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의 시간을 담아두면

그냥 스쳐 지나간 날도 남는다

by 헤레이스


나는 성격이 급한 편이다. 결정을 오래 붙들고 있지 못하고, 마음을 먹으면 바로 움직이는 쪽에 가깝다. 그래서 한때는 사진을 찍는 것이 나와 잘 맞지 않는다고 생각한 적도 있었다.


기다려야 하고, 멈춰야 하고, 한 발 물러서서 봐야 하는 일이니까.


그런데 사진을 찍기 시작하면서 내 시간의 속도는 아주 조금씩 달라지기 시작했다. 카메라를 들면 아무리 급한 마음이어도 나는 한 박자쯤 멈춘다.


빛이 어디서 오는지, 구도가 어떻게 흘러가는지, 사람의 표정이 언제 가장 자연스러운지 그제야 눈에 들어온다. 찰나를 기다린다. 사진은 그렇게 내 삶에 늦어지는 법을 가르쳐 주었다.


물론 나는 여전히 급하다. 그리고 그 성격을 완전히 고칠 생각도 없다. 그래서 더더욱 나의 일상카메라와 삼식이 렌즈를 놓지 못한다. 후딱 찍어도 그 순간을 꽤 괜찮게 건네주는 존재. 내 속도를 이해해 주는 장비.


기술의 도움 덕분에 나는 빠르게 움직이면서도 사진 앞에서는 잠시 숨을 고를 수 있게 되었다. 사진은 나를 바꾸기보다 내 스스로를 타협하는 방식으로 곁에 남아 있었다.






요즘 나는 지난 사진들을 자주 들여다본다. 아이들이 어렸던 얼굴, 카메라를 들고 있던 나의 셀카, 지금보다 훨씬 가볍고 덜 조심스러웠던 시절의 표정들. 누구나 지금보다는 조금 더 어리고 조금 더 젊었던 때가 있다. 그게 나의 모습이기도 하고, 부모님의 모습이기도 하다. 사진은 그 사실을 굳이 말하지 않은 채 자리에 남겨 둔다.


사진을 보고 있으면 과거로 돌아가는 것 같지만 마음은 현재에 머문다. 그때의 내가 지금의 나로 이어져 있다는 걸 사진이 먼저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진은 추억을 붙잡는 도구라기보다 지금을 살아가게 하는 힘에 가깝다. 나는 사진을 찍으며 무언가를 간직하려 했던 적은 없다. 다만 지나가는 시간 앞에서 조금 덜 서두르고 싶었을 뿐이다.


일상의 시간을 담아 두면 언젠가 다시 꺼내 보게 된다. 그때는 보이지 않던 의미들이 시간을 한 바퀴 돌아

지금의 나에게 닿고, 그 날들은 그렇게 내 안에 조용히 눌러 앉아 있었다.


사진 속에는 언제나 내가 아닌 사람이 있다. 나는 나를 찍기보다 사람을 바라보는 쪽에 더 익숙하다. 그래서 나는 몰카 아닌 몰카를 자주 찍는다. 의도하지 않았고, 알아채기 전에 지나간 순간들이다. 아이들이 웃고, 고개를 돌리고, 잠시 멍하니 앉아 있는 그 찰나들. 그렇게 찍힌 사진들은 대부분 가장 그 사람다운 얼굴을 하고 있다. 누군가는 그걸 몰카라고 부를지도 모르지만 나는 그게 가장 정직한 기록이라고 생각한다.그리고 그렇게 남은 사진들이 어느새 내 사진의 대부분이 되었다. 그게 내 사진이고, 나는 그걸 작품이라고 불러도 괜찮다고 생각한다.


그래서인지 내 사진은 종종 누군가에게 선물처럼 건너간다. 마음에 남았다고 말해 주는 사람들, 자기 시간을 다시 보게 되었다고 조용하게 말해주는 얼굴들. 사진은 그렇게 나에게서 출발해 누군가의 하루에 가 닿는다. 나는 그런 사람과 시간들이 참 좋다. 나에게 주는 또 다른 선물이기도 하다.






지금도 나는 빠르게 움직이고, 후딱 셔터를 누르며 하루를 바쁘게 살아간다. 그런데도 카메라를 들고 있는 순간만큼은 조금 늦어진 나로 존재한다. 사진 덕분에 나는 오늘을 조금 더 오래 보고, 지나간 나를 조금 더 다정하게 대하게 되었다.


일상의 시간을 담아두면 그건 결국 나를 이해하는 방식이 된다. 그냥 스쳐 지나간 날도 남는다. 남아준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사진을 찍는다 기억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지금 이 찰나를 놓치고 싶지 않아서이다. 그리고 아마도 그게 내가 여전히 카메라를 손에서 놓지 않는 이유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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