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도는 언제쯤
미로의 첫 시작은 어디서부터 시작될까?
나의 살던 고향은 물 맑은 전라남도 여수.
사람은 태어나서 서울로 보내야 한다.
는 호랑이 담배피던 시절의 이야기를 늘상 입에 달고 사시던 내 아버지 덕분에 나는 어떻게든 무조건 서울로 보내졌다. 여수에서 태어나서 여수에서 고3까지 살았던 나는 방학이면 가까운 전라도 어느 지역보다도 늘상 외가가 있는 서울로 여행을 갔다. 어린 시절 무궁화로 6시간을 타고 도착한 서울은 사실 내 기억에 크게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억에 나는 딱 어느 한 시점이 있다.
1988년 서울올림픽.
외삼촌은 시민대표로 성화봉성주자를 하셨고 그 사진은 지금도 외삼촌댁에 자랑스럽게 걸려있다. 그리고 나에게는 올림픽 경기장 앞에서 빨간 원피스를 곱게 입고 찍은 사진이 추억처럼 박제되어 있다.
외삼촌 댁은 가운데 마당을 둔 ㅁ자의 한옥이었던 걸로 기억하는데 방학 때 놀러갈때면 그 집에는 다른 가족들도 살고 있다고 어른들께 인사를 했던 기억이 있다.
여수를 떠나 서울특별시.
서울에서 대학을 다니고 외삼촌이 다니는 교회를 나갔다. 고등학교 친구들은 한 교회를 정해서 같이 다녔는데 그 때 나도 친구따라 교회갔다면 지금의 남편은 못 만났으려나?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하지만 기억도 나지 않은 국민학교 2,3학년 때 외삼촌댁에 살던 다른 가족들이 바로 지금의 시댁. 스치듯 지나치며 마주했던 남자 아이들 중 한명이 지금의 남편이라는 사실을 알았을 때 이것도 운명이라며 행복해 하는 남편과 질긴 인연인가 싶어 마주보며 웃는 나는 그야말로 동상이몽이다.
그렇게 교회오빠, 군인아저씨가 된 남편을 따라 나의 팔도 여정은 시작된다. 대학을 졸업하고 조교생활을 하다가 공부라는 것에 회의를 느끼고 안정된 삶을 찾고 싶었던 내가 선택한 결혼. 우리의 첫 보금자리는 경상북도 안동. 전라도와 경상도는 멀고도 먼 느낌이다. 여전히 빨강과 파랑으로 나눠지는 21세기. 딱 그런 기분으로 어색할 수 있었지만 다행스럽게도 나의 대학시절 전공이 역사라 팔도 답사를 다녀서 그런지 그나마도 덜 낯설었던 거 같다.
안동에서 채 일년도 채우지 못하고 다음은 가까운 전라남도 장성으로 남하. 장성에서는 6개월. 그래도 그 곳에서는 남편들 덕분에 동기사랑 나랑사랑으로 군인아내친구들이 생겼다. 대부분 비슷한 신혼이거나 이제 돌도 안 된 아가들이 있는 정말 친구같은 사이. 매일 만났고 매일 모여서 먹고 놀고 즐거웠던 장성에서의 추억은 가장 짧은 시간 머물렀던 곳이지만 가장 행복하게 남아있다. 군인아파트 치고는 꽤나 넓었고 거실은 한적한 논밭뷰를 볼 수 있었고 마트와 교회, 볼링장, 노래방, 식당 모두 아파트 단지 안에서 다 해결가능했던 곳. 아침 일찍 보온도시락에 남편 도시락도 싸주면서 제대로 신혼을 즐기던 그 곳은 지금도 가장 그리운 곳이다.
6개월 알차게 친해지고 찐하게 즐기던 우리는 남편들 따라 또 다시 이동이다. 그렇게 우리는 경기도 의정부로 거처를 옮겼다. 서울특별시와 아주 가까운 거리. 친정과 조금 가까워졌다 싶으니 다시 시댁과 또 가까워졌고 우리가 만나고 결혼했던 교회로 다시 나가게 되었다. 의정부에서 우리는 첫째를 만났고 둘에서 셋이 되었다. 그리고 군에서 장기복무를 하지 않기로 결정했기에 이 곳이 우리의 마지막 군생활 거처일거라 생각했고 잘 마무리하자고 계획했다.
계획은 그저 계획일 뿐이다. 정말이지 생각지도 않았던 곳으로 다시 발령이다. 이동해야 할 날짜는 다가오는데 사택문제가 해결되지 않았다. 국방부 시계는 우리가 한탄할 겨를도 없이 째깍째깍 흘러갔고 해결되지 못한 집 문제 덕분에 남편과 한달 넘게 떨어져 지냈다. 남편은 그렇게 내 마음 속 먼 나라 같은 강원도로 갔다.
전라남도 여수. 서울특별시, 경상북도 안동, 전라남도 장성. 경기도 의정부. 그리고 강원도 화천.
이 모든게 4년 반 사이에 나의 흔적을 남겼던 곳곳이다. 그러고보니 충청도는 아직까지 살아보지 않은 곳이다. 금강산을 바닷길로 갈 수 있을 때 금강산도 다녀온 내가 충청도는 시아버지의 고향이라는 것 말고도 연결지을 부분이 없다는 것이 조금 안타까울 뿐이다.
어디까지 가봤니? 이제 나는 강원도. 금강산 가려고 잠시 머물렀던 속초항을 빼고는 여수에서는 외국보다 먼 나라 강원도 화천으로 옮겨가고 그 곳에서 첫 미로의 탈출구에 가까워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