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아리를 울리는 세 가지 방법

울지 않는 병아리 셋

by 헤레이스



언젠가 TV 화면 속에서 노란 병아리들이 종종거리는 모습을 보았다. 그 순간 아이들이 내게 묻는다.


“엄마, 병아리 키워 본 적 있어요?”


나는 잠시 기억을 더듬다 대답했다.


“응, 어릴 때 한 번.”


국민학교 시절, 봄이 오면 어김없이 교문 앞에서 병아리를 파는 아저씨가 어린 아이들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종이상자 안은 삐약거리는 소리로 가득 찼고, 아이들은 너도나도 손을 뻗어 병아리를 집어 들었다. 비싸지 않게 팔던 그 병아리 한 마리쯤, 어린 시절 한 번쯤 키워보지 않은 아이들이 있었을까. 그렇게 데려온 병아리는 어느 날 갑자기 조용해졌다. 어느새 울음을 멈추고, 그리고 사라졌다.


그때 이후로 병아리를 키워본 적도, 가까이에서 본 적도 없는 것 같다.

그런데 지금 내 앞에 울어야 하는데 울지 않는 병아리 셋이 있다.


아롱이, 다롱이, 재롱이.


사춘기 아이를 둔 엄마라면 한 번쯤 이런 생각을 해본 적이 있을 것이다.

'이 아이가 예전처럼 내게 고민을 털어놓지 않는 건, 혹시 엄마를 멀리하고 싶어서일까?'
'이제 나 없이도 괜찮아진 걸까? 아니면, 나를 필요로 하지만 표현하지 못하는 걸까?'


병아리들이 어느 순간부터 문을 닫고, 대화를 줄이고, 혼자 있는 시간을 늘려간다.

엄마의 걱정 어린 질문에도


“몰라”, “아니야”, “그냥”


같은 짧은 대답만 남긴다. 그렇게 점점 병아리 셋의 속마음을 알기 어려워지고, 병아리 셋은 더욱더 자기들만의 세상으로 숨어버린다.



나는 어떤 울음소리를 듣고 싶었던 걸까?


엄마, 나 힘들어요.

엄마, 나 속상해요.

엄마, 나 좀 안아줘요.


그런 말 한마디라도 해 준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런데 사춘기라는 시간 앞에서, 병아리들은 조용해진다. 숨죽여 울고, 혼자 견디고, 문을 닫는다.


엄마는 어떻게 해야 할까? 아이들이 스스로 문을 열고 나올 때까지 그냥 기다려야 할까? 아니면 억지로라도 문을 두드려야 할까?


나는 고민 끝에 세 가지 방법으로 나를 다독인다.


기다려주기

사춘기 아이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엄마가 언제든 네 옆에 있어”라는 신호가 아닐까. 하지만 그것을 말로만 표현한다고 해서 아이가 곧바로 다가오지는 않는다.

오히려 "무슨 일 있어?" "엄마한테 말해 봐"

같은 질문이 아이를 더 움츠러들게 만들 수도 있다. 아이는 다그칠수록 더 단단히 마음을 닫는다.

그러니 조급해하지 말고 기다려 주기로 한다.


말하지 않아도 괜찮다고, 하지만 언제든 말하고 싶어지면 엄마가 여기 있다고 알려주는 것이다.

밥을 먹을 때, 차를 타고 이동할 때, 텔레비전을 볼 때처럼 자연스럽게 함께할 수 있는 시간을 유지하는 것과 어색한 침묵 속에서도 엄마가 곁에 있다는 느낌을 줄 수 있다면, 언젠가 아이는 문을 열고 나올 것이다.


기다림은 어렵다.


끝이 보이지 않는 것처럼 느껴질 때도 많다. 하지만 아이가 스스로 다가올 때까지 기다려 주는 것, 그것이야말로 사춘기 아이를 키우는 엄마가 할 수 있는 가장 큰 사랑이라고 마음에 새긴다.



토닥여주기

사춘기 아이들은 감정을 격하게 표현한다. 문을 쾅 닫고, 신경질적인 말투를 쓰고, 갑자기 눈물을 보이기도 한다. 때로는 이유 없이 날카로운 말을 던지기도 한다.

그런 모습을 볼 때마다 내 마음도 상처받는 것은 당연하다.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몰라 망설여지기도 한다.


이럴 때 어떻게 할까? 말이 아니라 행동으로 다가가는 것이다.

꼭 맞는 위로의 말을 찾으려 애쓰기보다는 그저 옆에 앉아 있는 것만으로도 충분할 때가 있다. 말없이 머리를 쓰다듬어 주거나, 등을 가만히 토닥여 주거나, 따뜻한 차 한 잔을 건네는 것만으로도 아이는 엄마의 사랑을 느낄 수 있다.


"괜찮아."
"힘내."

이런 흔한 말들보다, 묵묵히 곁에 있어 주는 것이 더 큰 위로가 될지도 모른다.

엄마의 품은 언제든 돌아갈 수 있는 따뜻한 공간이라는 걸, 아이가 언젠가 깨닫게 되기를 바랄 뿐이다.



믿어주기

사춘기를 지나면서 아이는 수많은 실수를 한다.

어른들의 눈에는 답답하고 무모해 보이는 행동도 많다. 하지만 실수와 시행착오는 성장 과정의 일부다.

이 시기에 엄마가 아이를 믿어주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세상 모든 사람이 아이를 오해하고, 비난하고, 실망하더라도 엄마만큼은 끝까지 믿어줘야 한다.


"나는 네 편이야."

그 말 한마디면 된다.


믿어준다는 것은 무조건적인 허용과는 다르다. 때로는 잘못을 바로잡아야 하고, 단호하게 훈육해야 할 순간도 있다. 하지만 그 모든 과정에서 “나는 너를 믿어"라는 메시지가 전제되어야 한다.


"엄마는 네가 다르게 행동했으면 좋겠어."

이런 말을 해야 할 때라도, 그 말 뒤에는 항상 “하지만 나는 네가 좋은 방향으로 나아갈 거라고 믿어”라는 마음이 따라야 한다.

믿어주는 엄마가 있는 아이는 실수를 두려워하지 않는다. 넘어지더라도 다시 일어설 용기를 얻을 것이다.


솔직히 이 방법들이 과연 나의 병아리 셋에게 통할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나는 그저 믿고 싶다.

문을 닫고, 숨죽여 울던 아이들이 언젠가 스스로 문을 열고 나왔을 때, 그 자리에는 변함없이 엄마가 있었다는 걸 알게 되는 순간이 올 것이다.

그날이 오면, 배고파서, 춥고 목이 말라서가 아니라, 진짜 마음이 아파서 우는 그 순간이 오면, 나는 병아리 셋을 꼭 안아줄 것이다.


"많이 힘들었지? 그래도 네가 다시 나와 줘서 고마워."


그리고 그 순간, 나의 병아리들도 깨닫게 되겠지.


"엄마는 내 곁을 떠나지 않았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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