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래하는 엄마는 어릴때부터 훈련시킨다
엄마의 노래 인생을 이해하도록!
설거지를 하며 노래를 부른다.
양쪽 귀에 이어폰을 꽂은 채 부른 노래 부르고 또 부르고...
며칠이 지나면 아이들 입에서도 같은 노래가 흘러나온다.
당신에게서 꽃내음이 나네요. 잠자는 나를 깨우고 가네요.
싱그런 잎사귀 돋아난 가시처럼, 어쩌면 당신은 장미를 닮았네요.
-사월과 오월 "장미" (서영은 버전)
저기 사라진 별의 자리, 아스라이 하얀 빛, 한동안은 꺼내볼 수 있을거야.
아낌없이 반짝인 시간은 조금씩 옅어져 가더라도 너와 내 맘에 살아 숨쉴테니.
-윤하 "사건의 지평선"
내 입에서 나오는 노래는 우리 아이들도 다 부를 수 있다.
장르와 시대를 불문하고 내가 부르는 노래는 무조건.
심지어 나보다 가사도 빨리 외운다.
부르다가 틀리면 그거 아니라고 바로 얘기하며 고쳐준다. 그리고 웃는다.
"아직도 못 외웠어?"
버스킹을 시작하기로 한 6년 전.
6살, 4살인 꼬맹이들을 놔두고 어떻게 밤에 나가서 공연을 할 수 있을까 걱정했었다.
그 때까지는 아이들이 나의 온 세상였으니까.
그러나 아이들의 성장을 보고 있으니 슬금슬금 나도 뭔가를 하고 싶다는 마음이 자랐고 내 세포속에서 숨쉬고 있던 노래 DNA가 제일 먼저 꿈틀댔다.
그래, 이제 때가 됐다. 나갈 때가 되었어!
저녁 7시 공연을 위해 아침부터 계획을 세운다. 남편과 스케쥴을 공유하고 남편이 가능한 날에는 아이들을 편히 돌볼 수 있게 아침부터 아이들과 신나게 놀아준다. 놀아주는 동안 계속 주입시킨다.
"엄마 오늘 노래하러 갈거야. 아빠랑 있으면 돼. 노래만 부르고 금방 올거야."
"엄마 노래 하고 오꺼야? 알았쪄!"
라고 대답한 둘째는 간만에 치장하고 나가는 엄마의 발목을 어김없이 잡는다.
"엄마 없찌 무쪄워!! 앙앙앙!!!"
덩달아 옆에 있던 6살 큰 애도 울먹울먹.
남편에게 뭐하고 있냐고 레이저를 쏜 뒤, 후다닥 밖으로 나간다.
이런 식으로 공연을 하다 보니 밖에 나가 있어도 마음이 좋지 않았다. 참 이상해. 아이들은 잘 있었는데도 그 당시엔 왜 그렇게 불안했는지.
불안함을 가지고 노래를 한다는 것도 쉽지 않다. 노래에 감정을 실어 불러야 하는데 내 마음엔 온통 불안함으로 가득했으니 말이다.
결국 아이들과 함께 하기로 했다.
"엄마 오늘 노래하러 갈거야. 이번엔 같이 가자. 대신에 엄마 노래하는 할때엔 얌전히 앉아 있어야 해."
그렇게 아이들은 엄마가 노래하는 모습을 보며 자랐다.
엄마 따라오면 이득이지. 간식 잔뜩 먹을 수 있으니(미취학 시절)
"엄마 귀에 이어폰 끼고 있어. 할 말 있으면 부르지 말고 직접 와서 말해줘!"
"응!"
아이들은 엄마의 일상 중, 음악 듣기가 빠지지 않는다는 걸 안다. 그리고 노래 연습하기도 빼놓을 수 없다는 걸 이해한다.
내가 부엌, 화장실, 방, 거실에서 갑자기 큰 소리로 노래를 불러도 시끄럽다고 하지 않는다.(그러고보니 정말 그러네) 가만히 하던 일을 계속 한다. 심지어 독서할 때 소음에 민감한 큰애도 내가 노래할 땐 아무말 없이 책을 본다.
오히려 요즘엔 내 노래를 평가하기도 한다.
"엄마! 이 사람이 부른 것보다 나는 엄마가 부른 게 훨씬 좋은 것 같아."
"어? 방금 부른 것은 음이 좀 이상한데? 다시 불러봐."
어릴적부터 길들여온 습관이 이렇게 자리잡았다.
비록 요즘엔 공연 따라가자고 해도 집에 있겠다고 하는 횟수가 더 늘었지만 예전처럼 불안하지 않으니 노래할 때 훨씬 편하고 즐겁다.
하고 싶은 일이 있을 때마다 아이들 때문에 어렵고 힘들겠다고 생각한 적이 많았다. 아이들이 어려서, 아이가 아파서, 아이들이 울어서, 엄마 없이는 뭘 못하는 애들이라... 제가 애엄마라서요.
돌이켜보면 아이들은 엄마인 나에게 곤란한 마음의 불편함에서 도망치는 핑계거리였던 것 같다.
어쩌면 아이들은 엄마를 넓은 마음으로 품어준 게 아닐까. 엄마의 꿈을 위해, 엄마의 삶을 위해.
부모만 아이를 품어주는 것은 아니라 걸 느낀다.
아이들은 단단하고 나는 약하다.
아이들에게 고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