이 나온 말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다른 동료가 곧바로 말을 받았다.
"글쎄. 7년이면 부장 10년 차네.
우리 큰애는 중학생이겠는데.
대학교 보낼 때까지는 힘들겠지?"
그 말을 듣는 순간
머리를 한 대 맞은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아, 내가 이런 걸 걱정해야 하는 나이였구나.
나는 정말 내 미래에 대해
아무 생각 없이 살고 있었구나…'
7년..
물론 그보다 짧을 수도, 더 길 수도 있겠지만
어쨌든 그 시간이 지나고 나면,
나는 지금보다 흰머리가 더 늘어 있을 것이고
아이들은 교육비가 한창 들어갈
나이가 되어 있을 것이다.
그때 내가 회사를 다니지 않는다면?
그 생각은 순식간에 나를 우울하게 만들었다.
'미쳤지. 미쳤어.'
꼬박꼬박 꽂히던 월급이
어느 날부터 끊어진다면
나는 어디서 그 돈을 벌어야 할까.
내가 여길 나가면 뭘 해야 할까.
아니, 애초에 내가 할 수 있는 게 있기는 할까.
당장 내일부터 다른 곳에서
돈을 벌어야 하는 사람처럼
머릿속으로 여러 길을 찾아보았다.
하지만 어디에도 분명한 답은 보이지 않았다.
그때 문득
아주 오래전 회사 선배가 했던 말이 떠올랐다.
"너네들 아침에 출근하지.
사원증으로 '삑' 하고 회사 문이 열리잖아.
그게 얼마나 다행인지 알아야 해."
"그게 안 열린다고 생각해 봐.
너무 무섭지 않니?"
그때 나는 그 말을 그냥 흘려들었다.
조금 과한 말처럼 느껴졌던 것도 사실이다.
그 말은 이해되지 않은 채
마음 한쪽에 꽤 오래 남아 있었다.
2019년 어느 날의 기록이다.
그때 우리는 7년을 이야기하고 있었다.
7년을 버틸 수 있을까 걱정을 하며.
이렇게 다시 보니 조금 묘한 기분이 든다.
그때 막연하게 이야기하던 그 시간이
지금은 이미 지나버린 시간이 되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사이에 많은 것이 달라졌다.
점심을 함께 먹던 동료들과는 예전처럼 만나진 못한다.
누군가는 부서를 옮겼고, 누군가는 회사를 떠났다.
아이들은 정말로 중학생이 되었고
그때 상상했던 것보다 조금 더 많은 흰머리가 생겼다.
그리고 그 7년은
생각보다 조용히 지나가 버렸다.
지금도 나는 아침마다 회사 문 앞에 선다.
목에 건 사원증을 단말기에 가져다 대면
여전히 '삑' 하는 소리가 난다.
문이 열리고
나는 아무 일도 없다는 듯 그 안으로 들어간다.
아마도 그 시절의 선배는
이 장면을 말하고 싶었던 것 같다.
아침마다 아무렇지 않게 열리는 그 문이
생각보다 오래 당연한 일은 아닐 수도 있다는 것,
그렇게 우리가 걱정하던 7년은
결국 지나왔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든다.
다음 7년이 지나갈 때도
나는 여전히 이 문 앞에 서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