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을 모으는 사람이 되어 있었다.
실실 쪼갠다. 실을 보면 마냥 좋다. 그중에서도 유독 색감이 예쁜 뜨개실을 보면 소장하지 않고는 못 베기는 이상한 병이 생겼다. 꼭 써야 해서 사는 건 아니다. 무언가를 만들 계획이 있어서도 아니다.
그냥… 예뻐서.
눈에 들어와서.
한 번 손에 쥐어보고 싶어서.
그러다 보니 나는 어느새 뜨개를 하는 사람이 아니라 실을 모으는 사람이 되어 있었다. 영어를 인생 최대의 적이라 여기며 살아온 내가 직구 실을 사기 위해 번역기를 돌리고, 배송 약관을 읽고, 심지어 외국 회사에 직접 문의까지 하게 될 줄은 정말 몰랐다. 영어만이랴. 독어, 덴마크어, 러시아어까지 안 되는 언어는 없었다. 정확히 말하면 안 되지만, 어떻게든 했다. 실 하나를 손에 넣기 위해 그동안 피해 다니던 언어들을 정면으로 마주하고 있는 나를 보며 이건 취미가 아니라 약간의 집착이 아닐까 싶기도 했다.
생각해 보면 나는 미술을 체육보다도 싫어하던 사람이었다. 정해진 답이 없는 게 늘 불편했고 색을 마음껏 써보라는 말 앞에서는 언제나 얼어붙었다. 그런 나에게 뜨개실은 너무 무책임하게도 말한다. 이 색이랑 저 색을 섞어도 괜찮다고, 어떤 조합을 해도 결국은 예쁘다고, 망쳐도 다시 풀면 된다고. 이상하게도 나는 실만 보고 있어도 마음이 먼저 풀린다.
붓으로 칠한 색은 한 번 잘못 얹으면 다시 돌아가기 어렵고, 물을 너무 적게 쓰면 탁해지고 너무 많이 쓰면 번져버린다. 덧칠하다가 결국 버려지는 그림들도 내게는 늘 부담이었다. 그런데 실은 다르다. 색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조용히 풀면 되고, 조합이 어색하면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면 된다. 무엇보다 좋았던 건 이 색들을 누구의 허락도 없이 내 마음대로 쓸 수 있다는 사실이었다. 예쁘다고 느끼는 기준도, 어울린다는 판단도 전부 나에게 있었다.
상상이라는 걸 잘 못하는 나에게 실들은 끊임없이 들이댄다. 이 색도 예쁘지 않냐고, 저 색은 더 잘 어울린다고. 그 유혹은 당해보지 않은 사람은 모른다. 그래서 나는 유혹을 당하는 대신 실을 들었다. 공방이 있는 것도 아니고 나만의 뜨개 공간이 있는 것도 아니다. 거창한 수납장 대신 서랍 속, 상자 속, 가방 속에 고이고이 모셔 둔다. 쓸 날을 정하지 않은 채 그저 곁에 두는 실들.
어쩌면 나는 무언가를 만들기 위해 실을 사는 게 아니라 이렇게 살아도 괜찮다고 말해주는 색들을 모으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아직도 완성된 작품보다 쌓여 있는 실이 더 많지만, 그것마저 지금의 나와 닮아 있어 괜히 웃음이 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