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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프로 Aug 22. 2021

EP4. 사랑과 범죄 사이

사랑이라고 변명하지 마십시오 _ 스토킹(2) / 사생팬과 스토킹


스토킹처벌법 시행 후에는 스토킹 행위를 스토킹처벌법으로만 처벌 가능한 것일까? 스토킹처벌법 시행 전에는 스토킹 행위에 대해서는 처벌이 불가능한 것일까? 지난 화의 스토킹 피해자는 아무런 조치를 취할 수 없었던 것일까?


스토킹행위자가 주거에 침입하거나, 피해자를 폭행하거나, 스토킹이 성범죄로 이어지는 경우에는 당연히 해당 죄명으로 처벌이 가능하다. 그러나 스토킹행위자가 그런 정도의 유형력의 행사에 나아가지 않더라도 적용을 검토할 수 있는 죄명이 있다.


"변호사님, 저는 강력한 형사처벌을 원합니다. 스토킹처벌법 시행 전에는 10만 원 과태료 외에 처벌할 방법이 전혀 없나요?"
"스토킹행위자가 선생님의 집에 침입하거나 선생님을 폭행한 사실이 있나요?"
"아니요. 직접 다가오지는 않지만 항상 저를 따라다니고 있습니다."
"스토킹행위자로부터 협박을 받은 적은 있나요?"
"아니요. 이렇다 할 협박을 한 적은 없어요. 그런데 매일 소름 끼치는 내용의 문자를 보냅니다."
"얼마나 자주 그런 문자를 보냈나요?"
"한 달 동안 거의 매일이요. 사랑한다. 오늘은 하얀색 원피스를 입었네 예쁘다. 오늘도 퇴근길에 네 얼굴 볼 생각에 기쁘다. 이런 내용의 문자예요. 그러다가 어느 때는 알 수 없는 의성어만 보내기도 해요. 이런 것도 처벌이 되나요?"


이러한 경우 정통망법위반으로 처벌이 가능하다. 정통망법 제74조 제1항 제3호에서는 정보통신망을 이용하여 공포심이나 불안감을 유발하는 부호ㆍ문언ㆍ음향ㆍ화상 또는 영상을 반복적으로 상대방에게 도달하게 한 자를 1년 이하의 징역 또는 1천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쉽게 말하면 상대방에게 공포심이나 불안감을 유발하는 문자나 메일, 영상, 사진 등을 반복적으로 보내면 정통망법위반으로 처벌받는 것이다. 사실 위 조항은 스토킹 범죄에서뿐만 아니라 헤어진 연인 사이에서도 자주 고소되는 죄명이기도 하다. 정통망법위반으로 처벌하기 위해서는 피의자가 보낸 문자 등이 협박의 정도에 이르지 않더라도 불안감이나 공포감을 조성하는 내용이면 된다. 일회적인 행위로는 처벌할 수 없으므로 반복성 요건을 갖추어야 한다.


다만, '공포심이나 불안감을 유발하는'이라는 표현에는 주관적인 판단이 개입될 수밖에 없고, '반복적'이라는 요건 또한 구체적인 횟수를 규정해놓은 것이 아니므로 몇 회부터 '반복적'이라고 볼 것인지에 대해서는 검사나 판사의 주관적인 판단이 필요하다. 따라서 구체적인 판례 사안을 검토해볼 필요가 있다. 위 사안과 같이 자신을 거부하는 스토킹 피해자에게 일방적으로 소름 끼치는 내용의 문자를 한 달이나 반복적으로 보낸 것은 충분히 정통망법위반에 해당한다.


위와 같이 정통망법위반으로 처벌하기 위해 중요한 것은 상대방이 보낸 메시지 등을 보관하는 것이다. 피해자들은 소름 끼치는 메시지를 보고 싶지 않아서 상대방을 차단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 경우 증거 확보가 사실상 어렵다. 통신영장을 통해서 통신내역을 확인할 수는 있으나, 스토커가 대포폰이나 웹 발신 등을 이용하는 경우 추적이 쉽지 않다. 또한 통신사 등에서 메시지의 수발신 내역 자체는 비교적 오래 보관하지만, 메시지의 내용은 그 보관기간이 매우 짧다. 따라서 영장 집행 시점에서는 이미 해당 데이터가 삭제된 후인 경우가 많아 구체적으로 어떤 내용의 메시지를 보냈는지 확인하기 어렵다.


스토커에게 연락처를 알려주지 않았는데도 스토커가 연락처를 알아내서 연락을 하는 경우도 있다. 이 경우 스토커가 연락처를 취득하게 된 경위에 따라 개인정보호법위반, 정통망법위반 해당 여부를 검토해볼 수 있다.




그렇다면 사생팬도 스토킹처벌법상 스토킹범죄로 처벌할 수 있을까? 사생팬 문제는 내가 학창 시절 H.O.T.를 좋아하던 때부터 몇십 년간 끊이지 않고 이어져 왔다. 세계적인 아이돌 그룹 BTS의 멤버들도 V라이브를 통해 사생팬으로 인한 고충을 토로한 적이 있다. 아미로서 분개하지 않을 수 없다.


넣고 싶은 BTS 사진이 많았는데 대부분 홈마의 사진이라 저작권 문제가 있을 수 있어 공홈의 사진을 가져왔다. [출처: 빅히트 홈페이지]


그룹 2PM의 멤버 옥택연님도 최근 JTBC '아는형님'에 출연하여 사생팬 피해 일화를 호텔방에 들어와서 자신이 자는 모습을 보고 있던 사생팬 피해 일화를 전했다. 사생팬이 호텔 방까지 침입하여 옥택연님이 자는 모습을 보며 웃고 있었던 것이다.

[출처: JTBC 아는형님 캡처]


사생팬의 행위가 스토킹처벌법상 스토킹범죄에 해당한다면 2021. 10. 21. 부터는 당연히 스토킹범죄로 처벌할 수 있다. 지난 화에서 언급한 바 있지만, 스토킹처벌법에서 규정한 스토킹행위는 다음과 같다.

[스토킹처벌법 제2조 제1호] “스토킹행위”란 상대방의 의사에 반(反)하여 정당한 이유 없이 상대방 또는 그의 동거인, 가족에 대하여 다음 각 목의 어느 하나에 해당하는 행위를 하여 상대방에게 불안감 또는 공포심을 일으키는 것을 말한다.
가. 접근하거나 따라다니거나 진로를 막아서는 행위
나. 주거, 직장, 학교, 그 밖에 일상적으로 생활하는 장소(이하 “주거등”이라 한다) 또는 그 부근에서 기다리거나 지켜보는 행위
다. 우편ㆍ전화ㆍ팩스 또는 「정보통신망 이용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 제2조제1항제1호의 정보통신망을 이용하여 물건이나 글ㆍ말ㆍ부호ㆍ음향ㆍ그림ㆍ영상ㆍ화상(이하 “물건등”이라 한다)을 도달하게 하는 행위
라. 직접 또는 제3자를 통하여 물건등을 도달하게 하거나 주거등 또는 그 부근에 물건등을 두는 행위
마. 주거등 또는 그 부근에 놓여져 있는 물건등을 훼손하는 행위

대부분의 사생팬의 행위는 위 가목 내지 마목에 해당한다. 다만 사생팬의 이러한 행위가 연예인의 "의사에 반하여", "정당한 이유 없이", "상대방에게 불안감이나 공포심을 일으켰다는 점"을 어떻게 입증 및 판단하느냐를 고려해봐야 한다. 연예인의 출퇴근길을 기다리고, 선물이나 편지를 보내는 일반적인 팬의 행위 또한 위 가목 내지 라목에 해당할 여지가 많기 때문이다. 사생팬을 어떻게 일반적인 팬과 구별하여 형사처벌까지 할 것인가가 문제가 되는 것이다.


더욱이 대중의 관심과 사랑이 필요한 연예인의 직업적 특성과 연예인과 팬의 특수한 관계를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 검사로 근무하던 시절 유명 한류배우의 팬들이 악플러들을 모아서 명예훼손 내지 모욕으로 고발한 사건을 수사한 적이 있었다. 악플러 근절의 필요성이 있었고, 해당 배우도 처벌을 원하고 있어 법리적으로 명예훼손 내지 모욕에 해당하지 않는 사안들을 제외하고 나머지 사례에 대해서는 수사를 진행했다. 당시 검찰에서 그동안 처분한 유사사례에 대한 결정문, 판례들을 검토해보았는데 명예훼손 및 모욕의 정도가 경미한 경우에는 연예인 사건의 특성을 고려하여 불기소 처분하거나 무죄를 선고받는 경우가 왕왕 있었다.


또 대중의 반응이나 이미지를 걱정하여 연예인들이 사생팬을 형사 고소하기 어려워하는 것도 사실이다. 스토킹처벌법이 아니더라도 사생팬이 연예인의 주거에 침입하거나, 물건을 손괴하거나, 더욱 심하게는 연예인을 폭행하는 경우 주거침입죄, 재물손괴죄, 폭행죄, 상해죄 등으로 충분히 사생팬을 형사 고소할 수 있었으나 실제 형사 고소에 나아간 사례는 많지 않다. 물론 팬들이 자체적으로 증거를 수집하여 연예인 대신 형사고발을 할 수도 있으나, 스토킹범죄가 반의사불벌죄인 만큼 해당 당사자들의 의사가 가장 중요할 것이다. 사생팬이 주는 고통이 개인이 견디기 힘든 정도라면 무조건 참는 것이 능사는 아닐 것이다.



- To be continued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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