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양이 아니었다면...
이 글은 저의 신앙 간증문입니다. 어떤 교단지에서 간증문을 써달라는 의뢰를 받고 작성하게 되었습니다. 기독교가 아니신 분들이 읽으시면 다소 불편하실 수 있습니다.
2022년 2월 김하람 간증문
저는 아내와 함께 2명의 친자녀와 2명의 입양자녀를 키우고 있는 김하람이라고 합니다. 저는 사실 굉장히 평범하게 살고 있는 사람인데 입양가족이 되면서 인간극장에도 나오고 이렇게 간증문도 쓰게 되었네요. 그만큼 입양이 아직은 특별하고 낯선 일인 것 같습니다. 이 간증문에서는 제가 보는 관점에서 하나님께서 어떻게 우리가 입양가족이 되도록 인도하셨는지 그리고 입양가족이 되고 나서 우리의 삶이 이전과 어떻게 다른지에 대해서 이야기해보려고 합니다.
하나님은 저를 굉장히 단순한 사람으로 만드신 것 같습니다. 어린 시절부터 별생각 없이 늘 행복하기만 했었던 것 같습니다. 덕분에 공부도 잘 못했고, 놀기도 잘 못했던 학창 시절을 보냈습니다. 고3이 끝날 무렵에 제가 가장 존경하던 아버지가 위암 말기 판정을 받으셨습니다. 늘 단순했던 저는 신앙도 좋고 모두에게 모범이 되는 우리 아버지는 위암이 아니라 위암 할아버지가 와도 하나님께서 건강하게 회복시키실 것이라는 강한 믿음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1년을 고통스럽게 투병하시다가 저의 믿음과 다르게 돌아가셨습니다. 그때 처음으로 느꼈던 것 같습니다. ‘믿음은 내가 보는 시야에서 가장 최선의 일을 하나님이 해주실 것이라고 믿는 것이 아니라, 어떠한 상황에서도 하나님을 믿어야 하는구나.’ 역시나 하나님의 계획엔 실수가 없었습니다. 아버지가 돌아가셨기 때문에 저는 빨리 성장해서 아버지 역할을 대신해 가장이 되어야겠다고 생각하며 정신을 차렸습니다. 그 뒤 군생활을 마치고 우연치 않은 기회로 미국으로 유학을 가게 되었고, 갈급했던 저는 최선을 다해 공부하게 되었습니다. 유학을 갔기 때문에 굉장히 부유했던 것 같지만, 사실 돈이 너무 없어서 밥도 굶고 파트타임도 3탕씩 뛰고, 잠도 2~3시간 자면서 열심히 살았습니다. 아마 하나님께서 아버지를 데려가시지 않았다면, 저는 아마 아직도 컴퓨터 게임을 열심히 하며 밥만 축내고 있는 식충이로 살고 있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아버지가 계시지 않아서 아쉬운 점들이 아주 많지만, 그때 그 시기가 저에겐 가장 최선의 때였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단순하게 살아가며 의미 없이 하루하루를 살아가던 어린아이에서 하나님을 향한 단순한 믿음으로 담대하게 세상을 살아갈 수 있도록 성장시켜주신 하나님께 감사와 영광을 돌려드립니다. 철이 들었다고 해야 할까요? 정신을 차리고 나서 저의 삶을 돌아보니, 어릴 때 글로만 배웠던 조건 없는 하나님의 아가페 사랑이 저의 삶 모든 순간순간에 동행하고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아무런 가치 없는 죄인에게 쏟아지는 아버지의 사랑이 과분하게 느껴지기도 하면서 너무나 감사했습니다. 그리고 그 사랑을 직접 경험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이 한 가정의 가장이 되는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자신을 아버지로 부르라고 하셨던 하나님의 마음을 이해하려면 제가 직접 아버지가 돼야 한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더 나아가 저를 양자로 맞으신 하나님의 마음을 이해하려면 입양을 하는 방법밖에 없다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저는 사고 구조가 굉장히 단순해서 글로 읽고 머리로 이해한 것으로는 부족하기에 꼭 직접 입양을 하겠노라고 다짐했던 것 같습니다.
그렇게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시간이 지나 30살의 나이에 아내를 만나 결혼을 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입양 전의 생각과 달리 현실은 단순해 보이지도 않았고 너무 복잡하고 두렵게 보였습니다. 저축한 돈이 하나도 없었기에 전세를 구할 수 있는 돈은 모아야 아이를 가질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고, 아내에게 돈을 모아보자고 하였습니다. 아내는 재정과 상관없이 아이를 키우고 싶었지만, 저를 항상 리더로 인정해주는 아내는 저의 말에 동의해주었습니다. 그렇게 1년이 좀 안되게 살고 있었는데, 2013년 11월 즈음 머릿속에 하나님의 말씀과 같은 생각이 지나갔습니다. ‘난 분명 사람들에게 하나님 앞에서 돈 걱정하지 말라고 말했었는데.’ 저는 스무 살이 되면서부터 교회 중고등부 교사를 하면서 성경을 가르쳤었는데, 아이들에게도 늘 돈 걱정하지 말라고 했었던 과거의 저의 말이 생각이 났습니다. 그렇게 언행일치가 되지 않는 저의 모습을 보며 부끄러웠고, 아내와 상의하면서 재정적인 상황과 상관없이 아이를 키우기로 해서 첫째 바울 이를 낳게 되었습니다. 바울이 출산 전 살았던 보증금 500에 50만 원짜리 월세방에서 아이를 키우기 좀 더 편한 집으로 이사하려고 무리해서 대출받아 집을 산 것이 의도치 않게 많이 올랐습니다. 제가 계속 돈걱정을 하며 출산을 미뤘더라면 아마 지금쯤은 보증금 1000에 60만 정도 되는 월세에 살고 있었을 것 같습니다. 유학시절에도 늘 돈이 없었지만 하나님의 은혜로 학비를 밀리지 않고 잘 낼 수 있었는데, 그때의 하나님의 은혜를 다 잊어버렸던 저의 자신이 참 부끄럽습니다. 그렇게 아내와 함께 아들 하나 딸 하나를 낳아 기르게 되었습니다. 다행히 아내도 결혼 전부터 입양을 하고 싶다는 마음을 가지고 있어서, 특별한 어려움 없이 셋째와 넷째를 입양하게 되었습니다. 처음엔 셋째까지 낳고, 성별 맞춰 넷째를 입양하려고 했었지만 입양을 너무 늦게 한 것을 후회한다는 존 파이퍼 목사님의 말씀에 하루라도 젊을 때 입양하려고 셋째부터 입양하였습니다. 두 번의 출산과 두 번의 입양을 겪으면서 저에겐 출산보다 입양이 더 힘들었습니다. 출산은 아내가 겪는 힘든 일들을 옆에서 지켜보고 응원하는 것 말고는 남편으로서 할 일이 없는데, 입양은 모든 서류 준비부터 관련 절차들을 함께 해야 하기 때문에 남자들에겐 입양이 훨씬 힘이 듭니다. 아내들도 육체적으로는 조금 덜 힘들긴 해도 여러 가지 길고 복잡한 절차들이 정신적으로 쉽지 않습니다. 아무튼 우리 부부는 그렇게 사 남매의 부모가 되었습니다. 학창 시절 저의 모습을 생각하면 상상도 할 수 없던 일들이지만, 하나님께서 저의 삶을 변화시켜 주신 덕분에 큰 어려움 없이 여기까지 오게 된 것 같습니다. 저를 단순하게 만드시고, 가장 적합한 시기에 아버지를 데려가시고, 어릴 때 미리 가난한 시절을 지나가게 하신 하나님께 감사와 영광 돌려드립니다. 이렇게 저의 감사 제목을 나열에 놓으면 어떤 사람들에겐 이 내용이 원망 거리가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저를 깨닫게 하시기에 이 모든 상황이 나를 가장 사랑하시고 나를 가장 잘 아시는 하나님의 계획으로 이루어지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셋째를 입양할 때 저에게 평생 못 잊을 에피소드가 하나 있었습니다. 처음으로 선보러 가는 날이었습니다. 입양을 하기 전에 우리 부부가 어떤 아이를 만나게 될지 선보는 자리가 있는데, 그날 처음으로 우리 셋째 요셉이의 사진을 보게 되었습니다. 회사에서 오전 근무 후 오후 반차를 내고 지하철을 타고 홀트 아동복지회로 이동 중에 사진을 받아서 보았습니다. 사진을 보고 너무나 깜짝 놀랐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조금 웃긴 얘기이지만, 요셉이 코가 너무 낮아 보였습니다. 제가 사실 대한민국 평균 이하 외모라서 다른 사람 외모를 판단하면 안 되는 위치이긴 한데 우리 부부와 너무나도 다르게 생긴 요셉이 사진을 보니 갑자기 두려움이 몰려왔습니다. ‘내가 얘를 진짜 사랑할 수 있을까?’, ‘지금이라도 입양 못하겠다고 할까?’ 하면서 정말 별생각을 다했습니다. 그렇다가 제 머릿속에 오함마로 내리치 듯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하나님은 나를 잘생겨서 사랑하셨나?’ 너무나 분명히 아니었습니다. ‘그럼 나는 무슨 이유로 외모를 보고 이 아이를 판단하고 있을까?’라는 생각 함께 또다시 그 크신 하나님의 사랑이 떠올랐습니다. 이렇게 보잘것없는 내가 그렇게 큰 사랑을 받고 있다는 사실이 너무나 감사해서 지하철에서 혼자 오열을 해버렸습니다. 지금 그때를 생각하면 옆에 앉아있던 사람들은 날 보고 무슨 생각을 했을지 궁금하고 창피합니다. 그렇게 첫 선 보는 날 큰 깨달음과 함께 요셉 이를 만났고, 요셉이는 그날부터 저에게 ‘아들’이었습니다. 이렇게 남이었던 아이가 갑자기 자녀가 되어버리는 경험은 입양이 아니면 절대로 알 수 없는 경험입니다. 부디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입양을 경험해서 하나님의 마음을 좀 더 알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입양 후 모든 것이 수월했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특히 넷째가 입양되었을 때 넷째 에스더가 벌써 생후 8개월이 지나 낯가림이 시작된 후였습니다. 위탁부모님들을 엄마와 아빠로 정확하게 인지하고 있을 때 우리 가정으로 오게 되었고, 모든 세상이 뒤틀어져버린 에스더에겐 세상 모든 것이 무서웠던 것 같습니다. 한 달을 넘게 쉬지도 않고 울었고, 벌벌 떨었습니다. 그 모습이 짠해 보이다가 기간이 길어지다 보니 우리 부부도 지치기 시작했습니다. 분명히 시간이 지나면 좋아질 텐데 얼마만큼 에 시간이 지나야 하는지도 모르겠고, 우리가 너무 욕심부려서 넷째까지 입양한 건 아닌지 우리의 판단에 대해 의심하기도 하면서 정신없이 시간을 보냈습니다. 사실 넷째 입양하면서 ‘아이 세명 키우다가 네 명 키운다고 뭐 얼마나 더 힘들겠냐?’라는 교만한 생각이 있었는데, 지금은 많이 겸손해진 것 같습니다. 저의 교만을 꺾어주신 하나님께 감사합니다. 지금은 에스더가 많이 커서 애교라는 애교는 다 부리고 언니 오빠들 장난감 막 뺏으러 다니고 막내 티 팍팍 내는 우리 집안의 무법자로 잘 성장했습니다.
잘 모르시는 분들이 우리 아이들을 보면서 ‘너넨 부모 잘 만나서 참 좋겠다, 복이다’라고 많이 하시는데 사실 이 말은 입양가족들에게 굉장히 실례가 되는 말입니다. 마치 우리 아이들이 사랑받을 만한 아이들이 아니라고 하는 것처럼 들리는 경우가 많기 때문입니다. 사실 입양을 하게 되면 모든 복은 부모의 몫입니다. 우릴 양자로 받아주신 하나님의 마음을 조금이라도 이해할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큰 축복인지 입양 안 한 사람들은 도저히 알 수가 없을 것입니다. 우리 부부도 입양의 과정을 두 번 경험하면서 하나님의 사랑이 어떤 것인지 좀 더 알게 된 것 같습니다. 조건이 없는 사랑이 무엇인지, 우리가 죄인 되었을 때부터 사랑하셨던 그 마음이 어떤 것이었는지 조금이나마 더 깨닫게 된 것 같습니다. 이제 앞으로 아이들이 성장하며 사춘기를 겪게 될 텐데 두려운 마음이 드는 것도 사실이지만, 그때는 또 얼마나 더 하나님의 마음에 대해 배우게 될지 생각하며 기대가 되기도 합니다. 이렇게 우리 부부는 아이들을 통해 하나님에 대해 배우고, 그 사랑에 반응하며 살아가려고 노력하면서 우리 아이들도 우리 부부의 삶을 통해 배우기를 소망합니다. 우리 부부의 삶이 하나님을 가리지 않고 아이들에게 우리가 아는 하나님의 모습을 그대로 보여줄 수 있도록 노력하며 살고 싶습니다.
저의 이 모든 삶이 입양 전에도 풍족했던 것이 사실이지만, 아이들을 입양하고 나서야 저에게 입양이 필요한 일이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을 알아가고 닮아가려고 노력하는 우리 부부에게 입양을 할 수 있는 기회를 주신 하나님께 감사합니다. 지금은 상상조차 하기 싫은 우리 아이들이 없는 삶에서 귀한 우리 귀한 자녀들을 허락해주신 하나님께 감사와 영광 돌려드립니다. 제가 늘 저의 슬로건처럼 사용하는 말이 있습니다. ‘하나님 먼저, 그리고 아내, 그리고 아이들’ 지금까지 인도하셨고 앞으로도 저의 삶을 인도해주실 분은 하나님 한 분뿐입니다.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