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보다 터프한 회사, 외국계 회사
외국계 명품 브랜드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이 문장 하나가 주는 이미지는 당신에게 어떻게 다가갈까?
‘외국계’라는 세련되어 보이는 이미지에 ‘명품 브랜드’라는 것까지 더해져 마치 영화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 같은 느낌, 혹은 최근 넷플릭스의 인기 드라마 ‘에밀리 인 파리 (Emily in Paris)’ 속의 주인공들을 떠올렸을지 모른다.
사람들이 떠올리는 이 외국계 명품 브랜드에서 일한다고 하면 흔히들 생각하는 인상 혹은 오해에 대해 말해보고자 한다.
1. 외국계 회사면 회사 분위기나 복지가 좋겠네요?
먼저, 정답은 No! 외국계라고 해서 모든 외국계가 복지가 좋지는 않다. 여기에도 ‘케바케’가 적용이 된다. 이유를 생각해보면, 회사는 외국계이지만, 그 회사를 구성하고 있는 사람들은 한국인들이 대다수이기 때문이다.
어쩔 수 없이 한국 사회의 관습적인 문화 등이 당연히 있을 수밖에 없으며, 부서마다 차이는 있지만 대체적으로 영업직군은 조금 더 한국 회사의 느낌이 좀 나는 것 같다. 영업직군이 더 그러한 이유는, 영업에서 상대하는 거래처나 사람들은 또 너무나 한국 회사들일 가능성이 매우 높기 때문이다.
그나마 마케팅 직군이 좀 더 유연한 분위기인 경우가 많은 것 같고, 상사마다 차이는 있겠지만 내가 다니는 곳에서는 출퇴근은 우선 자유롭고 복장도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찢어진 청바지를 입던, 짧은 치마를 입던 신경 쓰는 사람들이 없었다.
(대기업 다니는 친구들 말에 의하면 여름에 발가락이 보이는 샌들을 신으면 안 된다고 해서 이해가 안 갔던 적이 있다.)
복지는 국내 일반 기업 수준인 경우가 많은 것 같다. 4대 보험 적용, 건강 검진, 연차 보장 등등 일반적인 수준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구글 같은 느낌을 떠올렸다면.... 오산이다.
2. 야근 안 할 것 같아요! 월급도 많이 주겠죠?
No! No! 둘 다 No! 다. ‘워라밸’을 생각하고 있다면 외국계, 좀 더 정확히 말해서 외국계 브랜드는 피하는 게 좋다.
외국계 회사는 국내 기업들처럼 매년 취업문이 열리지 않는다. 신규 채용은 거의 없으며 대부분이 경력직으로 들어오는 경우가 많고, 간혹 운이 좋아서 외국계에서 인턴으로 시작해 신입사원으로 전환되는 경우가 있을 뿐이다.
이 얘기는 즉, 회사에서 직원을 뽑아서 가르칠 여력이 없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결국 필요한 자리에 필요한 만큼의 인원만 채워서 비즈니스를 이어 나간다.
그렇기 때문에 넉넉한 인원으로 구성된 팀은 거의 없으며, 결국 혼자서 기본 2명 분의 일은 해야 잘한다는 소리를 듣는 곳이 바로 이 외국계 브랜드 판이다. 안타깝게도, 혼자서 본인 1명 분의 일을 한다면 그렇게 썩 일 잘한다는 소리 듣기 어려운 게 현실이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야근이 뒤따를 수밖에 없는데, 내 경우에는 모 브랜드에서 일하던 그 시절에는 밤 10시 퇴근은 그냥 ‘오늘 하루도 잘 마무리했다’ 같은 느낌이었고, 새벽 2시 3시에 가는 직원들도 종종 있었다.
이렇게 야근이 잦다는 것은 회사에서 인원 충원을 안 해준다는 것이고, 그 이유는...? 더 깊은 이야기는 생략하겠지만, 월급은 대기업과 비교하면 열정페이일 수 있다.
3. 명품 브랜드 할인되나요?
있다. 그러나 한도가 있다. 브랜드마다 정해놓은 한도 수량 혹은 한도 금액 등이 있으며, 디스카운트 폭도 브랜드마다 천차만별이다.
만약 이거 하나 바라고 외국계 브랜드에 입사하려는 사람들이 있다면 대부분 위의 2번을 견디지 못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퇴사할 확률이 높다. 명품 브랜드 할인은 결국 내가 내 돈 주고 회사에 헌납하는 것과 같다고 생각하면, 이게 과연 나에게 돌아오는 혜택인 것인가 자괴감이 들 때도 있다.
4. 영어 잘해야 하나요?
잘해야 한다. 부서마다 또 차이가 있지만, 해외 본사와 커뮤니케이션이 많기 때문에, 영어 이메일은 기본적으로 쓸 수 있어야 하고 스피킹 역시 잘하는 게 훨씬 일하는 시간도 단축될 뿐만 아니라 여러모로 도움이 많이 된다. 그렇다고 모두가 네이티브나 유학파들만 있는 것은 아니다.
본인이 영어를 사용하는 데에 있어 자신감이 있다면 그게 가장 중요할 것 같고, 영어는 사실 일하면서 또 ‘일하면서 습득하는 영어’가 있기 마련이다.
그러면 도대체 외국계 브랜드에서 왜 일하는 거예요?
사람마다 모두 다른 동기부여가 있을 것이다. 내게 묻는다면, 외국계 브랜드에서 일하는 그 짜릿함은 내가 움직여서 이 비즈니스를 만들어 간다는 게 보일 때인 것 같다.
앞서 말했던 것처럼 복지도 그저 그렇고, 월급도 일하는 만큼 아닌 것 같고, 야근도 많지만, 한정된 인원으로 돌아가는 비즈니스이다 보니 이 비즈니스에서 나의 역할은 그저 단순한 컨테이너 벨트라 고만 보기는 어렵다. 내가 맡은 일에 대한 오너십도 생기고, 이 브랜드가 성장해가면서 사람들에게 회자되는 것을 볼 때의 희열은 이 곳에 몇 자 글로 풀어낸다고 해서 설명할 수가 없다.
간혹 나 역시도 이 외국계 브랜드에서 일하는 것에 답답함을 느끼기도 하고, 여러 복합적인 감정이 들 때도 있다. 그런데 주변의 다른 회사를 다니는 사람들 이야기를 들어보면 여기서 일하는 게 낫구나, 싶은 순간들이 많다.
그래도 회사 분위기가 외국계 회사가 좀 더 유연하고, 사고방식도 더 유연한 게 사실이다. 내가 아니라고 생각하는 것에 상사에게 No라고 말하는 게 크게 어색하지 않은 분위기가 큰 매력이었고, 비록 꾸준히 영어는 공부해야 하는 파트이지만 그렇게 자신을 계발시켜갈 수 있다는 게 큰 장점으로 다가왔다.
외국계 브랜드에 대한 환상은 위험하다.
그렇지만 외국계 브랜드에서 일하는 그 만족감은 생각보다 꽤, 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