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미
함께하는 매거진에 주제가 주어졌다.
주제는 바로 “나를 쓰다.”
흥미로웠다.
조용히 나에 대해 찬찬히 생각해 보는 시간을 상상하니 꽤나 달콤했다.
내일 주원이가 등원하면 나를 위한 시간을 꼭 내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현실은 좀 달랐다. 새벽 2시도 채 되지 않은 시간에 일어난 주원이.
“엄마 악몽을 꿔서 깼어요. 무서워서 다시 잘 수 없어요.”라고 말하며 눈을 똥그랗게 뜬 아이를 안아주던 나의 눈은 더 똥그래졌다.
“주원아, 괜찮아? 열이 엄청 나는데..”
독감이었다. 여유로운 상상은 다음 기회에 해야겠다.
틈을 내 상상했다.
현재 시각이라는 흐름 배를 타고 모험 중인 나를.
그 배는 끝을 알 수 없는 미지의 세계를 향해 가고 있었다.
배를 타고 과거 여행부터 떠났다.
10년 전, 나는 현재의 내 모습을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나는 미혼이었고, 나름 잘나가는 사업체를 운영하던 사장님에 예비 교수를 앞두고 있었다.
오빠는 그런 나를 ‘이교수’가 아닌 ‘이고수’로 부르며 놀렸다.
한 아이의 엄마? 미혼인 내 계획에 그런 게 있을 리가.
겪어본 적 없는 리얼 육아,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은 아이는 감히 상상으로는 떠올릴 수 없는 어떠한 것이었다.
우당탕 정신없는 현재의 나. 과거엔 상상할 수도 없는 어마어마한 현실이 눈앞에 있었다.
나는 “나를 쓰다.”라는 주제가 주어졌을 때, 요즘 나의 변화에 관해서 쓰고 싶었다.
나의 현주소. 이 세월의 흐름 속에 내가 어떤 위치에 있는지 궁금했다.
올해의 나는 왠지 모르겠지만 마음속에 ‘티끌 모아 태산’을 새기며, 매일 조금씩 나를 위해 무언가를 하는 것에 꽤 큰 의의를 두었다.
매일 하는 감사 일기, 영어 공부, 중국어 공부, 경제 공부, 독서, 운동 이런 사소한 것들 말이다.
나는 아이를 낳고 한동안 틈만 나면 인풋을 채우는 나날들을 보냈다.
허기가 졌던 것 같다. 알 수 없는 갈증이 있었다.
나는 자칭 독서왕이다.
꽤 다독하는 편인데, 의외의 문제가 있다.
그것은 바로 엄청난 인풋에 비해 너무도 미미한 아웃풋.
한 권의 책을 읽어도 느끼고 깨닫고 실천도 하는 지금 같은 시대에 읽고 밑줄치고 몇 글자 끄적이다가 또 읽고 밑줄치고 책을 덮으면 끝.
처음에는 아웃풋이 없는 내가 이상한 건가? 라는 생각에 사로잡혔었다.
다독하고 정독하며 수익을 창출하는 빠른 세상 속 그들이 그저 대단해 보였다.
그들의 속도는 내가 넘볼 수 없는 그 어떤 것 같았다.
지금 생각해 보니, ‘그저 부족했던 독서량을 채운 것 아닐까?’ 하는 느낌이 든다.
25년 전, 독서를 좋아하던 어린 나로 다시 돌아간 것 같았다.
책이 너무 재미있는데 자꾸 눈물이 난다며 엄마에게 하소연하고도 해결 방안을 찾지 못한 나는 자연스레 독서와 멀어졌었다.
지금 뒤늦게 다독왕이 되어 세상의 간접 경험에 신났다고 해야 할까.
과거에 눈이 아파 못 읽었던 책들을 채우고 있다고 해야 하나.
나는 독서를 하고, 또 독서하며 삶의 지혜를 배우는 재미에 푹 빠졌다.
최근 인풋만 가득하고, 아웃풋 없는 내 모습이 아쉬워졌다.
그런 마음이 모여 결국 행동에 나서기에 이르렀다.
사소하지만 스스로가 나름대로 찾은 해결책이었다.
하지 못하는 나를 탓하지 말고, 그저 그 속에 나를 밀어 넣어 보는 것.
지금처럼 매거진에 참여하고, 오프라인 독서 모임 참여 신청을 했다.
‘한 줄이라도 써보자.’, ‘한마디라도 하고 오자.’, ‘어떻게든 되겠지.’
그냥 그런 편안한 마음으로-
인풋만 가득하던 나에게 작은 변화가 찾아왔다.
스스로의 변화가 놀라워 정말로 인풋이 차고 넘치면 아웃풋이 나오는 것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한마디만 하고 오자던 오프라인 독서 모임에서 회차를 거듭할수록 생각을 자신있게 말하는 나를 만날 수 있었다.
그렇게 작지만 나는 나만의 속도로 나아가고 있다.
나만의 유속은 분명 있다. 사실 누구나 알고 있는 사실이다.
내 삶의 키를 잡은 나의 변화는 나를 믿을 때 생김을 분명히 경험했다.
못나게 바라보던 순간도 요즘은 예쁜 마음으로 따스하게 바라봐진다.
과연 나의 10년 후 모습은 어떨까?
과거에 그랬듯, 어쩌면 현재의 삶으로썬 감히 상상할 수 없는 세상일지도 모르겠다.
그저 어렴풋하고 따뜻한 우리 셋의 행복 배를 상상할 뿐.
지금보단 더 성숙하게 나이 든 나를 떠올린다.
상상 속 내 모습에 그저 ‘풋’하고 웃음이 난다.
미혼이던 과거에 그랬듯, 어색하게 느껴지는 내 10년 후 모습.
‘주름이 많아졌을까? 건강식만 찾는 건 아니겠지?’
지금의 나로선 그 모습이 뭔가 낯간지럽기도 하고 썩 낯설다.
내 키 이상으로 성장한 아들의 모습도 상상이 안 된다.
‘나에게 그런 날이 온다니’ 싶어 그저 신기하다.
중년의 길을 걸어가는 우리 부부의 모습도 어설프게 그려본다.
시간의 흐름 속에 놓인 나를 멀리서 바라보니
- 괜시리 응원하게 된다.
- 최근 나의 작은 변화도 크게 칭찬하게 된다.
- 평소에는 느끼지 못했던 새로움이 느껴진다.
- 그리고 원하는 미래를 위해 지금 내가 가야 할 방향도 더 또렷하게 보이는 듯하다.
오늘 한 이 시간 여행은 꽤 재미있었다.
‘나’를 쓰며 내 모습을 관찰하는 일은 생각보다 더 흥미로웠다.
분명한 건 그저 지금처럼 나를 믿고 한 발짝씩 걸어간다면, 또 새로운 세계가 선물처럼 올 것이라는 것.
그리고 그것은 독서로 간접 체험했던 삶. 그 이상일지도 모르겠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