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써 몇십 번째 미역국 맛을 보며 고개를 갸우뚱 중인 주부 김 씨. 이번에는 국간장을 넣어본다.
아... 여전히 모르겠다. 이게 간이 맞는 건가?
블로그에서 알려준 대로 따라 했을 뿐인데 왜 간이 안 맞는 걸까?
친정엄마가 식당을 하셨었기 때문에 당연히 요리를 잘할 줄 알았다. 싱거우면 소금 넣고 짜면 물 좀 넣고 그러면 되는 거 아니야? 엄마 하는 거 보니까 뭐 별로 어렵지도 않아 보이드만.
불행하게도 결혼하기 전에 친정엄마가 돌아가셔서 요리 비법을 전수받지 못한 것이 아쉬울 뿐.
주부 경력 10년이 되어도 국이나 탕을 끓이는 것은 고난도 미션 같은 일이었다. 당최 늘지를 않았다.
도대체 뭐가 문제일까? 왜 나는 국을 끓이지 못하는 것일까?
국이 없으면 밥을 못 드시는 친정아버지를 위해서라도 맛이 있으면 좋으련만 언제까지 탐탁지 않아하시는 아빠의 얼굴을 마주해야 할까?
비단 국뿐이랴. 나물이며 볶음 요리도 매번 실패하긴 마찬가지.
남편에게 간을 봐보라고 했다. 남편은 숟가락에 입을 쭈욱 내밀고 호로록 국을 마신 뒤 쩝쩝댔다.
침묵 속 세 번의 눈 깜빡임. 끔뻑끔뻑끔뻑. 그리고 한마디.
"스프를 좀 넣어보는 건 어때?"
그렇게 나는 여러 번의 실패와 가족들의 미지근한 반응으로 요알못 엄마이자 요리를 극혐 하는 사람이 되었고 세상에 요리만큼 쉬운 게 없다고 하는 사람을 도끼눈을 뜨며 째려보게 되었는데 어느 순간부터 가게 사장을 째려보기 시작했다.
내가 일하는 곳 사장은 국을 정말 잘 끓인다. 요리를 하는 사람이니 당연하겠지만 무엇보다도 한국인의 입맛에 딱 맞는 간 솜씨를 보여준다.
뜨끈한 미역국이나 소고기 뭇국, 김치찌개, 돼지고기 넣은 된장찌개 등등, 누구나 쉽게 끓인다지만 나에겐 어려운 국과 찌개들을 뚝딱 끓여내는 사장을 보며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어쩜 이렇게 맛있지? 도대체 비결이 뭐야?"
"야! 세상에 제일 쉬운 게 국 끓이는 거다. 나는 이해가 안 된다. 이 쉬운 걸 왜 못하냐?"
라며 싱거우면 소금이나 액젓 좀 넣고 짜면 물 좀 넣고 하면 된다는 하나마나한 소리를 했다.
"재수 없어. 칫."
듣는 체도 안 하고 밥을 먹는 사장을 째려봤다. 내가 조만간 비법을 알아내고 말겠다는 의지를 다지며.
"아~ 배고프다. 밥 먹자."
사장이 점심을 먹자고 한다. 오늘의 메뉴는 미역국이다. 내가 오늘은 반드시 비법을 알아내겠다는 마음으로 사장이 국을 끓이는 것을 자세히 살펴보았다.
잘 불린 미역을 참기름에 달달달 볶는다.(오케이, 여기까지는 나랑 같아.)
소고기를 넣고 같이 볶는다.(좋았어. 여기까지도 같아.)
물을 넣는다.(육수가 아닌 그냥 물을 붓네?)
끓인다.
팔팔 끓는 국에 액젓을 넣는다.(아, 액젓을 미역국에 넣는 거야?)
다진 마늘을 넣는다.
그냥 소금이 아닌 맛소금을 넣는다.(뭐야! 맛.소.금? 나는 국에 맛소금을 넣은 적이 없는데!)
조금 맛이 안 난다며고향의 맛 다시다를 넣는다.(앗!!!!!)
"다시다를 넣으면 감칠맛이 돌아. 이거 안 좋다고 하는 사람들 많은데 밖에 나가서 사 먹으면 대부분 이걸로 맛을 낸 음식 먹을걸? 조금 넣는 건 괜찮아!"
아, 이거였다.
고향의 맛 다시다와 액젓과 맛소금, 그리고 미원.
신혼 때 뭣도 모르고 건강에 좋은 음식 만들어 보겠다고 인공조미료는 하나도 사지 않았다.
나물은 국간장으로 무치고, 국은 꽃소금과 국간장으로만, 조림은 간장과 설탕, 고춧가루로 만들었다. 그러니 늘 뭔가 빈 맛이 나고 밍밍해서 인상이 찌푸려졌지. 다 먹지 못하고 버리기를 수차례 반복하면서 진정 내 몸속엔 요리 DNA가 하나도 없는 것인가 의심하며 좌절했다.
10여 년 전 찾아봤던 당시의 블로그에는 대부분 '천연조미료(멸치, 표고버섯, 다시마 등을 말려 갈아놓은 것)'가 필수라고 했었다. 그래서 천연조미료를 직접 만들어보기도 했고 천연이라 유통기한이 짧다고 광고하는 제품도 사서 넣어봤지만 예전에 엄마가 해줬던 맛이 전혀 나질 않았다.
다시다나 미원, 맛소금을 넣어야 한다고 얘기했던 사람들은 대부분 아주머니들이나 할머니들이었을 텐데 아마도 옛날 사람들이 뭣도 모르고 조미료를 찬양한다고 귓등으로 흘려버렸던 것 같기도 하다.
액젓 또한 애써 챙겨주시는 시어머니를 이해할 수 없었다. '이렇게 꾸린내 나는 것을 음식에 넣는다고? 어머니, 저에게 왜 이러세요.'
나물에도 미원 조금 넣으면 맛있다는 말을 믿지 못했다. 하지만 경험했다. 신기하게도 맛이 확 변했다. 매운탕을 끓일 때도 액젓과 맛소금, 미원이 들어가면 확실히 맛이 있었다. 허허!(이 웃음에 내 심경이 다 담겨 있다)
그러고 보니 소고기 다시다 맛이 스프맛과 좀 비슷한 것 같기도 하다. 자취생들의 필수품이라고 하더니만 왕년에 자취 좀 했던 남편 입에서 나온 스프라는 말이 꼭 잘못된 것만은 아니네.
어쨌든 나는 이제껏 이런 조미료들로 만들어진 음식을 먹고 살아왔으며 이미 이런 입맛에 길들여졌다는 걸 이제서야 알게 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