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모임에서 전태일 평전을 읽었다. 당시 평화시장 근로자들의 말도 안 되는 억압과 고충을 보면서 자본주의 사회의 노동자들에 대해 생각해본 적이 있다. 1960년대에 갑을관계라는 말은 없었겠지만 말하지 않아도 갑과 을의 관계가 형성됐다는 것을 알 수 있고, 그로 인해 불평등하고 불합리한 대우를 받는 사람들의 한 서린 하소연을 접하면서 답답한 가슴에 슬픔이 차올랐던 기억이 난다.
나 역시 2022년 현재 피고용인으로 사장에게 임금을 받으며 노동력을 제공하고 있는 이상, 언제나 을의 입장으로 움츠러든다. 사장이 불합리한 일을 시켜도 일단은 긍정적인 대답이 필수고 급한 성격의 사장이 굼뜬 나에게 소리를 질러도 속으로 삭여야 한다. 나는 갑이 아니니까.
내 고용인은 성격이 불같다. 화도 잘 내고 소리도 잘 지른다. 원래 성격이 그런 듯 하지만, 본인 말로는 직원이 실수를 하기 때문이란다. 실수는 유치원생이나 하는 것이라는 인식이 박혀있는 사장에게 다 큰 성인이 말귀를 못 알아먹고 버퍼링에 걸려있는 순간은 용납할 수 없는 ‘짓’이다.
그러나 본인의 실수에는 무척이나 관대하다. 본인이 실수한 것은 능구렁이가 담 넘어가듯 스윽 조용히 지나간다. 어이가 없지만 아는 척해서는 안된다.
비단 이것뿐이겠는가? 3년간 사장에게서 받은 모욕이나 질책은 사람을 주눅 들게 만들고 자존감마저 깎는다.
사장의 태도가 문제라는 것을 알지만 그것에 대해 직접 대놓고 말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불같은 성격의 사람에게, 더군다나 고용주인 사장에게 그런 태도에 관한 것을 언급한다는 것은 지옥불에 들어가는 것이나 마찬가지이다.
애이씨, 열받으면 그만둔다는 생각도 했지만 이만한 일자리는 찾기 힘들었기에 울며 겨자 먹기로 참아내는 수밖에. 결국 아쉬운 사람은 나 아닌가?
그렇게 나는 갑이 절대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고 사장에게 잔소리를 들을 때마다 마음속으로 읊조린다.
‘더러워도 참는다. 나는 갑이 아니니까.’
퇴근을 했다. 허름한 에코백을 매고 저녁에 먹을거리를 간단하게 사서 터덜터덜 들고 오는 길. 오늘따라 온몸이 쑤시고 아프다. 얼른 집에 가서 10분이라도 누워있고 싶다.
하지만 그렇게 들어간 집은 날 반겨주지 않는다. 여기저기 던져진 책들, 아침에 급하게 나가느라 치우고 가지 못한 싱크대 안의 그릇들, 정리하지 못한 옷들이 널려있는 집은 말 그대로 이놈의 집구석이다.
순간 분노 게이지가 상승한다. 내가 왜 이놈의 집구석에서 이런 무수리 같은 일들을 해야 하는 것인지, 왜 나는 내 일을 도와줄 사람 하나 없는 형편에 직면했는지, 이놈의 남편은 밖에서 도대체 뭐 하고 있는 건지 알 수 없어 속이 부글거린다.
나는 참지 못하고 아이들에게 소리를 지른다.
“야! 너희들! 엄마가 이거 여기다 놔두지 말라고 했지? 왜 도대체 엄마 말을 안 듣냐! 엄마 말이 개똥으로 들리냐!”(개똥으로 들리는 게 뭔지 아이들이 알까? 나도 모르겠는데)
갑자기 벼락을 맞은 아이들은 “그게 아니라...” 쭈뼛거리며 엄마가 눈으로 레이저 쏜 곳을 정리하기 시작한다. 그 모습도 꼴 보기가 싫다. 진작에 내가 하라는 대로 했으면 편할 것 아니었냐고.
이후로도 잔소리는 끊이질 않는다. 노느라 정신이 없던 아이들의 눈빛이 유기견 마냥 풀이 죽는다. 그러든가 말든가 나는 쉴 새 없는 잔소리를 이어간다.
한바탕 고성으로 잔소리를 쏟아낸 후 책상 앞에 앉는다. 읽다 만 책을 펼치고 눈을 글자에 옮겼지만 마음속에는 뭔가가 계속 덜그럭 걸리며 찝찝하다.
'나 왜 이렇게 화를 낸거지?'
그제야 내가 화가 난 건 집이 더러워서가 아니라 사장에게 받은 분풀이를 가족들에게 했다는 것을 알았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갑이라는 단어가 주는 상징성은 언제나 권력이나 지위 혹은 돈이 많은 사람을 나타낸다. 그로 인한 태도의 문제들이 아직까지도 뉴스에 등장하며 많은 사람들의 공분을 사는 것을 보면 갑을 문제는 지구가 망하지 않는 이상 사라지지 않을 것 같은 느낌이다.
그러나 어디 갑이라는 위치가 꼭 돈으로만 만들어지는 것인가? 꼭 권력과 지위, 돈이 아니더라도 다양한 인간관계에서 오는 갑질도 상당히 많다.
드라마나 포털 사이트에서 볼 수 있는 각종 사연들에서도 당황스러운 갑을 관계를 목격하게 된다. 아들 가진 시어머니의 시집살이, 나이 어린 시누이의 어설픈 갑질, 좀 더 활발하고 적극적인 사람들이 행사하는 억지스러운 리더십, 편의점에서 알바생에게 반말하며 돈을 던지는 구매자들의 행태, 얼굴도 모르는 공간에서 먼저 가입했다는 이유만으로 부리는 텃세 등등, 다 적지는 않았지만 보이지 않은 곳에서 행해지는 얼토당토않은 갑을관계가 많을 것이다.
이게 사회적으로 형성된 분위기와 인식으로 인한 심리적인 요인일까? 아니면 유교사상의 영향을 받아 대대로 내려오는 꼰대 문화 때문일까?
우리가 간과하고 있는 것 중 하나가 우리도 언젠가 수시로 갑과 을의 위치에 놓일 수 있다는 것인데, 과연 갑일 때와 을일 때의 태도를 다르게 취할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대한민국 사회에서 평등한 관계로 인간적인 대우를 받을 수 있는 날이 오긴 올까?
어쨌든 결국 나 역시 화내는 사장이나 별반 다를 게 없다고 느껴진다. 갑인 사장에게 찍소리도 못하고 집에 와서 아이들에게 화풀이하는 꼴이라니. 내가 아이들에게 온갖 짜증과 푸념을 털어놓고 내 말 좀 잘 들어라고 잔소리하는 게 사장의 갑질과 뭐가 다른가? 아이들과 나는 어떤 계약관계로 맺어진 사이가 아니지 않나. 내가 배 아파 낳은 사랑하는 아이들에게 갑처럼 굴면 안 되는 거였다. 집에서까지 갑을 관계로 살아갈 필요는 없는 건데.
아이들도 지금은 을의 입장에서 아무 소리도 못하고 있지만 머리가 커지고 생각이 깊어지면 언제 반란을 일으킬지 모를 일이다.
혹시 아이들도 내가 잔소리할 때마다 '더러워도 참는다'라고 생각하는 건 아닐지. 정말 그렇다고 한다면 간담이 서늘해진다.
자, 이제 이 말을 암기하자. 어떤 상황에서든, 누구와 있든 통할 수 있는 말!
‘나는 갑이 아니다. 나는 갑이 아니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