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절히 가지고 싶은 능력

그 여자의 작은 소원 - 때리거나 말로 조지거나

by 힘내자




머리채를 잡았다. 그리고 앞뒤로 흔들었다. 머리카락이 다 뽑힐 정도로. 그다음 다리를 걸어 넘어뜨린 뒤 마구잡이로 걷어찼다. 등을 밟고 옆구리를 차면서 씩씩거렸다. 그것도 성이 안 차 뺨도 때렸다. 찰싹! 아우~! 소리가 아주 찰져. 그리고 속사포 같이 이야기한다.


"야 이 나쁜 년아! 네가 그러고도 친구냐? 어? 너랑 이제 절교야! 연락하지 마!"




이것은 내가 꿈속에서 나를 괴롭혔던 친구에게 한 행동이다.

그렇다. 이것은 허구다.

한 번도 실제로 해본 적 없는, 영화에서나 볼 듯한 폭력을 꿈속에서는 자유롭게 저질렀다.

이유는 따로 없다. 나는 누군가와 싸울 때마다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사람이라서 그렇다. 왜 있잖아. 누가 소리를 지르면서 쌍욕이라도 퍼부으면 모든 게 정지되는 사람. 상대방 앞에서는 아무 말도 못 하고 눈물만 뚝뚝 흘리다가 집에 돌아와서 잠이 들 때 즈음에서야 '아! 아까 그렇게 맞받아쳤어야 했는데. 우쒸!' 하며 후회하고, 어느 정도 진정하고 상황이 정리되면서 상대방의 약점이 보이기 시작하는... 그러다가 종국엔 혼자 씩씩대는.


이런 젠장. 아까 그렇게 말을 하지 그랬냐, 이 멍충아!라고 자책하며 잠이 들다 보면 꼭 저런 꿈을 꾼단 말이다.


예전에 외국어 강사인 친구가 수강생 와이프에게 아침부터 전화를 받아 행실 똑바로 하고 다니라는 쌍욕을 얻어먹은 적이 있었는데, 그 수강생에게서 오해할만한 어떤 낌새나 수작도 없었기에 친구는 당황하여 눈물을 줄줄 흘렸다고 한다. 어머, 얘 나랑 비슷한 종이구나 싶어서 그 마음 나도 안다며 위로하려는 순간, "근데 나는 눈물이 날수록 말이 더 잘 나오거든. 울면서도 따박따박 반박하며 따졌더니 미안하다고 하며 끊더라고." 하는 게 아닌가.


어떻게 그럴 수가 있을까? 그 상황에서 어떻게 할 말이 생각이 나냐고. 양갓집 규수 같던 친구가 다시 보이기 시작하고 쟤랑은 절대 싸우지 말아야겠다 다짐했던 기억이 난다.

그게 벌써 15년 전 일인데도 내 머릿속에 깊이 각인되어 있는 걸 보니 어지간히도 인상 깊었던 일인 듯싶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웬만해서는 말로 싸우려는 의지 따윈 갖지 않고 살았다. 운전을 하더라도 웬만하면 양보 운전, 누군가와 부딪히더라도 그냥 죄송합니다 하고 먼저 사과해버리고, 원치 않은 싸움 비슷한 상황에 휘말려도 입 꾹 다물고 가만히 있는 게 상책이라는 생각으로 살아왔다. 싸우는 것보다 평화를 택했다고 보면 될 것이다.




하지만 이런 나에게도 자꾸 주먹을 부르는 사람이 있는데...

바로 나의 사장이다.


아무래도 작은 가게에서 오랜 시간 일을 하다 보니 사장과 부딪히는 일이 종종 있다. 큰소리 나는 걸 싫어하는 나라서 웬만하면 부딪혀도 참고 넘어가는데 나도 사람인지라 평정심을 유지하지 못하고 화가 날 땐 참을 수가 없다. 콧평수를 벌름거리며 참다가 용기를 내어 사장에게 말대꾸를 한다. 그래 봤자 하는 말이라곤 "아니 무슨 말을 그렇게 해?" 이 정도이지만.(쭈글)


그때부터 사장의 일당백 말발이 시작된다. 어떻게 저런 말이 입에서 바로바로 튀어나오는지 신기할 정도로 다다다다 퍼붓는다. 평소에 나에게 하고 싶었던 말인 양 귀에 바로 꽂는 화살 같은 말로 공격하는 사장. 그 순간은 머릿속이 하얘진다. 잘하고 있던 일도 실수를 하면서 심할 땐 여지없이 눈물이 난다. 그저 아랫입술을 꽉 깨물고 두근거리는 심장을 부여잡으며 얼른 그 자리를 피하고 싶을 뿐이다.(난 안되나 봐)


3년간 지켜본 우리 사장의 말싸움 스코어는 100:0, 물론 사장이 100이다. 백전백승이라는 말씀! 이걸 옆에서 바로 지켜봤으면서 나는 왜 사장에게 도전장을 내민 것일까. 어떤 상황에서도 되든 안되든 쉴 틈 없이 내뱉으며 상대방의 입을 봉해버리는 저 기술을 이미 알고 있으면서 왜 못 참았냐는 말이다.

그러다가 또 생각한다. 사장은 어떻게 저런 말발을 가지게 되었을까? 어쩔 땐 부럽기도 하다.(별게 다 부러움)


이렇게 제대로 말도 못 해보고 집에 돌아온 어떤 날에 간절히 빌어본 적도 있다. '제발, 쉬지 않고 맞받아칠 수 있는 말발 좀 주시면 안될까요?'

그러나 이렇게 간절히 빈다고 이뤄질 수 있는 소원이 절대 아니므로 나는 또 한 번 꿈에 의지를 해본다.





사장이 잔소리한다.


"야! 똑바로 안 해?"

"지금 똑바로 하고 있는데?"

"니는 왜 맨날 그러냐?"

"맨날 그러는 거 아니거든? 오빠도 맨날 실수하면서 왜 나한테만 지랄이야?"


사장이 소리를 지른다. 나는 냅다 소리를 지르는 사장의 입을 찰싹 때린다. 그리고 힘껏 때린다. 마구마구! 사장이 쓰러진다. 나는 유유히 가게를 나온다.



으하하하하!

속이 다 후련하다.

그러고 보니 꿈이 아니고 내가 당할 때마다 머릿속으로 상상하는 것들이군.

이런들 어떠하고 저런들 어떠하리.

상상으로라도 해보지 않으면 속 터져서 살 수가 없다니까.






(이쯤되니 사장한테 미안해지기 시작한다. 몇 개 안 되는 글에서 사장 욕을 엄청 많이 했다. 사장은 이 글을 안볼거라는 거 알지만, 그래도 가게에서 얼굴 마주칠 때마다 조금 찔린다. 다음에는 칭찬 좀 해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