뱀파이어라서 죽였어요. 검사님도 뱀파이어죠?
검사와 형사 전문 변호사로 일하다보니 일하면서 만나는 사람은 대부분 피의자 아니면 범죄의 피해자다. 그리고 피해자보다는 피의자를 더 자주 만나게 된다. 그러다 보니 주변에서 많이 하는 이야기가 "무섭지 않냐"는 것이다. 영화에서도 검사나 변호사가 보복을 당하는 장면이 종종 나오지 않는가. 최근에는 광주고검에서 40대 남성이 일본도를 휘둘러 수사관이 중상을 입은 끔찍한 사건이 일어났고, 극히 드물지만 변호사가 피살당하는 사건이 발생하기도 한다.
작년에는 대한변협에서 '여성 변호사 대상 범죄 시도 주의 안내'라는 공지를 발송하기도 했다. 불상의 사람이 사건 의뢰를 빌미로 여성 변호사에게 접근하였고, 변호사 사무실 외의 장소에서 미팅을 하자고 제안했다고 한다. 물론 사정에 따라 변호사 사무실 외의 장소에서 미팅을 하는 경우도 있으나, 미팅 장소를 명확히 정하지 아니하고 OO역 앞에서 만나 회장님 차로 이동하든지 변호사님 차로 따라오든지 하라는 것이 수상하여 사설 경호업체를 대동하여 운전기사인 척 약속 장소에 갔더니, 한참을 기다려도 아무도 오지 않고 조금 지나니 번호 또한 없는 번호라고 안내되었다고 한다. 해당 변호사님이 현명하게 대응하셔서 범죄로 이어지지 않았고, 많은 변호사님들도 비슷한 상황에 처하게 되면 적절하게 대처하시겠지만 변호사를 표적으로 삼아 범죄를 시도하려고 했다는 것 자체가 충격적인 일이 아닐 수 없다.
검사로 근무하면서 관사에서 지내던 때가 있었다. 검찰청 근처의 아파트였는데 관사가 부족한 수도권이라 여검사 세 명이서 3인 1실로 사용하던 관사였다. 내가 관사에 들어간 지 얼마 안 돼서 다른 여검사 두 명이 결혼을 했고, 다음 인사까지 몇 달 동안은 혼자 그 관사를 사용하게 되었다. 나는 아파트 단지 안에 있는 헬스장을 이용했었는데, 그 해 여름에는 일이 너무 바빠서 거의 한 달만에 헬스장을 찾게 되었다.
헬스장 신발장에서 운동화를 꺼내 신으려는데 운동화 안쪽에서 무엇인가가 반짝하고 빛났다. 들여다봤더니 운동화 안쪽에 잘린 커터칼 칼날이 있었다. '아니 이게 대체 뭐지?' 헬스장에서 신으려고 새로 산 운동화였고, 몇 달이나 그 헬스장에서 문제없이 사용한 운동화였다. 새로 산 운동화에서 칼날이 나올 리도 없고, 혹시나 불상의 경위로 칼날이 들어갔더라도 몇 달 동안 내가 전혀 몰랐을 리가 없다.
직업병으로 의심을 달고 다녔기에 바로 든 생각은 '나와 관련된 피의자나 피고인 중 한 명이 나를 해코지하는 걸까?'였다. 그런데 도저히 특정이 불가능했다. 당시 재판에 들어가는 공판검사로 근무하고 있었는데 한 달에만 약 500건의 공판에 들어갔다. 그 해 상반기에 내가 만난 피고인만 수천 명인데 나에게 앙금이 있는 사람이 한둘이겠는가. 아파트 단지 내에 있는 소박한 헬스장이라 신발장 쪽에 CCTV가 따로 없었다. 입구에 있는 한 달 동안의 CCTV를 살펴보더라도 누가 범인인지 찾을 수 있을 리 만무했다.
피의자나 피고인이 나를 해코지하는 것이거나, 누군가가 불특정 대상을 상대로 못된 장난을 친 것이거나, 불상의 경위로 우연히 칼날이 들어간 것이거나 이 셋 중의 하나였다. '어떤 사람이 검사를 상대로 대놓고 해코지를 하겠는가.'라는 생각에 피의자나 피고인이 나를 해코지한 것일 가능성은 크지 않다고 결론을 내렸다. 혹시 모를 상황을 대비해 같은 관사에 사는 동료 검사들을 휴대전화 SOS 목록에 추가하고 피해 사실을 알렸다. 그 칼날이 어떻게 운동화에 들어가게 됐는지는 아직도 미스터리다.
검사로 일하면서 성범죄, 마약, 강력, 보이스피싱 등 전담을 하면서 많은 피의자들을 만났고 조직원들도 많았지만 무섭다는 생각은 한 적이 없다. 어떤 조직원은 검사실에 들어올 때 형님(?)을 대하듯이 "식사하셨습니까. 검사님." 하면서 들어오기도 한다. 또 어떤 조직원은 "검사님 덕에 정신 차리고 살기로 마음먹었습니다. 이번에 출소하면 안사람이랑 꼭 한 번 찾아뵙겠습니다."라고 하기도 한다.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애매모호하다. 조사하는 내내 나를 죽일 듯이 노려보던 조선족 보이스피싱 조직원도 있었다. 사실 어느 검사도 피의자를 무서워하지 않을 것이다. 변호사로서 만나는 피의자들도 마찬가지다. 불이익을 당하지 않도록 법률 조언을 제공하고 조력을 할 대상이지 두려워할 대상이 아니다. 어떤 때는 심신의 안정까지 책임지는 테라피스트가 될 때도 있다.
다만, 섬뜩한 사람은 있다. 정신이 온전치 않은 사람들이다. 보통의 사람들처럼 사고하지 않고, 행동의 원인이 없는 사람들은 언제 어떤 돌발행동을 할지 모르기 때문에 조심해야 하는 것이다. 강력 전담을 할 때 관내에서 살인 사건이 발생했다. 20대 남성이 어머니와 여동생을 칼로 찔렀고, 여동생은 다행히 목숨을 건졌으나 어머니는 사망하고 말았다.
같은 부 바로 위에 선배가 그 사건을 수사했다. 대체 왜 그런 끔찍한 일을 저질렀는지 물었더니 조현병을 앓고 있다고 주장하는 피의자는 “어머니와 여동생이 뱀파이어라서 죽였다.”고 대답했다. 정신감정 결과 실제로 조현병을 앓고 있었다.
어느 날 저녁을 먹는 중에 선배가 오후 조사 때 있었던 일을 이야기해줬다. 조사 중에 피의자가 조용히 있다가 갑자기 선배에게 이런 말을 했다고 한다. "검사님. 이- 해보세요. 뱀파이어는 송곳니가 뾰족하거든요. 검사님 뱀파이어죠."
그 상황에서도 침착하게 조사를 이어가다니, 선배님 대단하네요 하며 설렁탕을 먹었다. 공포영화의 한 장면 같기도 하다. 사실 섬뜩한 것보다는 안타깝고 슬픈 일이다. 이러한 범죄를 미리 막을 수 있는 사회적인 안전망이 부족했고, 결국 피해자가 발생했으니 말이다. 이런 사건이 또 발생하지 않도록 고민하는 게 남겨진 우리들의 몫이 아닐까.
- fin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