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친한 변호사 친구에게 연락이 왔다. 수임한 형사사건과 관련하여 내 의견이 듣고 싶다고 했다. 의뢰인의 말대로라면 문제 될 게 없을 것 같은데 의뢰인이 무엇을 걱정하는지 잘 모르겠다는 것이었다. “의뢰인이 다 얘기하지 않은 것 같은데? A 부분을 다시 한번 물어보는 게 어때?”
죄는 미워하되 사람은 미워하지 말라고 했지만 초임 검사 시절 뻔한 거짓말을 늘어놓는 피의자를 조사하다보면 나도 모르게 미운 마음이 들 때가 있었다. 왜 저런 말도 안 되는 거짓말을 하지?
사실 수사는 피의자의 자백에 의지해서는 안 된다. 더욱이 형사소송법이 개정되면서 수사기관에서 피의자가 한 진술의 증거능력은 점점 약화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피의자가 거짓말을 하느냐 안 하느냐가 사건의 결과에 크게 영향을 미치는 것은 아니다. 물론 구형에는 영향을 미치겠지만.
거짓말은 피의자만 하는 것이 아니다. 피해자도 참고인도 거짓말을 한다. 어느 순간 수사기관에서 당사자들이 거짓말을 하는 건 당연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러 연구 결과에 의하면 사람은 매일 수회씩 거짓말을 하고 산다고 한다.
밤늦게까지 술을 마시거나, 게임을 하거나, 미드를 봤으면서도 연인에게 “어제 일찍 잤어.”라는 거짓말 한 번 안 해본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하물며 자신의 인생이 걸린 형사사건인데, 어떻게든 위기를 모면하기 위해, 조금이라도 자신에게 불리한 부분을 은폐하기 위해 거짓말을 하는 것은 본능이지 않을까.
많은 변호사들이 의뢰인에게 이런 이야기를 하곤 한다. “솔직하게 다 말씀드려야 도와드릴 수 있어요.” 그게 그만큼 어려운 일이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의뢰인들이 변호사에게 거짓말만 한다고 생각하면 사건을 해결할 수가 없다. 변호사와 의뢰인 사이에 가장 중요한 것은 신뢰관계다. 의뢰인들은 단지 ‘아직’ 이야기하지 않은 것일 뿐이다. ‘솔직하게’ 그리고 ‘다’ 말하는 것은 생각보다 어려운 일이다.
일생일대의 위기 상황에 놓인 의뢰인은 이 변호사를 믿을 수 있는지, 어디까지 얘기해도 될지, 이야기를 전부 듣고 나서도 변호사가 날 보호해줄 수 있을지 고민을 끝내고 나서야 솔직하게 다 이야기할 수 있다.
거짓말을 알아차리는 능력은 점점 늘어가지만 눈에 보이는 거짓말도 미워하지 않는 것이 법조인의 역할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