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힘내자 Dec 18. 2022

나의 액땜 일지

누가누가 더 재수 없는지 배틀할 사람?




응답하라 1988에서 덕선이와 친구들이 피자 한 조각을 놓고 누가 더 불쌍한지 이야기하는 것을 보고 깔깔깔 웃었다. 재미있는 애들이네. 자기가 불쌍한 것을 아무렇지 않게 이야기하다니.


그랬던 내가 지금 이 글을 읽는 사람들에게 배틀을 제안해보려고 한다.

근 3년 동안 누가누가 더 재수 없었는지 나랑 배틀 할 사람?




코로나 터지고 나서부터 시작된 나의 불행들을 액땜이라 곱게 포장하여 굳이 나열하고자 하는 이유는 지금 내 옆에 손목이 골절되어 철심을 3개나 박은 아이가 누워 있기 때문이다.


2022년을 약 보름 정도 앞두고 벌어진 일에 분노를 해야 할지, 아님 이만하길 다행이라고 생각해야 할지 모르겠지만 내가 아닌 아이까지 다치고 나니 정말 심란하다.


불행의 그림자가 나뿐만이 아니라 가족들까지도 따라다니는 것 같아서 무섭다. 원래도 불안도가 높은 부정적인 사람인데 이렇게까지 안 좋은 일이 닥치는 건 좀 너무하지 않나? 뭔가 이유가 있겠지 싶다가도 원망스러운 마음이 들기도 하다.

 





3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 보자.



1. 머리가 깨질 것 같아!


코로나가 시작된 3년 전, 거짓말같이 편두통이 시작됐다. 아마도 아이들이 방학이 끝나도 학교에 가지 않고 집에 있었던 날들이 지속되었기 때문이리라.


일반 두통은 종종 겪었지만 편두통은 처음 겪는 일이었는데 감히 이렇게 표현하는 게 맞는지 모르겠지만 머리가 터지는 느낌이 들 정도로 아프고 괴로웠다. 집에 있는 두통약을 먹어도 통증은 쉬이 사라지지 않고 잠도 잘 수 없었다.


결국 인터넷 검색과 지인들의 조언으로 신경외과를 찾아 한 달간 처방해준 약을 먹으며 회복을 할 수 있었는데, 편두통의 실체를 알고 나니 역시 사람은 직접 겪어봐야 그 심정을 조금이라도 헤아려볼 수 있는 거구나 느꼈다. 이후로 누군가 편두통으로 고생했다고 하면 세상에 힘들었겠다 하며 공감해줄 수 있게 되었으니 말이다.



2. 나 벌써 늙은 거야?


머리 아픈 게 사라지자 이번에는 무릎 통증에 시달렸다.

건강과 다이어트를 위해 3년 정도 운동을 했었는데 타고나기를 약골로 태어난 내 몸이 갑작스러운 운동량 증가를 이겨내지 못하고 신호를 보냈다. 양쪽 무릎이 번갈아가며 아팠기 때문에 운동은 그만둘 수밖에 없었고 그 흔한 가볍게 걷기도 힘든 상황까지 직면하게 되었다.


병원에서는 무릎 수술을 하자고 했는데 아직 젊은 내가 무릎 수술이라니 그건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이었기에 집에서 쉬며 좋은 음식과 영양제로 회복을 하기로 했다. 3년간 열심히 했던 크로스핏 운동은 더 이상 하지 못하게 되었지만 지금은 살살 걸으며 가벼운 달리기 정도는 할 수 있게 되었으니 그나마 다행인 건가?



3. 여보, 당신마저...


남편의 실직. 이것은 브런치 첫 글로 이미 적은 바가 있어 자세한 이야기는 생략한다. 몸이 다친 것은 아니었지만 심적으로 무척 괴로운 시간들을 보냈었기에 잊을 수 없는 고난 중에 하나이다. 이로 인해 내가 돈가스 가게에서 일을 하게 된 것이니까.



4. 이제 여기도 아픈겨?


일을 시작한 지 한 달이 되었을까? 왼쪽 이가 욱신거리기 시작했다. 거울로 들여다보니 잇몸은 퉁퉁 부어있었다. 문제는 어금니였다. 어렸을 적에 씌워놓은 크라운이 오래되어 문제가 생긴 것이다.


통증이 너무 심했기에 검사받은 날 뽑기로 했는데, 분명 마취를 했음에도 느껴지는 통증에 점점 정신이 혼미해졌다. 어느새 양손은 주먹을 꽉 쥔 채 덜덜 떨고 있었고 눈가엔 눈물이 주르륵 흘렀다. 분명 통증으로 인한 눈물이었겠지만 이것을 핑계로 울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일 시작한 지 얼마나 됐다고 또 아프냐. 돈 번지 얼마나 됐다고 또 돈이 나가냐. 내 신세가 너무 처량했다.


내 모습을 보신 의사 선생님은 이가 너무 많이 상해 있어서 치료가 오래 걸렸다 하시며 신경안정제를 처방하였으니 그거 꼭 잘 챙겨 먹고 푹 자라고 하셨다.

눈물로 얼룩진 그날 밤, 나는 약 기운으로 오랜만에 푹 잘 수 있었다.



5. 하늘로 떠난 시어머니


"여보, 엄마 간에 혹이 7개가 있다네. 병원에서 큰 병원으로 가보라고 했나 봐. 간암이 의심된다고."

결혼하기 8개월 전 돌아가신 친정엄마를 대신해 내가 유일하게 비빌 수 있는 언덕 같았던 시어머니의 암 선고. 간에 보인다던 7개의 혹은 췌장암에서 전이된 암덩이였고, 이미 시어머니의 몸속에는 암세포들이 활개를 치고 있었다.


어머니는 암 선고 후 매주 수척해지셨는데 그런 어머니를 볼 때마다 가슴이 미어졌다. 평소 안부전화를 자주 못한 것, 어머니가 괜찮다고 말씀하신 것을 곧이곧대로 다 받아들인 것, 시아버지가 서운하게 할 때마다 어머님께 울며 하소연 한 불효 등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코로나로 직계가족 외엔 면회가 안 되는 상황에 아버님의 편법으로 어머님을 뵐 수 있었는데 어떻게든 살아보겠다는 의지로 시작한 항암치료 때문에 거의 다 빠져버린 머리카락, 큰 키에 통통하던 몸은 마른 장작처럼 말라있었고 의식마저 없어서 숨만 쉬고 계시던 그 모습을 아직도 잊지 못한다. 사람의 마지막이 이렇게 허망할 수가 없다는 생각에 하염없이 눈물만 흘렀다. 그렇게 어머니는 3개월 만에 눈을 감으셨다.



6. 생전 처음 가본 정형외과


여름이라 반깁스

평소처럼 일어나 아이들 아침을 챙기려고 주방으로 비몽사몽 걸어가다가 식탁에 발가락을 찍었다. 갑작스러운 충격에 "악!" 소리도 내지 못한 채 발가락만 부여잡고 있다가 정신을 차리고 보니 점점 붓는 발이 보였다. 시간이 지나도 줄어들지 않는 통증에 병원에 갔더니 세 번째 발가락 골절이라네. 골절!


기가 막혀서 웃었더니 의사 선생님께서 "생각보다 이렇게 다친 사람들이 많습니다"라고 한다. 이걸 위로라고 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 나는 이런 발을 하고도 돈가스 가게에 가서 일을 했다.




7. 그래, 이제부터 전쟁이라고 생각하겠다.


못난 손에 또 상처

너무 잘 갈아놓은 칼 탓이었을 테다. 왼쪽 검지 손가락을 야무지게 베었다. 생각보다 깊은 상처에 식은땀이 나고 한숨이 나왔다.


이렇게 깊은 자상은 처음이라 병원에 갔다. 의사 선생님은 상처가 그렇게 심하진 않다고 무미건조하게 말씀하시며 그래도 봉합은 하자고 하셨다. 별거 아닌 봉합이라는데 수술실에 들어가 차가운 침대에 누웠다. 출산 후 처음 느껴보는 서늘함이었다.

내 작은 손가락에 다섯 바늘의 봉합 자국이 생겼다. 붕대로 칭칭 감은 손가락을 보고 있자니 헛웃음과 함께 짜증이 밀려온다. 아, 정말 지긋지긋하다.




8. 으이그, 이 화상아~!!!


튀김기를 사용하는 곳에서 일을 하는지라 항상 여러 가지 위험에 노출되어 있다. 불을 쓰고 칼을 만지는 곳이면 누구나 그럴 것이다. 그래서 늘 조심하며 다치지 않으려고 애썼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순간의 실수로 다치게 되는 경우가 있는데 그날도 매일 하던 일이라 기계처럼 행동을 반복했을 뿐이다.


튀김기 안으로 넣은 돈가스가 첨벙하고 빠지면서 기름이 튀었다. 하필 내 왼쪽 손목에. 화상을 입으면 즉시 찬물에 30분 이상 화기를 빼줘야 하지만 바쁜 점심시간이라 그럴 수 없었다.


 동그란 물집은 이내 짙은 화상 자국으로 남게 되었고 박박 문질러도 지워지지 않는 문신처럼 왼쪽 손목에 자리 잡았다.(다행히도 서서히 없어지고 있는 듯하다)



9. 짐짓 코미디 같았던 상황


이건 좀 어이없는 실수이기도 한데 일하며 한 번도 넘어진 적이 없는 곳에서 갑자기 넘어졌다. 그것도 카레 돈가스를 서빙하는 도중에. "으악!" 하며 넘어짐과 동시에 카레를 뒤집어쓰게 되었고 그릇을 깨뜨리지 않으려고 힘을 주다가 벽 모서리에 이마를 세게 박아버렸다. 별이 3개 정도 보이면서 순간 멍해졌는데 그 와중에도 그릇이 안 깨졌다며 안심했던 내가 정말 우스웠다. 카레를 뒤집어쓰고도 어이없어 웃어버린 나.

이골이 나서 그럴까? 전라도 말로 "진짜 징하다잉!" 싶었다.



10. 나는 괜찮지만 너는 안된다고!


가게에서 넘어진 지 10일도 되지 않아 아들이 체험학습으로 스케이트를 타러 갔다가 넘어지면서 손목이 골절되었다. 넘어졌다길래 인대가 좀 늘어진 거 아닐까 싶었는데 엑스레이 사진 속 아들의 틀어진 뼈를 보고 경악을 금치 못했다. 내가 다치는 건 괜찮지만 아이가 다치는 것은 정말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스스로 물었다. 도대체 왜 이렇게 안 좋은 일이 자꾸 생기는 건지.


처음 아프기 시작할 때엔 그저 몸 관리를 제대로 하지 않아서 몸이 경고장을 날린 거라고 생각했다. 살다 보면 한 번씩 신체적인 고비가 찾아오기 마련이므로. 그래서 내가 좀 더 조심하면 괜찮아질 거라고 믿고 쥐구멍에 볕 들 날을 기다리고 있었다. 365일 흐린 날만 있는 게 아니라고 믿고 싶었다.


다만 결과가 있으면 반드시 원인이 있는 거니 그 원인을 파악하여 더 이상 안 좋은 일이 생기지 않게 대비하고 싶었다. 하지만 안 좋은 일을 곱씹으며 왜 그 일이 생긴 건지 계속 따져도 결국 답은 나오지 않았으며 그런 지루한 생각들 또한 나를 피폐하게 만드는 또 다른 악습이라고밖에 생각할 수 없었다.


 왜 원망하고 싶지 않겠는가? 누군가 혹은 뭔가를 탓하며 살아온 나에게 원망의 대상이 반드시 필요한데.



그냥 삼재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지금 나에겐 액땜이 필요한 시기인 걸로.







자, 여기까지 글을 읽으신 구독자님! 어떠신가요? 저 이 정도면 액땜 배틀에서 1등 할 자격 있나요?


아, 물론 제가 한 배틀이라는 말은 힘들었던 일을 글로 적음으로써 조금이나마 해소해보고자 하는 발악에 가까운 행동일 뿐이므로 그저 너그러운 마음으로 읽어주셨기를 바라요.

저보다 더한 상황에 처하신 분들도 많으시다는 거 압니다.


우리 모두 힘든 상황 잘 버티면서 조금 더 나은 2023년을 맞이해 보아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