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집 크리스마스 트리에는 사진이 달려 있었다
나에겐 즉석카메라가 세 대 있다.
처음에는 단순했다. 찍자마자 바로 볼 수 있다는 게 좋았고, 디지털 화면이 아니라 손에 쥐어지는 사진이라는 사실이 마음에 들었다. 하지만 솔직히 말하면 그 뒤의 선택들은 조금 더 솔직한 이유였다.
해상도가 아쉬워서, 외관이 예뻐서, 색감이 달라 보여서.
그래서 하나가 둘이 되고, 둘이 셋이 되었다.
즉석카메라는 늘 감정 쪽에 가까운 선택이었다.
기계 성능보다 분위기, 선명함보다 느낌.
그리고 무엇보다 '지금' 이라는 순간을 손으로 받아드는 경험.
사진이 천천히 출력될 때의 기다림, 하얀 종이 위에 서서히 떠오르는 얼굴들, 아이들이 모여 앉아 숨죽이며 바라보던 그 몇 초.
그 시절 크리스마스마다 우리 집 트리에는 즉석사진이 주렁주렁 달렸다. 아이들 얼굴이 오너먼트가 되고, 가족의 일년이 반짝이는 장식이 되었다. 지금 생각하면 참 소박한데, 그때는 그게 얼마나 특별한지 몰랐다.
즉석사진은 완벽하지 않았다. 흔들리기도 했고, 빛이 날아가기도 했고, 표정이 반쯤 잘린 사진도 많았다.
그런데 이상하게 그 불완전함이 더 오래 남았다. 깨끗한 디지털 파일보다 구겨진 사진 모서리와 그 때의 날짜와 사진의 제목들. 아이 손자국이 남은 표면이 기억을 더 잘 붙잡아 주었다.
그러다 어느 순간, 세상이 바뀌었다. 스마트폰으로 언제든 사진을 찍고, 몇 번의 터치만으로 보정하고, 원하면 바로 인쇄도 되는 시대.
길가에 4컷 사진 기계가 생기고, 약속 장소마다 포토부스가 들어섰다. 즉석이라는 말이 더 이상 특별하지 않은 시대 속에서 내 즉석카메라 사진은 더 바래져 간다.
즉석카메라도 이제 아날로그가 되었다. 지금 내 즉석카메라들은 작은 박스 안에 고이 잠들어 있다.
배터리를 빼 두고, 먼지가 쌓이지 않게 감싸 두고. 가끔 박스를 열어 보면 괜히 셔터를 한 번 눌러 보고 싶어지고, 아무 것도 찍히지 않는 렌즈를 들여다보며 추억을 혼자 고스란히 느끼곤 한다.
그리고 생각한다. 이 카메라들로 이제 뭘 해볼까. 다시 트리를 꾸밀 수는 없고, 아이들은 이미 훌쩍 커버렸고, 그 시절은 돌아오지 않는다. 그래도 완전히 끝난 건 아닌 것 같다.
아이들이 어릴 때였고, 내가 더 바쁘고 서툴렀던 시기였고, 사진을 놀이처럼 찍던 때였다.
지금은 훨씬 좋은 카메라도 있고, 더 편한 방법도 많지만 그때처럼 사진을 기다리며 설레던 순간은 없다.
어쩌면 즉석카메라는 내게 어떤 기술이 아니라 하나의 시간이었으니까...
사진을 남기기 위한 도구가 아니라 함께 모여 사진 한장에 시간을 담아주던 존재였는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나는 아직 버리지 않는다.
사진이 아니라 시간을 남기던 순간들을, 나는 아직 놓지 못한다.
많은 카메라들 중 즉석카메라를 마지막에 남겨둔 건, 가장 오래된 시간이 거기 있어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