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만 화소 디지털에서 캐논 400D까지, 순간을 품은 마음
대학에 입학하고 맞이한 첫 답사 날, 나는 낯선 풍경만큼이나 놀라운 광경과 마주했다. 회색빛 교실이 아닌 들판과 유적 터 위로, 수십 개의 디지털 카메라가 번쩍이고 있었던 것이다. 어느 하나 빠짐없이 셔터를 눌러대는 친구들의 모습은, 마치 자신이 이곳에 꼭 있어야 할 이유를 사진에 담아야만 한다는 듯한 열정으로 가득 차 있었다. 역사학도라면 카메라 하나쯤은 이런 분위기.
얼마 전까지만 해도 나는 동생의 졸업사진을 찍어주려면 필름을 아껴 써야 했고, 사진이 나올 때까지 마음 졸이던 때가 생각났다. 필름이 사라지는 그 찰나의 희열과 긴장감도 좋았지만, 답사 현장에서 친구들이 마음껏 ‘찍고 지우고 다시 찍는’ 모습을 보니 먼 나라에 온 기분이었다.
부모님께 디지털 카메라를 사달라 조르는 대신, 나는 첫 알바비를 손에 쥐자마자 곧장 전자제품 매장으로 향했다.
그렇게 손에 넣은 내 첫 디지털 카메라는 소니 DSC-P7.
이름처럼 작고 귀여운 이 회색 기계는 200만 화소라는 스펙을 자랑했지만, 나에게는 그 이상의 의미가 있었다. 필름값 고민 없이 마음껏 셔터를 눌러볼 수 있다는 자유, 찍은 즉시 결과를 확인하며 구도를 고쳐볼 수 있다는 즐거움. 답사 내내 나는 작은 카메라를 손에 꼭 쥐고, 빛과 그림자가 만들어내는 문화유산의 모든 순간을 기록했다.
몇 년이 지나고, 나는 조금 빠른 결혼을 했고 이유를 만들어서 ‘더 크고 좋은’ 카메라를 갖겠다는 다짐을 지켰다. 첫 아이가 태어나기 전, ‘아이가 어릴 때 예쁜 순간을 놓치고 싶지 않다’는 욕심으로 선택한 것은 나의 첫 DSLR, 캐논 400D였다. 비싼 렌즈는 사지 못했지만, 그 투박한 외모의 카메라는 나의 눈빛과 아이의 미소를 전보다 훨씬 선명하게 담아주었다. 스마트폰 카메라가 보편화되기 전이었기에, 그 시절 싸이월드의 가족 사진첩에는 DSLR이 남긴 순간들이 가득했다.
엄마라는 이름이 처음 주어졌을 때, 나는 그 작은 디지털 카메라와 DSLR 사이에서 ‘관찰자’이자 ‘기록자’로서 성장해갔다. 아이들의 첫걸음, 첫웃음, 첫눈망울까지.
모든 것이 사진으로 남아 있는 덕분에, 나는 지나간 시간 속에서도 그 순간들을 다시 살아낼 수 있었다. 그 뒤 작아지고 기능 좋아진 디카와 미러리스 카메라를 손에 넣은 덕에 DSLR은 어느새 보관함 속으로 들어갔고, 언젠가 돌아보면 그 카메라들처럼 잠잠해진 기억의 한 켠을 떠올리게 될 것이다.
지금 소파 밑 작은 박스에는, 나의 첫 디지털 카메라와 모셔둔 캐논 400D가 있다. 회색빛 플라스틱 바디에는 손때 묻은 흔적과, 답사와 일상 속에서 마주친 수많은 풍경이 새겨져 있고 ‘엄마의 눈’이 되어 아이들의 시간을 고스란히 품어주었던 사랑이 담겨있다. 언젠가 다시 꺼내어 들면, 그때의 나처럼 설렘을 안고 셔터를 눌러보고 싶다.
첫 카메라가 그랬듯, 그리고 두 번째 카메라가 그랬듯, 나는 여전히 사진을 통해 세상과 대화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