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연한 것은 어디에도 없다.
누군가 내게 인간관계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이냐고 물으면 항상 하던 대답은 신뢰였다.
믿음, 소망, 사랑 중 가장 중요한 것은 믿음이라고 늘 생각했다.
그런 내가 최근에는 조금 다른 답을 떠올리기 시작했다. 그것은 바로 인간관계에서 ‘당연함’이란 없다는 것을 깨닫는 것.
우리가 얽혀 있는 수많은 관계들이 있는데, 가족, 친구, 연인, 사회생활 등등으로 얽힌 그 모든 관계에서 삐끗하는 순간은 어느 한쪽에서 그 관계 안에서 ‘당연함’이라는 감정을 드러낼 때인 것 같다.
가족, 가장 가까우면서도 가장 쉬운 존재
가족은 그런 의미에서 가장 든든한 관계이면서도 상처를 주고받기 쉬운 관계이다. 혈연으로 얽힌 관계는 내가 오늘 엄마한테 짜증 한 번 부린다고 끊어지지 않음을 알고 있다. 내가 동생에게 작은 것 하나로 삐친다고 해서 연을 끊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런데 사실 엄마가 매 끼니를 챙겨주시는 것은 사실 당연한 게 아닌데 너무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있었고, 심지어 가끔 반찬투정을 하기도 한다. 어쩜 이렇게 반찬이 다 맵고 짠 것밖에 없냐고 툴툴댄 적도 있었다.
그렇게 투정 부리고 짜증 부려도 엄마는 별로 상처 받지 않아 보여서 대수롭지 않게 보낸 시간들이 있다. 그런데 어느 날, 아기 엄마인 친구가 아기가 밥을 잘 안 먹는다고 속상해서 우는 것을 본 적이 있다. 우리 엄마는 수십 년을 내게서 그런 소리를 들어왔기 때문에 별 대수롭지 않았던 걸까.
그게 아니라는 것은 바보가 아닌 이상 우리는 다 알고 있다. 엄마는 상처를 받지 않은 것이 아니라, 매 순간 그런 말들이 비수처럼 박혀도 이제는 그것을 엄마 스스로 삭히는 법을 터득한 것뿐이었다.
연인, 그 양날의 검같은 존재
오랜 연인들이 겪는 고민은 어쩌면 같을지도 모른다. 이제는 편안함으로 안착한 관계에서 쉽게 오해할 수 있는 당연함.
이제 설레는 감정들을 넘어 안정감이 주는 그 편안함의 매력으로 들어간 연인들에게는 양날의 검같이 다가오는 그 ‘안정감’을 당연함으로 여길 때 서운함이 생기게 된다.
당연히 만나는 것, 당연히 연락하는 것들이 켜켜이 쌓여 안정감이라는 울타리를 만들어 주었다. 그런데 그 둘만의 룰이 지겨움, 새로울 것 없는 것이라고 여겨질 때 (감정은 어디로든 새어나가 전달되기 마련이다), 상대방은 서운함을 느낄 테고, 그 서운함이 또다시 다른 상대방에게 전이되고 그렇게 핑퐁 하면서 관계는 진통을 겪게 된다.
그런데 그 둘 사이의 ‘당연한’ 것들이 만들어진 것은 그냥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노력의 산물이다. 어느 한쪽의 혹은 둘 다의 인내와 노력 끝에 켜켜이 쌓아온 결과물이 지금은 당연한 것으로 보이게 되는 것이다. 그렇게 함께 만들어간 ‘당연함’을 어느 날 어느 한 사람이 지겹다고 한다면 함께 만들어온 다른 상대방은 갈피를 잃게 된다.
사실 살펴보면, 그 어느 관계에서도 당연한 관계는 없다.
그렇게 말해도 당연하게 넘어갈 이유는 없으며, 그렇게 행동해도 당연하게 받아들일 이유 또한 없다.
당연함은 함께 만들어낸 모습인데, 어느 날 이 당연함으로 무장해 비수를 꽂거나 혹은 이 당연함으로부터 달아나려 하는 것은 그 관계에 대한 무책임이다.
당연함은 그냥 생기지 않는다.
당연한 것은 어디에도 없다.
지금 이 순간에도 당연함이 주는 그 안정감을 지키려고 ‘당연하지 않게’ 참고 견디는 사람이 있다.
당연함은 당신이 속한 그 관계를 지탱하는 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