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하프로 Aug 21. 2021

EP3. 사랑과 범죄 사이

사랑이라고 변명하지 마십시오 _ 스토킹(1)


“모임에서 우연히 알게 된 사람이 있어요. 처음 봤을 때는 평범해 보였어요. 별다른 관심이 없었는데 언제부턴가 유독 저만 쳐다보는 것 같더라고요. 그 눈빛이 너무 불편해서 일부러 모임을 안 나갔어요.


그렇게 이 주일쯤 지났는데 전화랑 문자가 왔어요. 대충 답장하거나 무시하면 될 줄 알았는데 그게 시작이었어요. 어느 날 퇴근을 하는데 집 앞 화단에서 누가 저를 쳐다보고 있었어요. 바로 그 사람이었어요. 순간 소름이 돋으면서 도망쳐야겠다는 생각만 들어서 정신없이 집으로 들어갔어요.


그날부터 한 달 내내 그 사람이 집 앞으로 찾아왔어요. 매일 출퇴근길이 악몽 같고, 집 밖에 나가 있는 매 순간이 긴장이 돼서 일상생활 자체가 어려웠습니다. '내가 혼자 사는 집인 걸 알고 있는 걸까?' 생각하며 친구와 같이 집에 들어오기도 했습니다. 그 한 달 동안 살이 4kg나 빠졌어요. 잠을 자다가도 어느 순간 그 사람이 문을 벌컥 열고 들어올 것 같은 생각에 잠도 제대로 자지 못했어요.


제발 그만 찾아오라 화를 내기도 하고 애원을 해보기도 했는데 아무 소용이 없었습니다. 전 그 사람이 오해할만한 행동을 한 적도 없고 그 사람이랑 말도 제대로 나눠본 적이 없어요. 대체 나한테 왜 이러는 거지? 내가 무슨 잘못을 했나? 자책하기도 했습니다. 참다못해 경찰에 신고를 했어요. 그런데 과태료 10만 원 말고는 처벌할 수 있는 게 없다고 하더라고요. 저는 그 사람 때문에 이렇게 고통스러운데 말이에요.


경찰서에 다녀온 그날도 그 사람은 집 앞에서 저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날은 유난히 더 찝찝했어요. 집에 들어온 후에도 30분간 숨죽여 있다가 설마 하는 마음에 인터폰 화면을 켰습니다. 그 사람이에요. 문 앞에 그 사람이 우두커니 서 있어요. 숨이 멎는 것 같았습니다. 정말 이 사람을 처벌할 방법이 없나요?”


남녀 불문하고 스토킹 피해 사례는 심심찮게 볼 수 있다. 영화나 드라마에서도 종종 스토킹 피해자들이 등장한다. 직접 때리거나 만지는 것도 아닌데 호들갑 떨지 말라는 무심한 이야기를 하는 사람도 있지만 당해보지 않은 사람은 그 정신적인 고통을 짐작할 수 없다고 한다. 스토킹은 그 자체로도 피해자에게 심각한 정신적, 육체적 피해를 가하고, 그중 일부는 더 중한 범죄로 이어지기도 한다.

 

오영곤이 홍설을 스토킹하는 장면. 스토킹에 시달린 홍설은 뒤에 숨어있는 오영곤을 발견하기도 전부터 스토커가 집 근처에 숨어있음을 직감한다.[출처: 드라마 치즈인더트랩 캡쳐]


그런데 이러한 스토킹 범죄를 제대로 처벌할 수 없었던 것이 사실이다. 현행법상 스토킹 범죄를 처벌하는 조항은 경범죄처벌법 제3조 제1항 제41호가 유일하고, 10만 원 이하의 벌금, 구류 또는 과료의 형으로만 처벌할 수 있다. 또한 '상대방의 명시적 의사에 반하여 지속적으로 접근을 시도하여 면회 또는 교제를 요구하거나 지켜보기, 따라다니기, 잠복하여 기다리기 등의 행위를 반복하여하는 사람'에 해당하여야만 위 경범죄처벌법에 따라 처벌할 수 있었다.




하지만 2021. 10. 21.부터 드디어 스토킹처벌법이 시행되게 되었다. 앞으로는 스토킹범죄를 저지른 사람은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3천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지게 되고, 흉기 등 위험한 물건을 휴대하거나 이용하여 스토킹범죄를 저지른 사람은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5천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지게 된다. 스토킹처벌법에서는 기존의 경범죄처벌법보다 스토킹행위를 더욱 폭넓게 규정하고 있고, 스토킹 상대방뿐만 아니라 스토킹 상대방의 동거인이나 가족을 상대로 하는 행위 또한 스토킹행위에 포함시켰다. 스토킹처벌법에서 규정한 스토킹행위는 다음과 같다.

[스토킹처벌법 제2조 제1호] “스토킹행위”란 상대방의 의사에 반(反)하여 정당한 이유 없이 상대방 또는 그의 동거인, 가족에 대하여 다음 각 목의 어느 하나에 해당하는 행위를 하여 상대방에게 불안감 또는 공포심을 일으키는 것을 말한다.
가. 접근하거나 따라다니거나 진로를 막아서는 행위
나. 주거, 직장, 학교, 그 밖에 일상적으로 생활하는 장소(이하 “주거등”이라 한다) 또는 그 부근에서 기다리거나 지켜보는 행위
다. 우편ㆍ전화ㆍ팩스 또는 「정보통신망 이용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 제2조제1항제1호의 정보통신망을 이용하여 물건이나 글ㆍ말ㆍ부호ㆍ음향ㆍ그림ㆍ영상ㆍ화상(이하 “물건등”이라 한다)을 도달하게 하는 행위
라. 직접 또는 제3자를 통하여 물건등을 도달하게 하거나 주거등 또는 그 부근에 물건등을 두는 행위
마. 주거등 또는 그 부근에 놓여져 있는 물건등을 훼손하는 행위

다만 스토킹처벌법에서는 '스토킹행위'와 '스토킹범죄'를 구별하고 있는데, '스토킹범죄'는 지속적 또는 반복적으로 위와 같은 '스토킹행위'를 하는 것을 말한다. 스토킹처벌법에 의해 형사처벌의 대상이 되는 것은 '스토킹행위'가 아닌 '스토킹범죄'이다.


또한 스토킹처벌법에서는 스토킹범죄에 대한 형사처벌 외에도 스토킹 피해자를 보호하기 위한 조치 등을 규정하고 있다. 스토킹행위에 대한 신고를 받은 사법경찰관리는 즉시 현장에 나가서 스토킹행위를 제지하고, 향후 스토킹행위를 중단할 것을 통보하며, 스토킹행위를 지속적 또는 반복적으로 할 경우 처벌받을 수 있음을 경고해야 하며, 스토킹행위자와 피해자 등을 분리하고 범죄 수사를 해야 한다. 또한 피해자에게 이후에 취할 수 있는 조치를 안내하고, 피해자 등이 동의한 경우 상담소 또는 보호시설로 피해자 등을 인도해야 한다.


스토킹 피해자는 직접 또는 변호인을 통해서 긴급응급조치 또는 잠정조치로서 스토킹행위자의 접근금지를 요청할 수 있다. 긴급응급조치의 사후승인 또는 잠정조치의 청구로서의 접근금지는 검사가 법원에 청구하고, 사법경찰관은 검사에게 법원에 접근금지를 청구해줄 것을 신청할 수 있다. 스토킹 피해자 또는 변호인은 사법경찰관에게 접근금지의 신청을 요청하거나, 검사에게 접근금지의 청구를 요청할 수 있다. 더욱이 스토킹처벌법상 물리적인 접근금지뿐만 아니라, 전기통신을 통한 접근금지 조치까지도 할 수 있으며, 이러한 접근금지조치에 위반한 경우에도 형사처벌 또는 과태료 부과 대상이 된다. 경우에 따라서는 잠정조치로서 스토킹행위자를 유치장 또는 구치소에 유치할 수도 있다.




그렇다면 스토킹 피해자로서는 자신을 안전하게 보호하기 위해서 무엇을 해야 할까. 스토킹범죄는 친고죄는 아니므로 피해자의 고소가 없어도 수사 및 처벌이 가능하다. 따라서 피해자가 직접 경찰에 고소를 할 수도 있고, 피해자가 정식으로 고소를 하지 않아도 신고를 받은 경찰관이 인지하여 수사를 개시할 수도 있다. 다만 스토킹범죄는 반의사불벌죄이므로 피해자가 처벌을 원하지 않는 경우에는 처벌이 불가능하다. 피해자와 스토킹행위자의 관계나 기타 여러 사정에 따라 스토킹행위자의 처벌을 원하지 않는 경우도 있을 수 있으므로 우선 피해자가 스토킹행위자의 처벌을 원하는지 원하지 않는지에 따라 향후 대응이 달라지게 될 것이다.


스토킹행위자의 처벌까지는 원하지 않는다면, 긴급응급조치나 잠정조치로서 접근금지 등을 요청하거나 법원에서 스토킹행위자에게 스토킹범죄 중단에 관한 서면 경고를 해줄 것을 요청할 수 있다. 다만 이러한 긴급응급조치 및 잠정조치는 그 기간 및 회수의 제한이 있으므로(최장 6개월) 피해자를 영구적으로 보호해줄 수는 없다. 또한 일단 수사기관에 처벌을 원하지 않는다는 의사를 밝힌 다음에는 다시 처벌을 해달라고 번복하는 것이 불가능하다. 따라서 처벌불원의사를 밝히기 전에는 관련 전문가 또는 법조인의 조력을 받아 충분히 고민하고 신중하게 결정해야 할 것이다.  


스토킹행위자의 처벌을 원한다면 수사에 적극 협조하며 구체적으로 피해 행위를 진술하는 것이 중요하다. 스토킹처벌법에 따라 처벌하기 위해서는 '어떠한 스토킹 행위'가 언제, 어떻게 '지속적' 또는 '반복적'으로 이루어졌는지 구체적인 특정 및 입증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또한 이를 입증하기 위한 입증자료를 수집해서 수사기관에 전달하는 것도 필요하다. 수사기관이 적극적으로 수사를 한다고 하더라도 범죄의 특성상 수사기관보다 피해자가 입증자료를 수집하기에 용이하기 때문이다. 기본적으로는 스토킹행위자로부터 받은 전화, 이메일, 문자, sns 메시지 등이 있을 것이고 스토킹행위자의 행위나 발언을 녹화, 녹취한 파일도 있을 수 있다. 또한 주거단지 내의 CCTV 등도 미리 확보해두면 좋다. 생각보다 CCTV의 보관 기한이 매우 짧기 때문에 나중에 수사기관이 확보하려고 할 때는 이미 CCTV가 삭제된 후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다만, 스토킹처벌법은 2021. 10. 21.부터 시행 예정이고, 소급 적용하는 조항을 별도로 두고 있지 않으므로 그 이전의 스토킹범죄에 대해서는 스토킹처벌법으로 처벌할 수 없다. 그렇다면 그 이전의 범행에 대해서는 아무런 형사처벌이 불가능한 것일까? 또 2021. 10. 21. 이후로도 스토킹 행위에 대해서는 스토킹처벌법만으로만 처벌이 가능한 것일까? 이에 대해서는 다음 편에서 계속 알아보자.


- To be continued -




매거진의 이전글 EP2. 대한민국의 대형로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