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것을 완벽하게 갖춘 회사는 없다.
사회생활을 시작한 후배들이 종종 이직을 꿈꾸며 묻는다.
이런 고민들을 이야기 하면, 나는 한 편으론 이 친구가 아직도 사회생활에서 이상을 꿈꾸는 것 같다고 느낄 때가 있다.
물론 나의 구미에 맞고 여러 조건들까지 갖춘 곳, 분명 어딘가에 있다. 다만 그 회사가 지금 이 순간에 다가올지, 10년 후에 다가올지 알 수 없다.
이직을 해본 경험을 비추어 봤을 때, 모든 것을 완벽히 갖춘 회사는 없다.
일이 마음에 쏙 들고 할 만 하면, 사람이 힘들게 하고,
사람이 너무 좋고 팀웍이 환상적이면, 반면에 일이 정말 어마어마하게 많아서 지치게 하기도 한다.
(물론 둘 다인 경우도..... 있다....)
그렇기 때문에 그런 질문과 고민을 반복하는 후배를 보면 안타까운 마음이면서 한 편으론 이런 생각이 든다.
너무 생각이 많아서 선택을 주저하게 만드는 경우들인 것 같다.
커리어만 생각하자니, 연봉이 아쉬운 거다.
가고 싶었던 회사이긴 한데, 가서 혼자 독박 쓰고 싶진 않은 거다.
조건들이 너무 좋은데, 상사 스트레스는 받고 싶지가 않은 거다.
일견 다 이해가 가는 생각들이긴 하지만 ‘그런데...’로 이어지는 뒷 문장들은 이직희망자의 발목을 붙잡기 위한 변명으로 들린다.
모든 것을 다 완벽히 소유할 수 없다면 하나는 포기해야 하는 혹은 합의해야 하는 부분이 생긴다.
그것이 연봉일 수도, 직무 스트레스일 수도, 또 상사 스트레스일 수도 있다. 그런데 이 스트레스들은 불변의 요소들이 아니라는 점이다.
연봉은 지금 더 많이 못 올리면 내년 임금협상 때 다시 논의할 수 있다.
직무 스트레스는 본인이 회사 가서 하기 나름이고
상사는, 이 상사가 언제 나갈지도 모르며 또 상사와 맞지 않는 누군가만의 이슈일 수도 있다.
그런 가변적인 것들에 발목 잡혀서 당장 이직이 필요한 이들이 그 자리에 주저 앉아 버리는 경우를 꽤나 많이 봤다.
그렇게 그 자리에 주저 앉고 난 후, 며칠 지나지 않아 이들은 다시 또 도돌이표처럼 이직하고 싶다고 노래를 부르곤 한다.
자신의 인생에 대한 책임은 자기 자신에게 있다.
사사로운 것들로 내 인생이 더욱 풍부해질 수 있는 기회를 잃는 건 내 자신에게 너무 무책임한 행동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